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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Jun 14. 2023

식탁 위의 생명들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생각은 한번 해보자.

어렸을 때 나는 분명 고등어, 갈치를 먹었다.


고소한 고등어 구이의 맛. 달큰하게 무와 함께 조려진 부드러운 갈치의 맛을 아는 꼬마를 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먹을 수가 없었다.


그게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동그랗게 눈을 뜬 생선과 눈을 마주치며 그속을 파헤치기 부담스러웠다.



엄마와 시장을 갈때면 순댓집을 반드시 들렸다.


집에서 알배추를 미리 준비해갔다. 막장, 쑥갓을 넣어 야무지게 싸서 엄마와 함께 먹던 순대는 어린 내게 정말 별미자 재미였다.


어느 날은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생각은 없었는지 오물오물 씹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이 간이 그 간이야?"

"응."

"........그럼 귀는(손으로 내귀를 잡으며) 이 귀야?"

" 응."

"허파는?"

"맞아. 그거야."  


무심코 돌아온 대답을 듣고 나는 입안 익숙한 순대에서 갑자기 이물감을 느꼈다.  




생선이 먼저인지, 순대가 먼저인지 뭐가 먼저 였는지 모르겠다.


확실한건 점점 꺼리다 5학년 이후부터는 완전히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래보다 작은데 편식까지 심해지자 아빠는 회 한점에 만원을 걸기도 했었다. (먹지 않았다)

지금은 어떠냐고??


여전히 생선은 먹지 않지만 육류는 잘 먹는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친을 만나서 사랑에 눈이 멀었다. 눈이 먼 채로 맛본 고기 맛은 극락이었다.


곱창이나 닭발 등은 먹지 않지만 살은 먹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다. 그들에게 "살은 조금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니까"라는 궤변을 늘어놓만 말이 안된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이와 별개로 (혹은 유관하게) 항상 동물권에는 관심이 많았다.  


또한 펭귄 북극곰으로 이어진 기후에 대한 위기감ᆢ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라인더로 갈아버리는 수컷 병아리, 상어 지느러미 등에서 이어진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혐오감.


(삭스핀 요리를 위해 배에서 잡아올린 상어는 지느러미만 잘라 바다에 다시 던져버린다. 몸통은 맛이 없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레로 숨을 쉬는 상어는 지느러미가 없으면 헤엄을 칠 수 없어 바다에서 꼼짝도 못하고 가라앉아 죽게 된다. 끔찍한 고통속에서. 인간에 의한 명백한 살생이다.)


출처- 티전드 <인간의 탐욕으로 죽고 있는 동물들> 중


여러 이야기를 접하다가
최근 나는 어린 시절
내 입안에서 느껴진
이물감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건 죄책감이었다.
  
   

사람이 아니니 인류애라 이름 붙일 수는 없지만, 함께 이 지구를 살아가고 숨쉬는 그들에게 동지애를 느낀다. 같은 포유류의 고통에는 유난히 죄책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직 고기를 먹는다. 하지만 내가 면죄부를 받기 위해 이 모든 고통에 대해 모르는 채 할 수는 없다. 실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함께 고민은 해야 한다.  

과연 이대로 좋은지, 실행가능한 방법은 없는지, 보다 설득력 있는 대체제는 없는지. 함께 살아가는 동지애로, 생각을 하는 인간이기에,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 우리가 처한,  우리가 함께 하는 생명들에 대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생각은 한번 해봐야 한다.  

- 이 글은 내가 옳다는 것도,

   당신이 그르다는 것도 아니다.


- 꼭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설득이나 선동도 아니다.


- 나조차도 본격적으로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으니 할말은 없다.  


하지만 몇 차례에 걸쳐 얘기 했듯이 단지 생각은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다.


내가 고기를 먹을 때, 그 앞의 일과 그 위에 일어날 일들을. 동물권과 기후위기는 나와 내 가족의 안위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문제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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