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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Jul 12. 2023

소문난 돼지집, 고기가 없다.

바리스타가 사인(?)해서 커피를 준다.

동네 언니는 젊은 나이에 벌써 건물주다.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언니답게 언니건물은 저렴하게 지어지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 대충하지 않는 언니는 문짝 하나, 벽돌 한장도 직접 골라 지어 올렸다.


덕분에 고만고만한 동네 빌라들 사이에 단연코 돋보인다. 공들인 티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로변에 위치하지 않고, (야트막하지만) 산밑에 있어 공실로 오래 있었다. (그전에는 주로 도자기 공방 등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세가 나갔단다.  


카페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카페가 들어오면 (가득이나 시세보다 저렴한데) 세를 싸게 주겠노라 호언당담했는데, 정말 카페가 들어온단다.  


요 앞에 대로변 카페에서 10년 가까이 매니저로 있었던 젊은 남자란다.  


그렇게 삼면이 통유리로 되어 빛이 해사로운 그자리에 우리가 기다리던 카페가 오픈하는 날을 애타게 기다렸다. 생기기만 하면 죽치고 있으리.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공구가 하나 둘, 늘어가고 매일매일 조금씩 뭔가가 생긴다. 직접 나무를 자르고 못질하고 만드나보다.  


"아이고, 저러고 있어도 세는 내는거 잖아??.. 세상에...저렇게 공사해서 언제 오픈하나??"  


나를 비롯한 오지랖 넓은 한국인들 걱정이 땅거미처럼 늘어질 무렵, 드디어 오픈한 것 같다.  


어라???


그런데 내가 아는 카페의 모양새가 아니다. 마주 앉는 좌석 없이 중간에 커피 관련 기구들이 잔뜩 있고, 칵테일바처럼 뱅그르르 둘어앉는 구조다.  


"오마나, 남사스럽게 부담스러워서 커피 어떻게 마셔?? 조용히 얘기하거나 구석에서 일하고 싶은데 앞에서 저러고 있음 신경 엄청 쓰이겠는데???? 옆자리에 모르는 사람이 나란히 나란히 앉아있는 것도 별로야."    


그러거나 말거나, 내맘 같지 않은게 원래 세상이다.  


저게 요즘 유행하는 에스프레소바란다.


벌써 늙었나보다. 저런 게 유행인 몰랐다.. 일단 내 취향은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가오픈이라고 커피를 주는데 맛있다???


에스프레소는 처음 마셨는데, 신세계였다. 에스프레소 종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처음 알았다.



한층 더 깊은, 한차원 다른 커피 세계가 내 앞에 활짝 열린 기분이었다.


커피 관련 자격증이 수두룩하고, 섬세한 미각을 가진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에스프레소가 이렇게 맛있는거 였어??"


"아니, 원래 사약 같은 맛도 많지, 원두선별부터 로스팅까지 꼼꼼하게 하는거 같아. 정말 잘하는 거야."  




카페이름은 벌써 정해져있었다.  


<검은돼지새끼> 아......아니다 <검은새끼돼지>


(돼지새끼와 새끼돼지는...천지차인데...자꾸 돼지새끼가 입에 착착 붙는다. 큰일이네..)


'뭐야, 삼겹살 가게 이름 같은데?? 제주 흑돼지집인줄 알겠네...이름이 왜저래?'라는 궁금증 혹은 불만은 숨기고 "이름 뜻이 있어요?"라고 고상하게 돌려 물어봤다.  


검은돼지새끼는, 아니 새끼돼지는.. 19세기 독일주점의 이름으로, 당시 철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모임장소였다고 한다.  



시골 동네지만 독특하게 연구원이나 박사 등이 많으니 뭐 어울리는 것 같............긴...... 개뿔 뭐가????? 어울려????? 라고 생각했지만, 커피가 정말 죽인다. (커피골초로서 장담한다.)  


근데..오픈을 안한다.


가오픈이 두차례, 세차례 미뤄졌다.


이유는 로스팅맛이 안 잡혔단다. 아주 예민한 작업이라고 뭐라고 하는데, 뭐라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커피 한잔이 이렇게 섬세하다는 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렇게 또 한달이 흘렀다.  


이제는 오픈했을까? 고개를 내밀면 공짜커피만 자꾸 준다. 오픈을 안해서 값을 받을 수 없단다.


그렇게 공짜 커피, 공짜 아메리카노를, 공짜 바닐라라떼를 주구장창 얻어먹었다. 얻어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불편한 마음에 '계산이 마려운 집'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그러다 정말 진짜 드디어 오픈했다.  


그런데 또 몇일 뒤,


돈을 또 안 받는다.


원두맛이 안 잡혀서 돈을 못 받는단다.  


"저 총각, 장가가면 안되겠는데????? 커피로 예술을 할 모양이야.(쑥덕쑥덕) 먹고 살기 힘들겠어. (쑥덕쑥덕) 맛있는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이상하네. 엄청 예민한가 보다."


오지랖이 넓은 나는 속이 탄다.


맛있는 카페 망해서 없어질까봐. 위치도 구석탱이고, 간판도 없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동네방네 은근히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스파이처럼.  


그러던 (또) 어느날. (어느날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글이다. 오픈을 이렇게 미루니...쩝...)


"어머, 저기 코너에 공방자리, 카페 생겼는데 가봤어요?? 커피, 진짜 너무 부드럽고 고소하던데. 저기 주인이 엄청 까다로워서 바닐라라떼 시럽도 직접 만들어서 하더라고."  


"아, 간판 없는 거기요??"  


"아! 가봤어요? 맛있죠??"


"아니요.맛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갈 때마다 문이 닫혀있던데. 00 씨도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검은돼지새끼, 아니 새끼돼지는 "그렇게 맛있는데 그렇게 문을 안 연다"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돼지집, 오픈 1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범상치 않음은 눈치챘지만, 아직도 간판 없이 A4용지에 그린 그림이 붙어있다.


야외에는 신호등 같은 버스정류장 벤치 같은 걸 갖다 놓았는데 테이블에 매직으로 슥슥~ 대충 그렸다.

입간판도 검정매직 하나로 해결했다.



그런데 총각사장 그림솜씨가 수준급이다.  


글솜씨, 말솜씨도 센스 대박이다. 커피는 더 죽인다. 빵도 기가 막히는데 단체주문이 많아  굽는건 많이 봤는데 사먹는건 하늘의 별따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소문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다.


회사가 많은 동네라 금요일 저녁에는 유령도시 같은데 토요일 아침에도 북적북적 붐빈다.

 

인근 지역까지 소문이 나서 그렇게 차를 타고 온단다. 간판도 없는 작은 동네 카페가 그야말로 실력 하나로 입소문을 제대로 탔다.  



그래도 나는 그의 단골이다. 나만 단골이라고 생각하느냐, 에헴!! 단골의 증표가 있다.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단골에게는 컵에 싸인들해서 준다.  


내 것의 경우 '자까님 라떼'라고 써서 주고, 아침마다 들리는 국숫집 자매님들의 커피에는 '국수집 언니', '국수집 동생'이라고 쓴 걸 봤다.

 

지난주 매장전경은 사진을 찍었는데, 테이크아웃컵 그림이 빠진걸 오늘 알았다.


오늘 샘플로 사진을 찍어서 올리려고 했더니, 오늘도 로스팅이 문제가 있다고 문을 닫았다. (그래도  이정도면 오랜만이다.)


그래서, 샘플로 내가 그렸다. ㅋㅋ


나는 그의 집, 바닐라라떼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아메리카노를 자주 주문한다. 그는 내게 이야기한다.  


"작가님, 아직도 간헐적 단식 중이세요?"


"네, 10시 반 전에는 아메 ㅠㅠ"  


돈 주고도 마시기 힘든, 유명한 에스프레소바의 단골이라 느끼는 소소하고,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다.  


"돼지 사장님, 부자되세요!!"       


돼지 사장님 글솜씨가 죽인다. 그의 카페가 더욱 번성해 글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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