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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Jul 06. 2023

동심을 키우는 백반집

저는 당신의 단골입니다. 영원한.

"이번에 미역국 영 인기가 없네."


"오늘은 장본 것도 없고, 날도 춥고 해서 그냥 김치국밥 끓였어."


내가 수십년째 자주 가는 단골가게 사장님은 손님에게 간혹 투정을 부리신다.


사장님은 백반집, 요즘 말로 오마카세를 운영하시는데 내놓은 음식을 고루 먹지 않으면 금세 시무룩해 지신다.  


워낙 맛집이라서 그런지 서비스 정신은 없다.


준비된 음식 외에는 뭐든 셀프다.


그래도 삼시세끼를 이 집에서 먹고 싶은 손님들은  주인의 눈치를 종종? 자주? 살핀다.  


따로 차려진 메뉴판은 없지만 그날그날 식재료에 따라, 주인장의 기분에 따라, 차려지는 한상차림.


워낙 단골이다보니 예정에 없던 음식이라도 특별히 주문하면 뚝딱뚝딱 차려주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값은 없다.  


엄마밥, 엄마밥상. 


스무살이 너머 대학생활을 하며 엄마밥과 조금 멀어지는 듯 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갖은 음식점을 다녀도 역시 엄마밥이 최고다.  


특히 객지생활이 길어지면 메뉴를 정하는 것조차 귀찮은데, 그때는 그냥 엄마가 "와서, 먹어!" 소리치면 그저 앉아 '냠냠' 먹던 밥이 그립다.  


전업주부인 엄마는 골고루 먹지 않거나, 야심차게 준비한 음식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시무룩해 했다.

 

"오늘 영 안팔리네."

"오늘은 인기가 없네."


그 마음을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직접 음식을 해보니 알겠다.


그 뻔해 보이는 국과 반찬을 고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365일 세끼를 나름 다르게 변화를 주기가 정말 힘들다. 가장 힘든 것은 내 건강, 내 기분이 영 받쳐주지 않을 때다.


가게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거나, 사정이 있으면 '임시휴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엄마밥은 그렇지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해 본 바와 직접 경험해 본 바는 정말 천지차이다.  


밥은 해보니 알겠다.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어"라는 엄마 말을. "오늘은 영 안 팔리네" 속에 긴 실망과 허탈함을. 이제 알겠다.  


요즘은 엄마밥을 먹으면 "역시, 엄마가 한게 맛있네", "입맛이 돈다. 다이어트는 물건너 갔네. 물 건너 갔어"라는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나의 애정하는 백반집 사장님은 "아유, 저녁을 안 먹으면 되지. 점심은 살 안쪄. 안짜? 조금씩 먹어"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만든 음식인지 정성스런 조리과정까지 설명해준다.  


엄마는 한끼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들어간 고민과 수고스러움, 그리고 보람을 한접시의 음식에서 붐비는 젓가락질로 보상받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 엄마밥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엄마밥을 먹으면 엄마도, 나도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어린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음식을 먹으며 함께 몸과 마음이 그때로 돌아간다.


세상 어떤 음식이, 어떤 음식점 주인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움직이게 할까. 동심까지 단박에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한 아이를 뱃속에 품고서 먹었던 엄마의 밥은 특히나 내안에 있던 철없는 꼬마아이를 크게 움직였었다.


한없이 어리광만 부렸는데, 내게도 어린아이가 생겼으니 이제 제법 어른행세를 할 준비를 마쳤는데 "뭐, 먹고 싶어?", "어유, 그렇게 쉬운거 말고 뭐 다른거 더 없어?" 엄마는 내게 어른스러움이 아닌, 어리광을 주문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음식만 먹으면 나이가 몇이든 아직도 어린아이가 된다.




'100년 가게'라는  이름표를 엄마에게 주고 싶다. 엄마의 백반을 오래오래 먹고 싶다.


언제고 아무때고 찾아가서 차려주는 대로 맛있게 먹고 싶다. 때론 어리광을 부리며 이것저것 주문하고 싶다.

 

100년 동안, 1000년 동안 엄마의 밥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 밥해줄 수 있을만큼 엄마가 오래오래 정말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 가게가 없어질 날이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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