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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Feb 24. 2023

칠순 엄마의 팔순 언니

자꾸 그러면 니 안 볼끼다

집순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근데. 엄마 어디가? 시끄러운데?"

"그래. 어디 잠깐 간다."     


누가 들어도 지하철을 타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시치미를 뗀다. 그리고 더 물을까봐 황급히 끊는다. 


칠십. 온 몸의 관절이 안 좋은 엄마는 집 밖을 나서는 일을 꺼린다. 그런 엄마가 길을 나설 때는 거의 99.8%. 나 아니면 이모다. 특히 인천에 사는 엄마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간다는 건 100%의 확률로 이모를 만나러 가는 것. 나는 알고 있다. 


다음날, 전화를 했다. 모르는 채 묻는다.      


“어제 어디 갔다 왔어?”

“니, 모르는 척 해라. 이모 만나고 왔다.”   

   

뭘 또 모르는 척 하라는 건지, 다 티가 나는데 매사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운 엄마가 나는 귀엽다. 그렇게 뻔한 장소를 나름 은밀하게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허리와 무릎은 고질적으로 안 좋았고, 최근에는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오른쪽 팔이 시리다고 매일 같이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다. 


그렇게 아프다면서 이모 만날 날짜를 정해놓고 나면 뭔가를 하기 위해 장을 보고, 잠을 설쳐가며 지글지글 보글보글 요리를 할 테고, 그 결과물을 이고지고 지하철을 타고 가겠지. 


그걸 고스란히 얘길 하면 잔소리를 면치 못할 테니, 가기 전에는 최대한 비밀로 부쳐두고 싶은 것이다. 여러 모로 안 그러면 좋을 텐데 싶으면서도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니 쓸데없는 소리 마라. 안 그래도 속이 상해 죽겠다."

"왜??"

"겉절이랑 반찬 조금 해줬는데, 다음에 이런 거 갖고 나오면 안 본단다. 안 볼 거래."     


이모는 3녀 2남 중 가장 맏이이자 장녀다. 엄마는 그중 넷째이자, 차녀다. 그런 이모와 엄마는 나이 차이가 한참 난다. 


이모는 오래 전 위암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수술을 최근까지 받으셨고, 몸이 많이 축나셨다. 입맛이 뚝 떨어지셨으니 체력은 더 뚝 떨어지고, 면역도 덩달아 떨어지셨다고 나도 전해 들었다. 


그런 이모의 입맛을 살리는 것이 있으니 엄마의 겉절이다.     


요즘에야 ‘비건김치’라고 해서 젓갈 없이 김치를 담그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엄마는 오래 전부터 너무 짜고 매운, 자극적인 것을 피하는 이모만을 위한 김치를 담가오셨다. 


양파와 무, 배를 듬뿍 갈아 넣어 짠맛은 줄이고 집간장을 한바퀴 슥~ 둘러서 간을 맞춘 김치. 빨간 고춧가루로 색을 곱게 입힌 시원하고 아삭아삭한 동생의 김치 겉절이를 이모는 좋아하셨다. 


살림에 여유가 있어 일주일에 두어번 반찬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 계시지만, 동생이 언니를 위해 특별히 만든 김치를 유독 좋아했고, 엄마는 늘 “언니에게 줄 것이 있어 행복하다”며 기꺼워했다.  

    

하지만 그건 엄마가 팔다리가 성할 때의 일이다. 


솜씨 좋은 전문가의 손맛보다 동생의 손맛을 좋아할 만큼, 나만큼 주관적인 입맛을 가진 이모도 동생을 사랑하는 만큼 걱정도 많을 테다 더욱이 마냥 동생도 칠십이다. 


올해 칠순이 되는 동생이 바리바리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싸온 반찬이 이모도 예전처럼 마냥 기껍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 이모도 엄마 아픈데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속상할거야."

"(버럭버럭) 그럼. 내는 받기만 하라고?!! 내가 죽을병도 아니고 이것도 못할까봐."   

  

늘 그렇지만, 사랑 앞에 장사 없다. 셀린 디온이 불렀다. ‘THE POWER OF LOVE'라고.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그 위대한 사랑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또한 사람 이야기는 본디 쌍방, 서로의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 엄마는 항상 넉넉한 언니의 살림 탓에 늘 받기만 했지, 해줄 것도 없고, 해준 것도 없다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한다.    

  

“우리언니 요즘에 아프다더니 영 못 먹어서 살이 더 빠졌어.”

“우리언니 힘들어서 그런지 많이 늙었어. 오랜만에 봤더니.”      


그렇다. 엄마는 ‘그런 사람 없다’며 그런 언니는 둔 자신은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우리 언니가 아파서 너무 속이 상하다고 말한다. 


늙는 건 자연스러운 생의 흐름인데 엄마는 당신의 노화를 뒤로 하고, 사랑하는 언니의 노화 앞에 발을 동동 구른다.       


하긴 나도 엄마에게 ‘우리언니’가 있어 너무 다행인 것 같다. 


엄마의 ‘우리언니’도 항상 동생 생각이다. ‘우리언니’는 자신보다 살림이 팍팍한 곳에 시집간 동생이 늘 안쓰럽다. 


사과를 먹다가 우리 동생도 좋아하는데 싶어서 사과박스를 보내고. 화장품이 참 촉촉하더라고 화장품, 양말 좋은 거 싸게 샀다고 너도 신으라고 한 켤레, 심지어 동생 딸인 내 팬티까지 사서 모아놓았다가 엄마를 만나는 날, 바리바리 싸온다.        


각자의 일상을 살면서 어느 날 만날 것을 생각해 차곡차곡 서로 해주고 싶은 것을 모아놓았다가 문득 약속을 잡아 길 위에서 만나 그것을 서로 나눈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때까지 그것들을 곱씹으며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고마워하고, “이만하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매가 그렇게 나이가 들도록 의가 좋아서, 그 의가 귀엽기도 하고, 무척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사랑하는 우리엄마의 언니가 나이가 들어서 나도 걱정이다.     

 

“이모, 이모가 없으면 엄마가 많이 슬플 거예요. 이모, 엄마 생각해서라도 꼭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효도할게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곁에 계셔주세요.”      


쉴 새 없이 언니자랑을 하는 엄마에게는 질투에 눈이 멀어 핀잔을 주고 만다.    

   

“엄마, 엄마는 나 언니 안 낳아 줘놓고 너무 한 거 아냐? 언니 없는 사람한테 우리언니, 우리언니 너무 자랑하는 거 아냐?? 지금이라도 낳아주던지. 나도 우리 언니!"     


정말 나도 우리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칠십이 되도, 팔십이 되도 언니라, 부를 수 있고, 팔다리가 아파도 마냥 맛있는 겉절이를 해주고픈 소중한 언니, 그런 동생을 “역시 우리 동생이 한 겉절이가 제일 맛있다”고 입맛 돌아하는 우리언니가 있으면 참 좋겠다.     

그나저나 엄마의 우리 언니에게 전화를 한통 넣어야겠다.   

   

“이모, 이모도 포기하세요. 엄마는 그게 낙이래요. 그거 안하면 오히려 병날지도 몰라요. 이모 그냥 맛있게 먹고 건강하세요. 그리고 오래오래 덕분에 입맛나서 살맛난다고 얘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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