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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어느 날

by 례온

마음에도 멍이 드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피부 아래 피가 고여 생기는 멍. 나는 그게 내 마음에 생긴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마음의 근원이 심장인지 뇌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마음이 아플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느끼니, 나한테 만큼은 마음이 심장으로부터 비롯된다) 피가 고여 푸르게 멍이 드는 것처럼, 내 감정이 앙금처럼 고여 멍이 되고는 한다. 그 부분을 꾸욱 누르면 한참을 아프다. 찢어진 것도 아니고 피가 난 것도 아닌데, 단순히 내 감정이 울혈처럼 뭉쳐있다는 이유만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 상처가 된다.

한참을 사라지지 않는 멍은,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여러 차례 사람을 멈칫하게 만든다. 보라색이 푸른색이 되고, 점점 넓게 퍼져가며 옅은 노란색을 띠다가 결국엔 사라질 때까지, 멍은 꾸준히 나를 성가시게 한다.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지만, 무시할 정도는 못 되는 그런 통증. 누가 굳이 그걸 찾아내어 꾸욱 누르지는 않았으면 하는 상처랄까.

최근에 마음에 멍이 많이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한창 2-3년 전에는 가슴이 찢어진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욱신욱신 아프다,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이번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말 그대로 딱 멍든 정도의 통증인 게 조금은 신기하다. 근데 멍 하나 없어지려니까 다른 데 또 생기고, 그거 좀 옅어지려니까 또 누가 나를 치고 가고. 그래서 누구와도 부딪히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이다.

요즘 인생 참 덧없다 아니면 역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따위의 생각을 자주 한다. 약간 허무주의 느낌이랄까. 어차피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게 다 변할 텐데 영원히 한결같음을 유지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자꾸 뭐 하다가도 멍-하게 된다. 해서 뭐하냐?까진 아니지만 이것들도 어차피 다 의미 없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정도의 의문은 든다.

뭔가 우울이나 무기력, 불안이랑은 또 다른 상태로 정의해야 한다고 본다. 고급진 말은 아니지만, 현타라는 말밖엔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이럴 땐 사람 만나서 수다 미친 듯이 떨고 부둥부둥 받고 공감하면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게 제격이란 걸 알지만, 이젠 나도 친구들도 마음대로 만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이런 마음을 누군가한테 보여준다는 게 좀 망설여진다. 사람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 사람을 늘 투명하고 솔직해야 한다 외치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아마 사회생활 시작하면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어느 정도는 숨길 줄도 알고, 표정관리도 할 줄 알고, 그것조차 못 하겠으면 그냥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는 걸 조금씩 실감한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치는 순간이 찾아오며, 피로는 사람을 가장 빠르고 쉽게 갉아먹는 악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약간 충치같은? 존재다. (그냥 엄청나게 악랄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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