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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Aug 02. 2023

운을 사는 사람들

이번 주는 부자가 되었을까??

 버스로 다섯 정거장. 그곳. 거기 그 ‘로또판매점’.

 

1등이 7번. 2등이 20번이 나왔다. 집근처 가까운 곳에 로또방이 있지만 굳이 한시간을 걸어간다.


그곳에. 묘한 징스크와 이상한 신념과 기적의 논리로 완성된 루틴이 있기 때문이다.  


“두 게임만 주세요.”

“세 게임만 주세요.”  


당첨된 것을 새로 바꿀 때는 제외하고는 거의 매번 2000원에서 3000원 정도만 구매한다.


처음 발걸음 하면서 만원, 오천원을 내밀고 이렇게 말하면 사장님이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 한잔도 5천원 전후니, 요즘 5천원의 화폐가치는 크지 않다.


로또는 대부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 대부분은 5천원이 기본이겠지, 이해한다.  


“한 장 달라는 거예요?? 5천원 치??”

“아니요, 딱 2천원 치. 1000원 짜리 2게임이요.”  

 


나는 믿는다.

 

될 사람은 1000원을 사도 될 것이고, 안 될 사람이라면 10만원을 사도 안 될 것이라고.


어쩌면 지독한 운명주의자다.


될 사람은 된다는 운명주의자가 아무 곳에서나 사면 되지, 왜 풍수(?)와 명당을 따지는 것처럼 멀리 가서 특정 지역에서만 사느냐. 4등 (5만원은 꽤 여러 번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곳, 그곳에서 산 것들이었다.)


될 사람은 되는데, 되는 장소도 따로 있다는 이상한 징크스가 생긴 셈이다.  




처음에는 운동을 할 겸 갔었다. 운동은 도서관을 가기 위한 핑계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서관을 가는 게 매번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도서관을 찍고만 오자라고 생각했다.  


책을 고 글을 쓰지 않아도 좋아.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걷기만 해도 오늘 하루 운동은 한 거니까 얼마나 보람돼?


그것만 해도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비했다는 자책은 면할 수 있어. 뭐라도 하자.’


그런데 문제는 일부러 나가서 걷는다는 게 생각처럼 또 쉽지 않았다.


운동은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날이 덥고, 춥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삭신이 쑤시고, 기분이 유난히 쳐지고, 핑계는 늘 있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었다.  


‘가서 그 근처 로또명당에 가서 로또를 사자.’  


도서관을 왕복으로 걷으면, 버스요금 약 3천원을 아끼게 된다. 그 돈을 로또에 투자하자, 건강도 얻고 복권도 사서 당첨의 가능성도 얻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얼마나 좋아,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신기하게, 도서관을 가는 일이나 걷는 일에는 핑계가 생겼지만 로또를 사는 일은 귀찮치도 핑계도 생기지 않았다. 당첨의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나 아까워서 밖으로 꾸역꾸역 나가게 됐다.


이번에 될 수도 있는데 귀찮아서 기회를 놓치면 어쩌지?, 라는 조급증이 매일 나를 밖에 나가게 했다.  



늘 생각하고 주장하는 바지만, 사람은 일단 나가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핑계를 만들어서든. 나가서 볕을 쬐고 바람을 쐬야 한다.


방구석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무기력이 한 걸음, 두 걸음 떼면 점차 증발한다.


기적처럼 불안과 우울, 무기력이 사라지면서 내안의 긍정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비록 새벽에 쓴 편지처럼 다시 보면 유치한 것들도 있지만) 밖을 나서면 몸에 없던 활기가 생긴다.


사람도 식물도 자고로 광합성을 해야 ‘사는 법’이다. 매사 귀찮지만 복권을 사러 가나면 활기가 생겼고, 그로 인해 한 시간이라도 간 김에 책도 읽고, 글도 쓰게 됐다. 걷는 건 보너스!  


그렇게 오며 가며 매일 같이 들리는 복권방. 사장님은 그냥 푼돈으로 운을 얻고자 하는 단골손님으로 보이겠지?  




이로 인한 소소한 기쁨은 또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10시 즈음. 중얼중얼. 설렌다.  


“아, 이번 주에는 부자가 됐을까?”  


복권추첨 시간에 번호를 확인하지 않는다. 당첨번호 발표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포털사이트에 ‘로또당첨번호’라고 검색할 수 있는데, 그 옆에 당첨판매점이 쭉 뜬다. 1등과 2등만. 나는 항상 그걸 확인한다.  


그 주에 그 복권방에서 또 2층이 나왔다. 얼마나 설렜던지. 난 줄 알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쉼호흡을 하고 번호를 확인한 뒤, 살짝 실망했다. 해당 주에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5000원이 되었다. 월요일 복권방에 가서 사장님께 말했다.  


“이번 토욜, 또 여기서 2등이 나왔더라고요.”


사장님 표정에 뿌듯함이 번진다.  


“네.”


“전, 진짜 전 줄 알았어요.”  


사장님이 빵!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도 5000원 됐네. 이걸로 이번 주 1등 될거야.”   


사장님은 나에게 이후 축복의 메시지를 복권과 함께 전한다.


복권을 사는 단골은 많아도 다들 무표정한 눈빛으로 돈만 건네는 경우가 많다. 인사를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동안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사장님의 눈빛과 표정, 언어가 달라진 걸 보면.   

복권을 사며 한가지를 느꼈다. 단골은 오가는 횟수로 정해지지 않는다. '교감'을 반드시 전제로 한다. 교감은 반드시 물질적인 가치 이상을 다시 돌려준다.  


“이상하다. 아직 1등이 안됐어? 될 때가 됐는데.”

“자,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정말 나는 언젠가 될 것 같다.


나는 꾸준히 운을 사고, 판매자는 매번 나에게 좋은 기운이 담긴 축복의 말을 전하고 있느니 나는 분명히 될 거다. 로또가 되지 않아도 매일 걷는 그 길의 에너지가 나를 그 이상의 운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잘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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