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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7. 2022

오늘이 마지막 근무였어요.

사람이 사람으로 대하는 일, 사람이 부디 항상 사람답기를 바란다.

"드르륵" 문자가 왔다. 1시간 뒤, 3개월에 한번씩 오시는 정수기 관리 매니저님이 방문하신다는 내용이다.


30분이 지났을 즈음 "드르륵" 사정이 생겨 5~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양해의 문자가 왔다. 내가 요청한 시간은 5시 30분에서 6시니, 나는 대개의 경우 집에 있지만, 다른 이는 출퇴근시간 등 많은 변수가 가능한 시간이다.


"네, 알겠습니다.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사전 양해를 구하신대로 10분 정도 지나 나이가 조금 있는 남자 매니저님께서 오셨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어요. 죄송해요."


"아니예요. 어차피 집에 계속 있는 시간인데요. 괜찮아요. 저희 정수기는 여기 있어요. 작업하기 편하시라고 옆에 치웠어요. 전, 거실에 있을게요. 편하게 일보시고 혹시 필요한 부분 있으면 불러주세요."


옆에 있으면 서로 불편할 것 같아 거실에 가 있겠다고 말을 하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깜빡했네요. 음료는 많이 드실 것 같아서, 홍삼액기스에요. 마음은 산삼입니다."

"아...고맙습니다."

"그럼, 전 또 거실에 있을게요. 불편하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말씀 주세요."


이윽고


"고객님, 점검이 모두 끝났습니다."

"네, 여기 싸인하면 되죠?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감사해요."

"일교차가 심하네요. 저녁 때라 춥겠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당황했다.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아보이는 그는 눈물이 그렁한 눈빛으로 말했다.


"고객님, 고객님 덕분에 감동 많이 받고 가요."


정말.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인사만 했을 뿐인데, 그에게 어떤 부분이 감동이었을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 그저 인사를 하는 작은 스몰토킹. 그것만으로도 그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오늘 어떤 힘듦이 있었던 걸까. 앞서 여유를 두고 잡은 예약시간이 밀렸다는 알림이 왔을 때도 나는 생각했다.


'아, 이분에게 예상치 못한, 달갑지 않은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


사람은 힘들수록 생각보다 정말 작은 배려의 말과 행동에 감동을 받고 삶의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고 한다. 람이 사람다울때, 사람이 사람의 모습으로 마주하기만 해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몇 해 전 겨울, 우리집을 방문했던 '그'가 다시 생각이 났다.






우리집은 원래 소파가 없었다. 주로 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작업을 하는 나로서는 소파가 불필요하고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주 오지 않는 손님들, 특히 여자분들이 오시면 어쩔줄을 몰라 했다. 치마를 입고 바닥에 앉는 일이 난감했던 것이다. 그 모습이 항상 미안했던 나는 이사를 계기로 집에 저렴한 소파를 하나 놓기로 했고, 그날은 배달기사님이 가져다 주기로 하신 날이었다.


그날 늦은 오후로 예정되었던 시간이 자꾸만 미뤄졌다.


"사정이 생겨서", "차가 생각보다 많이 밀려서", "앞서 예정된 고객님댁에 늦게 도착해서"


시간 차를 두고 사과가 거듭될수록, 불편하게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의 마음이 문자로 전해졌다. 나는 일정이 없었고 그에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전 계속 집에 있으니 괜찮아요.", "서두르다 사고나시면 안되니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전 괜찮아요."    


오후 8시 즈음, 그가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인듯 복잡하지만 어두운 얼굴로 도착했다. 겨울이라 유난히 밖이 어둡고 추운 때였다.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어요."

"고생 많이 하셨네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앞에 사정이 있어서.. 아직.."

"드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주전부리를 좋아해서 집에 이런게 좀 있어요.
 괜찮으시면 이따 가면서 좀 드세요."


몇 가지 쿠키와 빵, 음료가 들은 봉지를 하나 건냈다. 표정을 읽을수 없는 그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다시 소파설치를 마저 마치고 집을 나섰다.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안녕히 계세요. 오늘 마지막 근무였는데......... 오늘따라 차도 막히고, 고객님들도, 일정도 많이 꼬였어요. 이집이 마지막 배송지여서 마무리는 좋네요. 감사합니다."


"아..."


얼마나 고단한 하루였을까. 얼마나 복잡한 마음이었을까. 트럭을 몰고 무거운 소파 등 가구를 배송하는 일이 힘들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마음, 그 마지막 날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도 누군가의 아버지도 아들이고, 남편일테다. 그가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오면 따스하게 밥 한끼를 나누기 위해 식구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다. 그런데 그 사정을 알리 없는 일부 고객들의 가시 돋힌 말들은 그의 힘든 마음에 엉겨붙어 얼마나 또 그를 힘들게 했을까.


나까지 늦었다며 그를 쏘아 붙였다면 그의 하루는, 마지막 근무는 어떻게 됐을까. 아찔하고 찡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도 내집에 온 손님은 특별하진 않아도, 꼭 깍듯하게 대해야지..그리고 오늘 그가 생각나는 또 다른 그를 만났다.


그의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마주하는 나라는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기억에 자리하게 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하는 일, 사람이 부디 항상 사람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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