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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Feb 18. 2023

딸이 살찌는건 싫고, 굶는건 더 싫고       

욕심껏 차린 고집불통 엄마의 밥상

엄마의 고집은 정말 대단하다. 그 고집은 사랑의 양만큼 정확히 정비례한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 연말 닥치는 대로 일을 열심히 했다. 


성과가 미미해서 그렇기는 한데 좋은 경험이었고 후회는 없다. 다만. 부득부득 오른 살은 대책이 없다. 


일을 한참 하고 나면 당이 떨어지는 듯 배가 고프고, '그래, 이거 하는 동안에는 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서 삼시세끼 먹고 싶은 음식, 간식 맘껏 먹었던 결과를 요즘 매일 마주하고 있다. 


거울을 보면 기가 차지만 이 역시 감당해야할 몫으로 이미 예상했던 것으로 ‘살이 찌면 빼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의 밥상이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엄마가 집에 오신다. 다 큰 40대 딸의 집에 오면서도 엄마는 먼 길을 그냥 오지 않는다.      

"뽀시락 거리지 말고, 엄마 그냥 와. 응?"     


나이 든 아줌마들은 원래 관절이 안 좋지만, 외가 집안력 자체도 관절계가 고질적으로 말썽이다. 조금만 돌아다녀도 피곤하고, 팔다리가 아파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라며 매일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을 다니는 엄마는 외출을 싫어한다.      


“나는 집에서 TV보고 노는 게 제일 좋아. 가만 냅둬라. 어디 가자고 하지마.”    

 

남들은 등산에, 골프에, 해안도로 일주에 자식들과 여행을 많이도 가지만, 엄마는 모두 마다한다. 


그런 엄마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애타게 기다리는 날은 한 달에 한번 우리집에 오는 날이다. 이번에도 손주 볼 생각에 신이 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앞서 걱정이다. 


그냥 오시지 않을 텐데, 오는 날이 미리 정해지면 정해질수록 엄마가 많이 준비를 해올게 뻔하다. 어깨며,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가 고생할까봐 걱정이다. 그런데 엄마는 내 말에도 한사코 결국 바리바리 싸오신다.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무조건 안 돼’보다는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협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그래, 결심했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와'가 불가능한 엄마와도 적당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 김치만 가져와! 우리집은 김치 없어서 엄마김치만 기다려. 얼마나 맛있는데 그거면 충분해. 아, 나 파래무침 좋아하니까 그것까지만 해 줘.”  

   

“임 서방, 김치 등갈비찜 좋아하던데? 그것도 안 먹어?”     


“그래? 그거 좋아하지! 그럼, 그것까지만 진짜 그것까지만. 엄마 다른 거해와도 냉장고 꽉 차서 넣을 공간도 없고, 그거 맛있으니까 그것만 먹어도 충분해. 진짜 그것만 해와. 알았지?"     


“그래, 알았다. 알았어.”     


엄마가 왔다. 그리고 알았다. 이 싸움에서 딸은 엄마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엄마는 그것도 해오고 다른 것도 해 와서 냉장고도 싹싹 치우고, 결국 당신 맘 편하게 냉장고를 꽉꽉 양껏 채우고 가신다.      


“엄마, 더 힘없어 지면 못 해줘. 해줄 수 있는 게 다행이야.”     


“나야 고맙지. 엄마 가면 한동안 나 밥 안 해도 돼. 해준 거 있는 것만 꺼내서 먹어.”     

 

“그래, 그 재미로 엄마가 해오는 거야."     


정말 엄마가 다녀가시면 한동안 나는 먹을 걱정, 끼니 걱정, 반찬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는 김치 등갈비찜과 국 한 종류를 잔뜩 하고, 조금 오래 두고 먹어도 되는 각종 밑반찬, 동태전 등 소분해서 냉동한 뒤 꺼내먹어도 되는 것들을 해 오신다. 


정말 당신이 다녀간 뒤에도 딸 내외와 사랑하는 외손주가 단기간, 장기간 먹을 것을 온통 궁리하신 티가 역력하다.      


그걸 생각하면 때때마다 밥 안 해도 되고 편하고 먹을 걱정은 없지만, 꺼내 먹는 마음은 늘 꾹꾹 눈물이 맺힌다. 그래도 해온 거 이미 고생고생해서 해 오셨는데, 너무 나무라면 보람도 없으실 터, 나는 한껏 어리광을 부린다. 


며칠 전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큰 일 났네.. 큰 일이야.." 


"왜???" 


"엄마, 살 빼야 하는데 엄마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수가 없어.“     


“왜? 무슨 일 있어?”      


“오늘도 도서관 다녀와서 배고파서 무청지짐이랑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밥 두 그릇 먹었어. 망했어. 엄마 밥이 맛있어서 살을 뺄 수가 없네."    

 

정말 열심히 일하고 배가 골았다가 집에 도착하자마다 전기압력밥솥에서 밥 한 그릇만 뜨면 식사준비 완료니 너무 편하고 너무 좋다. 


특히 엄마표 밥은 김치며, 김치찜, 무청지짐류가 많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밥에 척 올려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사랑으로 가득 찬 반찬에 포만감이 가득차면 행복이 절로 따라 온다.       


"맛있지? 짠데 많이 먹진 말지. 그것만 먹어라, 잘했네. 저녁 안 먹으면 되지. 아침, 점심에 먹은 건 살 안 돼. 괜찮아. 많이 먹어. 안 그러면 나이 들어 골병든다."     


“이미 많이 먹어서 튼튼해. 걱정 하지 마. 너무 먹어서 탈이니까.”


“그래, 알았어. 그럼 저녁은 먹지 마. 살찌니까. 잘했어."     


사실 엄마는 집에 함께 일 때 오후 5시 반이 되면 밥을 먹으라고 한다. 


굶으면 저녁에 더 먹고 싶으니 일찍 먹으라는 뜻이다. 결국 삼시세끼 다 풍족하게 먹는 셈이다. 정성껏 맛있게 밥상을 차리고, 늘 많이 먹지 말라니 반칙이다.      


뭘 잘했고, 뭘 먹지 말라는 건지. 모두 뒤섞인 엄마의 논리에는 보람과 걱정이 모두 느껴진다. 


딸이 맛있게 잘 먹고 끼니는 거르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 마음. 그리고 누구보다 내 딸이 날씬하고 예쁘게 빛이 났으면 하는 엄마 마음. 


거기에 내 마음이 다가가 부딪힌다. 다이어트는 하고 싶지만 엄마 밥은 너무 맛있고, 엄마가 어떻게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짊어지고 왔을지 다 아는 데 그걸 차마 안 먹는다고 못하는, 혹여 다 먹기 전에 상할까 걱정되는 딸의 마음.      


결국 엄마와 딸은 모두 타협점이 없고 오늘도 대책 없이 각자의 욕심대로 진행 중이다. 


나는 엄마의 밥상을 늘 못이기는 채 맛있게 받아먹고, 이 싸움의 승자는 늘 엄마가 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는 나의 몸매일 뿐.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이젠 영영 돌아올 생각이 없는 한때 잠깐 찍어보았던 체지방 20.3%의 꿈이여!      


오늘도 엄마가 없는 자리에서 엄마 밥을 차려 먹는다. 엄마 밥은 들어간 나트륨만큼 맛있고 짜다. 


엄마 밥은 맛있는데, 어쩐지 꾸역꾸역 먹게 된다. 엄마 밥은 여러 모로 축축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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