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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Jun 01. 2023

벌써. 소방관에게 세번째 신세를 졌다.

첫번째는 구급차. 두번짼 실종. 세번째는 구조였다.

"00 씨 세금 많이 내세요."


요즘 시집, 장가 잘 갔다는 의미로 상대 배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 나도 정말 세금을 많이 내고 살아야 한다. 그다지 엄청 오래 살지도 않았건만, 어쩌다보니 소방관에게 세번이나 신세를 졌다.

첫번째는 구급차를 탔고, 두번째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실종신고가 됐고, 세번째는 구출됐다.

 글은 어린이처럼 "나는 이 다음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그래서 꼭 세금 많이 낼거야!"라는 다짐과 함께 써본다. 파이팅!




구급차를 탄 사연은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뇌출혈인 아빠가 고집을 부려서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출동해 달라고 소방서에 전화하고, 구급차를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던 일.

두번째 소방서에 전화를 건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나의 반려자 분께서 (흠..) 나를 실종신고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조금 많이 창피하니까 짧게 이야기하자면)

늦게 외출을 하거나 특히, 늦은 밤에 연락이 안될 일이 없었던 내가 그날은 퇴사하는 날이었다. 함께 일했던 그녀들과 마지막 회식을 했다. 틈틈이 집에 연락을 했다.


"장소 이동했어. 곧 끝날거 같아."

"나 이제 택시타고 갈거야"


그런데 막상 차를 타고 가려다보니 만취된 그녀들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취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못했던 것 같다. 내 집에는,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방향이 다른 하나, 둘을 수습해서 택시에 태워보내고, 방향이 비슷한 몇몇을 순차적으로 내려다주고 마지막에 내가 하차했다.


그 사이 나의 반려자분께서는 1인극을 하셨다. 온다고 한 사람이 올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자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다고 한다.


'이런 애가 아닌데ᆢ이런 일이 없었는데ᆢ왜 이렇게 안오지? 전화는 왜 안받지? 왜 답이 없지?'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졌다고 했다. 그러다 순간 덜컹.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고 했다.


같은 시각.


당연히 나는 꿈에도 몰랐다.  술취한 애들을 부축하고 택시를 태우다 보니 손이 부족해서 핸드폰은 가방에 넣은 상태였고 시간이 그렇게 흐른 줄도 몰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분명히 난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님께서는 다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핸드폰 위치추적을 하고 싶다고 하자 경찰은 실종신고를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럼 119에 전화를 해보시라고 했다고 한다.

여차저차해서 일단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 님께서는 골목 어귀까지 나와 택시에서 내린 나를 발견하고서는 "내가 오늘 너 때문에 경찰서도 전화하고, 119에도 전화를 했다"며 화를 냈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는 무척 창피했다. 그 바쁜 분들에게..멀쩡한 내가 실종됐다고 전화를 했다고??


세상에...너무나 송구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두번째 나의 실종신고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세번째는 나름 정말 다급했다. (두번째도 그분 입장에선 피가 말랐겠지만)

같이 운동을 하던 자영 씨는 결벽증이 있었다. 애 둘, 남편이 있었는데 남편이 군인이라 갑작스레 이사를 가게 됐다. 문제는 남편이 애 둘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는 것. 빈집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혼자 이사를 해야할 자영 씨가 걱정됐다 .

아이의 손을 잡고 자영 씨네로 갔다. 방 하나 , 작은 거실이 있는 집, 얘기를 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ㆍ간. 아ㆍ차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아, 언니!! 문 닫으면 안 돼!!!"

이미 닫힌 뒤였다. 자영 씨는 결벽증이 있어서 화장실 손잡이를 항상 샤워기로 헹궈서 녹이 슬었던 것이다. 안에서 삭을 때로 삭은 잠금장치는 고장이 나서 문이 닫히면 열리지 않았다.

"아악, 언니 어떡해!!! 언니!!! 언니!!!!(쾅쾅쾅)"

락스로 화장실 청소를 자주 했고 그날도 락스냄새가 무척 강한 상태였다. 한평 정도 되는 작은 욕실에 변기를 딛고 일어서야 겨우 보이는 작은 창은 환기의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 따뜻한 욕실의 물기와

- 강한 락스향.

- 거세게 두들기고 흔드

- 욕실 문의 덜컹 거리는 소리.

갑자기 숨이 막혔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나보다 불안한 심리상태를 가진 동생이었고, 내 아이도 거기 있었다. 엄마가 갇힌 걸 알면 아이가 무척 놀랄테다.  

"자영 씨, 자영 씨. 일단 진정해. 그리고 tv 만화 채널 찾아서 최대한 큰 소리로 틀어놔. 이쪽 사정 모르게 정신을 딴데로 팔아줘."

"네, 언니.. 언니.. 했어요. (쾅쾅) 어떡해..언니!! 언니!! (쾅쾅) 괜찮아요?? "

"자영 씨, 문 두드리지 말고 나  괜찮으니까. 우리 힘으론 어차피 안돼. 그러니까 119에 전화해줘."

흔들리고 두드리는 문소리가 공포영화처럼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신고를 했으니 금방 출동할걸 알지만, 종료가 될 상황인게 분명하지만, 다 알고 있음에도 너무나 숨이 막혔다.

따뜻하고 습한, 폐쇄된 공간에 독한 냄새가 퍼지니 이 상황이 숨이 막히는 건지, 정말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수 없을 정도였다.





잠시 뒤,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고 소방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사모님! 들리시죠?"

순간 생각했다.

"네." (아..나 사모님 아닌데..나이 안 많은데..)


그 이후 소방관들의 이런저런 노력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문을 장비로 열어보려는 노력 끝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사모님, 문에서 최대한 떨어져 계세요. 하나, 둘, 셋 하면 문을 세게 한번 쳐 볼게요.


자, 갑니다! 하나, 둘, 셋!!"

"쾅!!!"

역시..안된다.


애는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애는 역시 티비에 정신이 팔려서 모른단다.


평소 쳐다도 안보는 뽀로로가 그날 따라 그렇게 재밌었을까? 다행이긴 한데 어이가 없다. 엄마가 갇힌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티비를 보다니...쩝..

"사모님, 혹시 창문 밖으로 손을 뻗을 수 있으시겠어요? 건물주인분과 다행히 연락이 닿아 옆집 비번을 알았어요. 저희 대원 한명이 옆집으로 가서 창문으로 장비를 하나 드릴게요.이걸로 한번 안쪽에서 열어보세요."

변기를 딛고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뻗으니 간신히 옆집 화장실 창문에서 건네는 무언가가 손에 닿는다. 그걸로 사모님은. 무사히 열고 나왔다.

문이 열렸을 때 마주한 소방관 선생님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어찌나 민망하고 고맙고, 부끄럽던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봐도 당시로서는 달리 방법은 없었지만 그 바쁜 분들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여하튼 유달리 씩씩한 나는 안 어울리게도ᆢ그날 이후  폐소공포증이 생겼다. 공간의 협소성에 청각과 후각이 함께 자극된 탓인 것 같다.




한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아파트 1층에 사는데 밤 늦게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거다.

'어? 어디 불났나?'

그런데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어? 우리 아파트로 들어왔나?'

그때부터 신경이 쓰이는데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우리집 앞에 주차를 하는게 부엌창문으로 보인다.

"우리집 바로 앞에 주차했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올라가는 다수의 소방관들과 눈이 마주쳤다.

"(헉!!)  어디 불났어요?"

"네, 00층에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요."

알고 보니 00층에 사람들이 베란다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만취한 탓에 '내일 치우자'며 기름기 흡수하라고 신문을 후라이팬에 던져놓았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정작 집주인은 베란다 문을 닫고 술에 취해 잠이 들어 모르고, 아랫층 사람이 연기가 너무 심하다고 신고해서 소방관이 출동했었다.

그런데.. 정말 관리사무소도 설마, 설마 한걸까? 왜 방송을 안했을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안고, 자다가 나왔던데...






내가 세월을 부지런히 살고, 다양한 변화를 겪는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바쁘다.


집에서, 밖에서 자주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 밤이고, 낮이고 그들은 출동한다.


평화로운 어느날의 정적을 깨며 불현듯 울리는 그 소리는 여전히 촌각을 다투며 사는 그들이 생과 사의 경계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가는 소리다.

지금은 가장 꼭대기 층에 살아서 어디에서 와서, 어느 골목으로 진입하는지 정말 한눈에 보인다.

너무나 안타까운 건.. 오래된 동네라 길이 좁고 굽어있는데 불법주차된 차량이 너무 많다.


평소에도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니는데 소방차는 어림도 없다. 번번이 진입실패하는 걸 꽤 여러 번 목격했다.


구급차는 후진해서 돌아 나가서 다른 길로 재진입하는 장면. 또 심지어 어떤 날은 소방관 선생님이 그 무거운 옷을 입은 채로 차에서 내려 불법주차된 차량에 일일이 전화하는 것도 봤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생난리인지.

이제 소방법이 개정돼 불법주차된 차량은 밀어도 된다고 하던데. 파손되도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어떤 목숨이, 어떤 긴박한 상황에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안타깝고 속이 탄다.

119는 불이 났을 때도, 구조가 필요할 때도 우리를 든든히 지켜준다.


그리고 정말 민망할 정도로 송구하고 죄송스러운 정도로 다양한 상황에서조차 우리 곁에 있다.


근데 그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불가피한 여러 상황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 짐을 덜어드려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는 119 소방관 선생님들께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꼭, 보답할 수 있는 날이 나에게 오길, 그런 인간의 도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그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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