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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May 10. 2023

귀인(貴人)

혹시ᆢ540만원 보낼  사람 있을까?

"우리은행에서 540만원 S대병원에 보낼 사람 있을까? 생각나는 사람 있니??"

"아...엄마.. 나 전에 다녔던 회사사장님인가봐..."


눈물이 났다. 너무 고마운 사람. 절대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인연이 끊겨 정말 딱. 잊지만 않고 살고 있다.

천방지축인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글을 쓰는 직업을 선택하게 한 두번째 회사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 안타깝다.

사장님은 여러모로 조금 남다른 분이셨다.


직원들에게 모습을 자주 보여주않는 신비로운 분이셨다. 또 후원자처럼 직원들을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말없이 지원해주시는 분이셨다. 고용관계 이상의 든든한 마음기둥이 되어주는 그런 사장님 덕에 나와 동기들은 늘 작은 회사지만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아빠가 쓰러지셨고 한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휴가를 내고 병실에 있는데, 한 실장님, 사장님 비서분이 오셨다. 엄청 큰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작가님, 걱정이 많으시죠? 고생 많으세요.
회사 걱정하지 말고 아버님 잘 돌봐드리세요.

그리고 잠깐 나와 보시겠어요?"


무슨 일일까 싶지만, 아무 생각없이 병실을 나서서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사장님께서 작가님도 어머님께서도 힘드실거라고  24시간 간병인을 보내셨어요. 오후에 오실겁니다. 어머님께 잘 말씀드리세요."


그럴수 없다고 한사코 엄마가 만류해서 간병인분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간병서비스를 취소했다. 마음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헤아려 주시다니 '열심히 회사를 다녀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중간수납까지 하고 돌아가셨다. 세상에.


너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근무를 하며 1년을 보내는데 아빠가 또 한번, 다른 큰 병으로 어느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친척들과 주변의 염려 덕분에 아빠는 잘 이겨내고 퇴원하셨다.


이후 씩씩하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동기들이 하나둘 퇴사하기 시작했다. 나름의 사정이야 저마다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중간관리자의 지나친 행태가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남았다. 남았다기보다는 버텼다. 나도 힘들었으니.


끝까지 남고 싶었다. 내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게 사장님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왔다. 눈물을 머금고 퇴사를 했다. 그 이후 스승의날 등에 문자를 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이어왔다. 세월이 흐르며 핸드폰 연락처가 날라가고 번호가 바뀌고, 이사를 가고 그러는 사이 어느 시점의 인연들과는 모두 연락이 끊겼다.


그러던 중 받는 엄마의 전화였다.


병원에서 한참이 지나 이중수납이 된걸 발견하고 집에 연락을 해 병원비를 돌려준 것이다.


사장님도, 한 비서님도 당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빠가 퇴원을 해서 회사에 복귀했을 때도 "고생많았다"는 염려의 인사를 건넸을 이었고, 내가 한참 지나 퇴사를 할 때도 그런 내색이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말없이 조용히, 뒤에서 챙겨주셨던 것이다. 그 감동과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내게 그런 고마운 사람들이 살면서 꽤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수영장에 빠졌을 때 헤드락을 걸듯 모가지를 끌고나와 구해준 행인1 오빠.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 때 자꾸만 떨어지는 내 머리를 살포시 눌러 자신의 어깨에 기댈 수 있게 해준 행인2 남학생, 부족한 실력으로 차장에게 깨질 때마다 묵묵히 원고를 봐주고, 때론 "얌마, 원래 그래"라고 위로해주던 내 사수,  10년 전의 인연으로 알바자리를 내어준 팀장님, 말보다 속이 깊은 담당자님, 글을 쓰겠다고 본격적으로 나섰을때 처음으로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모든 게 의심스럽고 지칠 때면 잘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여전히 응원해주시는 조리퐁 작가 선생님, 너무나 자주 흔들리고 나부끼는 내 인생에 큰 중심이 되어주는, 커다란 나무 같고 바위 같은 나의 멘토 남편, 그리고 어느 가정의 누구의 아이로 태어났어도 사랑받았겠지만 여러 모로 성급하고 부족한 나를 기꺼이 엄마삼고 태어나준 소중한 내 아이.


고마운 이들이라고 하나 둘, 떠올리다보면 자꾸만 자꾸만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하며 수면아래에 있던 얼굴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라 끝을 맺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인생은 귀인들로 가득차 있다.수상소감도 아니고, 끝없이 나열만 할 수도 없으니...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이것 참 난감하다.

내 삶의 적절한 때에 나타나 빛이 되어준 고마운 이들에게 거창한 삶의 의미를 담아 눈물 쏙 빠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무리 정리를 해봐도 그럴 수가 없다.

아직 세상에서 겪어야 할 일. 부딪히고 깨달아야 할 일이 더 많은 부족한 내가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뭐라 답하며 고마움에 마침표를 찍고, 정의할 수 있을까. 지금은 역량부족이고, 시기상조이다.

오늘 글은 마무리가 안되는 걸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그저 '덕분에'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말할 뿐이다.  



고맙다. 정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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