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아직 내가 소중하다

내가 겪은 불면증과 수면제의 역사

by 례온

최근 수면제 용량이 많이 줄었다. 이젠 새끼손톱의 1/4도 안 되는 크기의 약 두 알 정도만 먹는다. 이 변화가 너무 감사하면서도 또 놀라워서, 지금까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이켜보기로 했다.


애초에 처음 약을 먹기 시작했던 건, 기분 조절이 아니라 수면장애 때문이었다. 한평생 베개에 고개만 대면 잠들던 삶을 살다가, 뜬 눈으로 새벽 5시까지 버티다가 간신히 지쳐 잠드는 생활을 3달쯤 이어가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어서 병원을 찾았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엔 수면제 용량이 매달 늘어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약 처방은 전적으로 의사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나는 꽤 센 용량으로 스타트를 끊은 편이었다. 약 먹고 비몽사몽한 채로 카톡 답장을 해놓고 기억 못 하는 일도 자주 있었고, 흔히들 말하는 수면제 부작용 때문에 잠결에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찾아먹다가 그대로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실수하겠다 싶어서 핸드폰을 끄고 잠들었고, 자고 일어나면 꼭 내가 허튼짓을 하진 않았는지 검토하는 게 습관이 됐다. 수면제 용량에 간신히 적응할 때쯤, 수면제 약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러니까 잠에서 깨기 위한 아침 약 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면제로 잠재웠던 텐션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 같은 것이었다. 처음엔 수면제 없이 못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아침약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유 없이 과하게 짜증을 내고 예민하다? 시간이 지나도 잠에서 깨질 않고 몽롱한 기분이다? 무조건 아침약을 안 먹은 것이었다. 수미상관처럼, 눈을 감기 직전 약을 먹고 눈을 뜨자마자 약을 먹었다.


그맘때쯤부터 '이러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다. 고작 5-6알 밖에 안 되는 약에 나의 하루가 좌우된다는 사실에 꽤나 좌절스러웠다. 하지만 함부로 단약을 시도하진 않았다. 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끊었을 때 무너질 일상생활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약 용량이 가장 높았던 건, 수없이 이사를 하던 시기였다. 집이라는 뿌리가 전부 삭아 없어져버린 것처럼, 땅에 디딜 발이 모조리 잘려버린 것처럼, 표류하는 나를 억지로 붙들고 있던 게 약이었다. 그러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고 1년이 지난 뒤부터 약이 줄기 시작했다. 이젠 수면제 먹는 걸 까먹고 꿈뻑 잠이 드는 날이 생겼다. 물론 아직 아침약은 먹고 있지만, 그 용량 역시 많이 줄어들었다.


때때로 잠이 너무 오지 않거나, 하루의 기분이 너무 처질 때, 과거에 먹던 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겐 지금의 약으로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 최대의 의지를 발휘하는 일이다. 요즘은 '어쩌면 언젠가 약을 먹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우울한 날에도 굳이 억지로 기분을 끌어올리려 하지 않고, 무엇의 도움 없이도 하루의 기분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젠가 약을 먹었을 때의 기분이 너무 불쾌해서 병원에 다니는 걸 극구로 싫어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약을 먹음으로써 오히려 너무나 큰 평온을 얻은 사람이기에, 그러한 거부감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중간중간 부작용도 겪고, 적응 과정도 있었지만, 억지로 약을 먹지 않고 힘들게 단약을 시도해 가면서까지 끊고 싶은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약이 작용하는 과정이 다르니, 그저 나에겐 좋았던 해결방안이 누구에겐 더 큰 고통을 야기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요즘도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타러 간다. 병원 진료를 보는 날은 이젠 상담보다는 처방의 의미가 더 커졌다. 어느 병원을 가도 똑같은 구성의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굳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병원을 고집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버스를 타고 그 먼 길을 떠나는 건 마치 '나는 이 정도 시간을 들여서 나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다짐하는 듯한 의식이다. 내가 나에게 쓰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건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번 달 진료 날짜는 벌써 다음 주다. 딱히 귀찮지도 않은 걸 보니 아직까진 스스로를 위해 병원에 가는 행위가 중요한가 보다. 나는 아직 내가 소중하다. 나 자신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이랬으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