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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by 례온

진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항상 자신보다 더 심한 사례를 찾는다. "진짜 알코올 중독자란 바로 저런 경우야"라고 말할 만한 사람들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 지하철에서 술을 병째로 들이켜는 부랑자, 싸구려 호텔에서 술에 젖어 비틀거리는 붉은 얼굴의 세일즈맨.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보다 열 단계, 스무 단계 아래에 떨어져 있으니 우리가 음주 때문에 아무리 고민하다 해도, 그들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아무 문제 없고 안전해 보였다. 우리의 통제력은 아무 문제 없고 안정해 보였다. 우리의 통제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술에 빠진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까지는 안전하고, 바로 그다음 자리에 선 사람들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p. 51)


자격증 받기 시간이면 '저는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숱하게 들을 수 있다. 그 내용은 성적, 신체적, 심리적 학대를 비롯한 현대 미국인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상대적으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내가 가진 이야기는 너무 빈약하다는 일종의 죄책감마저 든다. 때로는 내게도 배경은 이렇고 기승전결은 이렇다는 좀 더 또렷하고 생생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태를 결정짓는 단 한 번의 사건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알코올로 출렁대는 참담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도 자신이 알코올 중독에 빠져든 결정적인 계기는 알지 못한다. (p. 72)


내가 아는 모든 알코올 중독자에게 공통되는 신념의 방정식이 있다. 그것은 '불편+술=불편없음'이라는 것이다. (p. 101)


AA 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우리는 방향감각도 잃고 발 딛고 선 땅에 대한 안정감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느낌과 싫어하는 느낌,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필요한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술에 젖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그것을 찾아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우리에게 보호막을 둘러쳐서 자기 발견의 고통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준다. 그 보호막은 극도의 안온감을 주지만 극도로 교활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허상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허상이면서도 진정한 실체처럼 간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극은 그 보호막이 작용을 멈추면서 시작한다. 변신의 수학은 바뀐다. 이것은 불가피한 결말이다. 장기간에 걸친 과음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린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맺은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업무에 장애가 발생한다. 재정 문제, 법적 문제에 부딪히거나 경찰과 부딪힐 수도 있다. 고통이 커지면 어느 순간 옛 수학(불편+술=불편없음)은 전처럼 들어맞지 않게 된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소심함이나 두려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좀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방정식은 더욱 강력하고 완전한 내용으로 바뀐다. '고통+술=자기망각'이라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삶을 구역화한다. 그러므로 내 행동은 아주 전형적인 사례였다. AA 모임에 가면 그런 이야기를 거듭 듣는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중 인생을 영위하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 하나의 삶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에 기반을 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p. 132)


술은 거짓된 미혹이다. 알코올은 힘을 주지만, 준 만큼 그대로 앗아간다. (p. 138)


중독은 그토록 능수능란하게 서로 얽혀든다. 강박적 과식은 우리에게 수치심과 성적 열등감을 안겨주고, 우리는 자기혐오를 덜고 허위의 자신감이라도 얻으려 술에 의지학, 그러다 보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섹스를 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우리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그렇게 중독의 춤은 계속된다. 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음악이 '여자들의 마음'에 언제나 흐르기 때문이다. 공포와 분노를 배경음으로 깐 그 음악은 우리를 억제와 방종, 연애와 도피라는 슬픈 순한으로 이끌고 간다. (p. 193)


그 무렵 나는 술보다 줄리안에게 더 중독되었다. 내 세계는 점점 작아졌다. 줄리안이 내 정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일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도 온종일 그에게 내 심정을 하소연하는 편지만 써댔다. 만나는 친구도 줄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줄리안뿐이었다. 그가 나에게 한 말, 내가 대꾸한 말, 그 말의 의미는 무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고, 줄리안 이외의 일에는 신경쓰기가 어려웠다. (p. 252)


너무 오래 슬퍼하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법이다. 그들의 말투에서 내가 얼른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봄부터 여름까지 모든 슬픔을 보이지 않는 작은 서랍에 숨겨두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밤이면 술을 열쇠 삼아 그 서랍을 열고 엉엉 울었다. 어쩌면 술을 통해 그런 감정을 억누르고 슬픔을 멀리 몰아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p. 313)


알코올 덕분에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번잡한 노역을 피할 수 있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라든가, 내가 물려받은 조용하고 억제되고 예민한 성격을 인정하는 것, 또 남이 와서 내 욕구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는 그런 많은 것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알코올은 내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다.


기다려라, 견뎌라. 사람들이 전해준 가르침을 새기고 또 되새겨라. 자신이 알코올 중독 여부에 의문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알코올 중독자라면 술을 마시면 안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면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

얼마나 깔끔한 논리인가.

이렇게 말하라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사람들은 새벽 2시 반에 잠에서 깨어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인지 아닌지 묻지 않는다.'

이 역시 훌륭한 현실 점검 논리다.

그리고 말하라

'도와줘.'

그러면 놀랍게도 우리에게 도움이 찾아온다. (p.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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