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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온 Aug 20. 2022

이 마음을 편지라 불러도 되는 건가요

모든 일기가 편지가 되는 순간에, 나는 내가 기어코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마다 일기의 용도는 다르겠지만, 나의 일기는 전적으로 내 삶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굳이 타인의 이야기를 적지도 않으며,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쓴 글도 많지 않다. 그런 내 일기가, 누군가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들로 가득한 글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하나로 묶으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애달픈 편지가 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내 마음을 깨닫는 게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결국 완전히 솔직할 수 없는 존재라서, 자신의 일기마저도 검열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내가 느끼는 이 두근거림이 착각일까 무서워서 (어쩌면 착각이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일기에도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차마 마음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커져버렸을 때, 내 손을 타고 마음들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꼭 좋은 감정만 써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애정이나 동경으로 시작한 글자들은 때로는 불안, 원망, 후회로 끝나기도 한다. 내 마음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리 없다. 나를 향한 누군가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쓰는 일기가 제대로 된 글일 리도 없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것들이 분명 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였다는 점이다.


보내지 못한 편지를 많이 갖고 있다. 보내는 주소는 내 마음. 받는 주소는 당신의 마음. 우표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 번을 부치지 못하는 바람에 편지라는 이름도 붙여지지 못한 채 일기로만 남은, 그렇게 나만의 글로 끝나버린 마음들이 있다.


그런 글들을 다시 읽어볼 땐 이런 생각을 한다. 보내지 못한 편지도 과연 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라는 의문. 연주되지 않는 악보를 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을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허락받지 못한 마음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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