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정리]내려놓음의 무게

소중한 내 노동절...

by 엘사 B

회색빛 우울이 짙게 드리웠던 전날, 사무실에 앉아 실현될 수 없는 꿈을 붙잡고 있는 듯한 무력감에 휩싸였다.파랑새를 쫓듯 회사와 꿈의 일치를 꿈꿔왔던 시간들. 사무실에 앉아있는 동안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인가?’를 계속 되뇌었다. 한쪽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는 프로젝트에서 들은 현실도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동료들의 날 선 이기심과 인간적인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였다.

이제는 깨달아야 했다. 헛된 기대를 내려놓아야 실망도 없을 거라는 것을. 인간으로서의 명확한 한계를 마주했을 때, 깊은 무력감과 함께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좀처럼 찾지 않던 와인 병을 꺼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유독 와인은 무난하고 거슬리는 구석 없이, 텅 빈 마음을 채우듯 세 잔이나 비워냈다.


다음 날은 기다리던 노동절이었다. 늦잠을 자도 된다는 해방감에 깊이 잠들었지만, 깨어났을 때는 이미 뻐근한 허리와 함께 오후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 망했다..." 텅 빈 휴일을 그저 잠으로 흘려보냈다는 후회가 짙게 밀려왔다. 모처럼 주어진 귀한 시간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소비하다니,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컸지만 몸은 침대와 이미 합체가 되어있었다.


늦었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전날의 와인탓으로 해장의식이 필요했다. 새벽배송으로 주문한 베테랑 칼국수 밀키트를 꺼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끓여낸 칼국수는 그새 면발이 더욱 얇아져 후루룩 부드럽게 넘어갔고, 걸쭉하고 얼큰한 국물은 속을 따뜻하게 달래주었다. '와 이거 진짜 내가 안 만들었으면 어쩔 뻔, 내가 술 마신 분들 여럿 살렸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그릇을 비워냈다.


식후, 게이샤 커피를 아이스로 천천히 내려 마셨다. 은은한 향이 퍼지며 잠시나마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지만, 이내 스르륵 다시 침대에 몸을 맡겼다. 습관처럼 릴스 화면을 멍하니 넘기며 시간을 죽였다.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마음속은 텅 빈 공허감으로 가득 찼다. ‘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오후 4시 반, 침대에 누워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하루를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10km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최소한의 훈련은 해야 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걷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걷든 뛰든 일단 5km만이라도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밖으로 나서자, 늦잠을 자던 동안 언제 왔는지 모를 비가 그치고 공기는 촉촉하고 맑았다. 흐린 하늘 아래, 갓 돋아난 새싹들의 연둣빛이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쑤시는 듯했지만,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2km, 3km... 익숙한 동네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쯤, 숨쉬기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처음의 무거운 느낌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마침내 5km 지점에 도착했을 때, 기록보다는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할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술을 마신 다음 날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잠으로 흘려보내는 나를 보니, 문득 술이란 그 순간의 즐거움과 취기로 잠시 현실을 잊게 하지만, 결국에는 더 많은 시간을 피로 회복에 쏟게 만들며 우리를 뒷걸음질 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술 마셨으니 오늘은 푹 쉬어야지’, ‘속도 안 좋으니 맛있는 걸로 해장해야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소중한 휴일을 그저 무력하게 흘려보내고 나니 마음 한구석에는 깊은 씁쓸함이 남았다. 어쩌면 술을 찾는 행위는,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불안감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자꾸만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어리석은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밝은 빛을 향해 힘겹게 나아가는 대신, 익숙한 어둠 속으로 뒷걸음치다가 결국 후회와 자책만이 남는 무력한 오늘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그러나 두 다리로 땅을 힘껏 박차고 나아가는 달리기의 고통 끝에 찾아온 작은 성취감은, 술이 주었던 찰나의 위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했다. 어쩌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는, 덧없는 도피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작은 노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러닝 #와인 #기대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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