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에서 셋이 되어 집에 가는 길
통상 미국 병원에서는 질식 분만을 하면 하루나 이틀 만에 퇴원을 한다고 들었는데, 목요일에 체리를 낳고 집에는 일요일에야 오게 되었다. 분만을 한 후 회복 병동으로 옮겨 갔을 때, 가장 좋았던 건 침대. 사실 분만 병동의 침대는 너무 불편해서 하루하루 집에 오고 싶은 마음이 커졌는데 막상 회복 병동으로 가니 침대가 너무 편해서 집에 올 생각이 안 났다. 아기랑 나랑 남편, 이렇게 셋만 있는 상황이 무서웠다. 하지만 시간은 가고, 결국 퇴원 날이 되었다.
퇴원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나와 체리 모두 담당 의사에게 퇴원을 확인받아야 했고, 병원 예약 및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받아야 했다. 생각보다 병원에 자주 와야 한다는 사실에 이럴 거면 집에 보내지 말지 싶기도 했지만, 바로 다음 날 다시 병원에 오는 약속까지 잡고 나니 이제 정말 집에 갈 시간이 됐다. 체리를 보고 있는 동안 남편이 분주하게 짐을 옮겼고, 이제 세 식구가 집에 간다.
몇 번이나 동영상을 보며 공부했건만, 간호사 언니들에게 카시트 사용법을 한 번 더 물어가며 겨우 체리를 카시트에 태워 차에 실었다.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조심히 운전을 했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해도 '유난 떨지 말고 키우자'라고 다짐했었는데, 아기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우리 동네는 겨울에는 날씨가 안 좋아서 항상 우중충하기로 유명한데 내가 병원에 있던 일주일은 신기하게도 내내 날씨가 좋았다. 아주 사소하고 우연인 일에도 하나씩 의미를 부여했다. 집에 오는 길에 본 그 파란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집에 와서 아기 옷을 벗긴 후 침대에 눕히고는 남편과 아기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아기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 서로를 꼭 껴안았다. 나는 울었다. 앞으로 이 아기를 어떻게 키울 건지 걱정도 됐지만, 이제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됐구나 싶어서 벅찬 마음에도 울었다. 아기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또 행복한 마음이 들어 계속 울었다. 남편이 짐을 가지러 간 사이, 집에는 나와 아기 둘 만 있었다. 너무너무 떨렸다.
아기는, 특히 신생아는 당연히 혼자 둬서는 안 되지만, 미국에서는 5세 이하 아기를 혼자 두는 것이 아예 법적으로 불법이다. 누가 신고를 하거나 적발이 되면 방임으로 간주되어 심하면 아기를 뺏길 수도 있다. 남편을 기다리며 아기와 둘만 있는 그 시간이 정말 너무 떨렸다.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내 옆에 이 아기가 있을 거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내 앞에 잠들어있는 이 아기가 커서 걷고, 말하고, 나에게 와서 안길 수 있을 때까지,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게 이런 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