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는 당일 새벽에 눈을 뜨고 나서야 내가 잠들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온갖 상상에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에 붙어있던 야광별 스티커와 눈싸움하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나자 아빠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취미로 기타를 배운 지 5개월 째인 아빠는 출근하기 전 새벽마다 연습을 했다. 그 소리는 솔직히 나에게는 소음에 가까워서 매일 새벽마다 괴로워하면서 잠에서 깨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 아빠의 연습곡은 Hey, Jude였다. 아빠가 그동안 연습하던 섬집 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누운 채로 익숙한 멜로디인 그 곡의 가사를 찾아봤다. 가사를 보고 나서 일어나 서재로 가서 괜히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치는 기타 소리 좋은 거 같아요."
"짐은 다 쌌지? 얼른 출발할 준비나 해."
그 대답에 아빠답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웃었다. 아빠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도 갑자기 파리에 간다고 했을 때도 그냥 알겠다고만 했다.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엄마의 평범한 반응은 아빠와 대조돼서 호들갑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파리에서 여자 혼자 괜찮겠냐는 지극히 평범한 걱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는 내가 우울증인 걸 얘기하지 못했고, 엄마에게는 이야기했다. 항상 뭐든 덤덤하게 반응하는 아빠는 무언가를 참는다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인내가 아빠의 습관이라면 내 우울까지 아빠의 습관이 될까 봐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반응은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데 네가 뭐가 아쉬워서 우울증에 걸려? 그거 약 꼭 먹어야 되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뭐든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안 좋은 생각하지 마. 놀란 것 같긴 했지만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반응에서 끝났던 것은 엄마가 충격받을까 봐 걱정돼서 내 우울증을 마치 편도선염처럼 이야기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 목이 부어서 병원 갔더니 편도선염이래. 요즘 유행인가 봐. 많이들 걸리더라. 재발하기 쉬우니까 조심하래. 약 준 거 먹으래. 괜찮아. 잘 먹고 푹 쉬면 낫겠지.'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현관 앞에 서서 멀뚱히 집 안을 쳐다봤다. 차 키를 든 아빠와 그 옆에서 빠뜨린 건 없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발 언저리에는 우리 집 강아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내가 자기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녀석. 그냥 또 잠깐 어디 나갔다 오는 거겠지, 그럼 개껌을 주고 나가겠지라는 표정으로 꼬리 치고 있는 녀석을 보니 괜히 미안해져서 꼭 안아주자마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이런 날에도 너는 너다워서 좋다고 생각하면서 당분간 잊어버리지 않도록 내가 좋아하는 꼬릿한 발 냄새를 맡은 뒤 부모님과 드디어 집을 나섰다. 차에 타고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착해서는 아빠와 엄마와 가볍게 포옹한 뒤 잘 다녀올게 라는 말만 외치고 바로 돌아서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혼자인 기분이 어떤지 빨리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출발하기 전날 밤에 잠을 설쳤다. 여행에 대한 설렘이나 긴장감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내 비행기 티켓은 파리로 바로 갈 수 있는 직항이 아니었다. 최저가 왕복 티켓은 나를 중국에서 하루, 런던에서 이틀을 머물게 했다. 그래도 다행히 항공사에서는 비행기가 환승하는 곳인 중국에서 잘 수 있는 호텔을 제공해 주었다. 게다가 24시간이라는 환승 시간 안에서 시내 관광도 할 수 있었다. 원래 중국 음식을 좋아해서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혼자 중국 시내를 구경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 돈도 잃고 결국 장기마저 털려버리는 극단적인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내 장기를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누군가를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꼭 찾아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훌쩍 떠나서 자유롭게 머물 계획으로 여행을 결심한 것 치고 나는 너무 겁이 많았고 그런 겁쟁이가 낯선 곳에서 머물러야 할 30일은 어찌 보면 너무 길고 긴 날이었다.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를 찾아서 짐을 부치고 티켓을 받아 보안검색대를 거쳐 면세구역으로 들어가는 과정까지는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태까지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많이 해왔던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려울 것도 하나 없었고 주변엔 온통 내가 어려울 때 언제든 도와줄 수 있는 말이 통하는 내 나라 동포들이 가득했다. 내 장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혹시 소매치기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항공사 탑승장 앞에서 앉아 혼자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조금씩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혼자 온 사람은 나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탑승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내 주변을 감싸던 외로운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얼른 기내 안으로 들어섰다. 내 자리는 비행기 맨 끝과 가까웠고 덕분에 그곳에서 기내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어젯밤 내내 고민거리였던 같이 다녀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를 부지런히 살폈지만 혼자는 나뿐인 듯해서 금세 풀이 죽었다. 이어폰을 꽂고 아침에 아빠가 들려준 노래를 들으면서 기도했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Hey Jude 나쁘게 생각할 거 없어.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 봐.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럼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게 될 거야.”
환승지인 중국 공항에서 좋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사람도 나를 같이 다니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이번 여행이 내 인생에 있어서 좋은 노래가 되기를. 이 정도의 슬픈 노래는 그만 멈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