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3. 유명한 관광지

한국인에게 유명한 곳, 그렇지 않은 곳

by 모모


#11.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날씨가 맑아 기분이 들떴다. 오늘은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밤에 미리 정해둔 오늘 아침을 먹을 카페는 숙소에서 걸어서 20여분 정도였다. 구글맵을 믿고 걸어가보기로 했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호텔방에서 서둘러 씻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익숙치 않은 호텔방에서 서둘러..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나랑 동네 할아버지 한 명 밖에 없던 교각길. 햇살도 너무 좋고 일본스러운 경치를 만나 설레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아 두근거리며 오늘 한번 신나게 찍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가방을 열어보는데 아뿔싸, 캐리어 안쪽에 넣어둔 필름을 챙겨나오질 않았다. 숙소에서는 15분 정도 걸어나온 상태였다. 다시 돌아가자니 햇살이 너무 뜨겁고 계획했던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 몰라 몰라.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서 라기보단 당장 돌아가기 귀찮은 마음에 원래대로 앞을 향해 걸었다.



카페로 가는 길은 작은 하천을 따라 이어진 조용한 주택가였다. 곳곳에 수국과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볕도 좋고 길도 예쁘고. 기분 좋게 카페로 향했다.



찾아간 곳은 전면이 개방되어 있는 "MurMur" 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였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용히 알려지고 있는 카페로 누군가 "인생 프렌치토스트를 맛본 곳" 이라는 후기를 봤던터라 기대를 잔뜩 품은 채 토스트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다보니 필름 생각이 다시 났다. 어떡하지, 이제라도 숙소로 돌아가야하나, 그럼 남은 일정은.. 가는길에 필름을 살만한 곳이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나고 결론적으로 짐을 미리 챙기지 않은 나 자신에게 화가났다. 그러다보니 기껏 잘 여행와서는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연이어 다가오는 자괴감. 일기장에 메모를 하며 고민하다 결국은 다음 목적지에서는 사진을 포기하고, 니시키 시장에 가서 필름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포기하고 나니 편하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현재의 나에게 가장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택하는 게 옳다는걸 알고는 있지만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한 나를 미워하지 않고서는 못견딜 때가 있다. 바보같은 일이다.

따듯하게 서빙된 토스트는 맛있었지만 어릴적 엄마의 맛있는 토스트에 단련된 내 입맛에는 그저 달다구리 계란빵이었다. 그래, 사진도 핸드폰으로 찍어서 더 예쁠수도 있지. 늘 내 기대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며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2. 카페에서 나와서는 쇼세이엔으로 가려했다. 교토타워를 배경으로 정원이 멋들어진 곳이라 꽤 기대가 컸던 곳이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려고 하니 입구는 카페에서 정 반대 방향에 날씨도 흐릿해지는 것이 영 맘이 내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사진 찍으러 가려했던 곳인데 남은 필름은 이제 겨우 두 컷 정도. 그래, 혼자하는 여행인데 내가 안내키면 안가는거지.. 여기서 바로 버스를 타면 다음 목적지인 D&D department 까지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욕심을 버리고 나니 다음은 더 쉬웠다.

D&D department를 찾는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도 상 분명히 이 근처에 있어야 하는데, 휙휙 고개를 둘러본 어디에도 그런 상점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헤맨 뒤 깨달았다. D&D는 바로 눈앞에 있는 절 담벼락 너머에 있었다. 절 내부 구석의 작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어진 D&D 는 요즘말로 아주 힙(hip)한 상점이었다. 위치나 외관은 말할 것도 없었고 컬렉션 또한 독특한 아이템이 가득했다. 문제는 너무 특이하다는 점? 컨셉과 외관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뭐라도 하나 기념으로 구입해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살 것이 없었다. 혼자 두 세바퀴를 빙글빙글 돌고서는 포기하고 돌아섰다. SNS에서 그렇게 다들 기념품을 장만해오는 것 같았는데, 도무지 나에게 탐나는 물건이라곤 없었다.

#13. 카라스마 거리 한복판에서 "나니와 카메라" 라는 매장에서 필름을 구입했다. 교토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로 백화점과 갖가지 상점들로 북적이는 곳 한복판에 카메라 매장이 있고 심지어 필름을 판다는게 신기했다. 중고 카메라도 취급하길래 예전부터 갖고싶던 카메라 이름을 슬쩍 물어보니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머쓱한 마음에 요즘 한국에서 필름 카메라가 유행해서요~ 라고 하니 일본도 그래요 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교토 특유의 이 냉담한 접객 분위기는 하루만에 익숙해지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긴 필름을 팔아주는게 어딘가. 이제 남은 하루는 다시 맘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금새 휘파람을 흥얼거리며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14. 니시키시장 근처에 있는 SNS에서 극찬한 "후미야 나베" 라는 나베우동집을 찾아갔다.



여행객도, 로컬도 많아던 곳이라 (또) 기대를 해버린 탓인지, 나베 우동은 평범했다. 면은 쫄깃하고 맛있었만 재료를 태워 불맛을 담아내서인지 씁쓸한 탄맛이 입안을 온통 휘감아 먹기에 조금 거북했다. 찾아온게 아까워 한 입 두 입 더 먹다 결국은 숫가락을 내려놨다. 분명히 인터넷에서는 기본 메뉴인 후미야 나베가 인생 우동이라며 강력 추천을 했던 것 같은데 옆 테이블 중학생 네 명 중 아무도 후미야 나베를 시키지 않는 것을 보며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키츠네 우동을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동을 먹고 나오니 바로 앞에 니시키 시장이 있었다. 나 지금 교토야, 니시키 시장에 왔어- 라고 하니 얼마전 교토에 다녀온 친구가 두부 도넛을 먹어보라며 메세지를 보내왔다. 도넛은 6개, 10개 묶음으로 팔리고 있었다. 나 배 안고픈데~ 다 못먹을 거 같아 라고 하니 친구는 자기만 믿고 일단 한번 먹어보란다. 속는 마음으로 6개 묶음을 사고 한 입 두 입 베어물며 친구에게 정말 고맙다며 답장을 보냈다. 부드러운 도넛을 꼭꼭 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15. 다음 목적지는 에이칸도 젠린지 라는 이름의 절이었다. 구글맵을 보니 가는 길에 조금만 걸으면 블루보틀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호기심에 블루보틀을 들린 후 에이칸도에 가기로 했다.



블루보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드립커피 전문점으로 청량한 푸른색 마크로 유명하다. 아시아에서는 도쿄에 처음 매장을 오픈했고, 선풍적인 인기에 도쿄에만 지점이 세 군데, 교토에도 두 개의 매장이 있었다. 곧 우리나라 삼청동에도 오픈한다는 얘기에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궁금증은 언제나 있었다.

매장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곧 라떼가 나왔고 드립 커피로 만든 라떼라 특유의 산미가 감도는데 독특한 향이 마음에 들었다. 좁은 매장에 사람이 가득하다보니 여유롭게 커피를 즐길 분위기는 아니어서 잠시 일기를 쓰며 머리속을 정리하고 얼른 커피를 들이켜고선 매장 밖으로 나섰다. 커피맛을 즐겼다기 보다는 그 유명한 블루보틀 나도 와봤다! 라는 마음이 더 컸다.

#16. 에이칸도는 난젠지에서 조금 더 깊숙한 곳에 있었다. 난젠지는 오래된 수로로 유명한 절인데 교토에 처음 왔을 때 방문했던 곳이었다. 큰 입구와 갈색의 수로가 인상깊었다. 많은 사람들이 난젠지로 향하거나 머무르는 듯 했다.



난젠지를 지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보니 영락없는 시골길이다. 이런곳에 과연 절이 있기는 한지 의아한데다 도무지 외국인인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간판이 없어 약간은 불안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발걸음의 끝에는 에이칸도 젠린지가 있었다. 정확하게 어떤 절인지, 무엇이 유명한지 알지도 못한채 가이드북의 "에이칸도 젠린지는 절경을 뽐낸다"는 문구에 막연하게 찾아온 곳이었다. 입구부터 마음에 들었다. 초록색 단풍잎이 넘실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금발머리의 여행객에게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 청하자 꽤 멋진 사진을 찍어주었다. 당신도 사진을 찍어 드릴까요? 하는 제스춰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17. 프레임에 담긴 풍경을 좋아한다. 옛날 일본사람들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유독 창 밖으로 그림같은 경치를 바라보는 정원이 많은 일본이다. 에이칸도에도 창 너머로 혹은 건축물을 통한 틀 사이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긴 길쭉한 창문은 시작일 뿐이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방문했던 나는 하마터면 본당을 놓칠뻔 했다. 특별히 본당을 알리는 표식도 없었고 관광객도 많지 않아서였다. 다행히도 왠 일본인 부부가 본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 저기도 한번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설 수 있었고 그건 최근 3개월 사이에 내린 결정 중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나즈막한 복도로 끊임없이 연결된 본당은 작은 연못과 정원으로, 옆으로 늘어선 나무로, 본당 내 오래된 그림과, 본적없이 화려한 실내 장식들, 불상들로 쉴 틈 없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유럽에 있는 높다란 천고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성당들을 보며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만들어냈는지 놀라워하곤 했는데 절을 보며 그와같은 감탄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18. 본당과 실내를 천천히 모두 둘러본 후 드디어 다시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을 걷다보니 화살표로 표시된 장소가 있었다. 본관 방문 후 에이칸도에 대한 만족도가 몹시 올라간대다 놓칠뻔 했던 실내에 감탄 감탄을 하고 나온 터라 이 또한 그만큼 멋진 장소일 거라 생각했다. 앞서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 따라 오던 일본인 관광객 세 명은 올라가던 중 포기하고 내려가버렸다. 산 속으로 오르며 약간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거 끝까지 가보자며 턱까지 올라온 숨을 고르며 도착한 곳에는 그저 작은 사당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노력을 들여 찾아올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순간만큼 조용하고, 눈앞의 광경과 공기, 온도, 바람을 온전히 느낀 시간은 다시 없었던 것 같다.


여행지에서 높은 곳(특히 내 발로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곳)은 대체로 힘들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만족을 주는 듯 하다. 너무 조용해서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서둘러 내려왔다.



다시 내려와 마주한 정원의 나머지 부분도 무척 아름다웠다. 구경하며 마주친 사람은 총 4명. 그 중 한명은 처음 들어설 때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었다. 출구 근처에서 마주친 그녀는 따듯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정원 아랫쪽도 가봤나요? 거기선 이 뒷산의 작은 뷰 포인트(방금 전 다녀온 사당을 말하는 듯 했다. 아래 사진 우측 약간 상단에 있는 작은 건물이 그 곳) 까지 한 눈에 보이는데 무척 아름다워요." 방금 전 지나왔다고, 정말 예쁘다고 말하니 웃으며 "당신이 가보지 않았다면 꼭 가보라고 추천하려 했어요, 사진을 찍고 싶어 할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며 눈으로 내 카메라를 가르켰다.


(실제로 사진은 많이 찍었습니다.)

크게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만족도가 몹시 높았던 에이칸도 젠린지. 이 곳 또한 단풍으로 가득차 있어 가을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계속 지금의 인지도가 유지되어 다음에 방문할 때에도 오늘처럼 조용할 수 있길, 잘 보존되길, 하고 기도하며 다음엔 꼭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만큼 좋았다.



#19. 해질 무렵에 삼삼오오 친구들, 연인들이 모여 앉아있던 카모강. 성시경이 이 곳을 그렇게 극찬했던가. 동행이 있었다면 강가 식당을 찾았을 것 같다. 나는 그저 스쳐지나갔다. 혼자서 강바람을 맞으며 앉아있기엔 처량해 보일 것 같았다.



니시키 시장과 연결된 상점가는 매우 길고 다양한 상점들이 있었다. 그저 시장인 줄 알았더니 꽤 역사가 깊은 상점가가 시장의 형태로 변모된 것이라 오래되고 유명한 점포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규쿄도 본점을 찾아서 깊숙히 들어갔다. 규쿄도는 1663년부터 종이와 붓과 같은 문구류를 팔아온 문방구로 지금까지 약 400여년간 명백을 이어오고 있다. 도쿄 긴자에 매장이 있어 작은 향 사체를 사거나 엽서를 사기 위해 종종 방문했던 곳인데 교토에 본점이 있다고 하니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기자기 하게 꾸며진 매장에서 필요했던 물품들을 구입하고 지나쳐 가는길에 오래된 서점과 갤러리가 눈에 띄었다. 서점의 한 부분인양 앉아있던 주인 아저씨와, 그림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할머니의 시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는 그저 오래된 상점가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이겠지. 이토록 세상은 넓고 다양하고 나 외의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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