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장고를 부탁해" 애청자의 생각
어릴 적, 냄비와 요리책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방과 후면 어김없이 요리책 페이지를 넘기며 새로운 레시피를 탐색했고, 서툰 솜씨로 가족들에게 '오늘의 특별 메뉴'를 선보이겠다고 나섰다. 머나먼 타국의 낯선 요리학교를 꿈꾸기도 했고, 실험적인 음식 연구소 ‘알리시아’의 인턴십 공고를 보며 설렘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식탁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놓였다. 석사 졸업 후, 나는 연구소에서 수많은 간편식 레시피를 개발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한 접시에 나의 열정과 정성을 담았다면, 지금은 ‘조리 시간 5분 이내’,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소비기한 6개월’과 같은 현실적인 조건 안에서 최상의 맛을 구현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런 내가, 문득 다시 즐겨 보게 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요리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다.
이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가진 셰프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냉장고 속 익숙하지만은 않은 재료의 조합,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의 까다로운 입맛이라는 제약. 이러한 제약 속에서 셰프들은 때로는 익숙한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때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요리와 유쾌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셰프들의 요리 과정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 프로그램을 볼 때도 화려한 칼질이나 현란한 불 쇼보다는, 셰프들이 어떤 재료를 먼저 집어 들고 어떤 조리 방식을 택하는지, 그 선택의 순간에 집중하며 그 이유를 추측해보곤 한다. 그들의 고민과 판단이 결국 한 접시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요리라는 특별한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우리 모두에게 ‘자기만의 15분’이 주어질 때가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시청하면서 내 일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순간이 많다. 예상치 못한 업무 지시, 턱없이 부족한 자원, 까다로운 제조 공정, 심지어 새로운 제품에 대한 간절한 바람까지, 이 모든 제약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어떤 ‘재료’를 선택하고, 어떤 ‘조리법’을 활용하여 ‘결과물’이라는 한 접시의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내가 가진 ‘재료’들을 탐색하고, 최적의 조합을 찾아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나는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눈앞의 ‘문제’라는 식탁에 놓인 재료들을 가지고 ‘해결책’이라는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셰프들의 개성 넘치는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완벽한 기술을 바탕으로 늘 안정적인 맛을 선보이는 셰프가 있는가 하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예측 불가능한 조합으로 놀라운 맛을 창조하는 셰프도 있다. 뛰어난 요리 실력은 기본이지만, 결국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기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건 비단 셰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업무를 하면서 끊임없이 자문한다. “이것이 정말 ‘나의 방식’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이 선택이 과연 나다운 방식인가?”
‘냉장고를 부탁해’는 단순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덕분에 나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15분 안에 완성된 셰프의 요리를 보며,
나는 오늘도 나의 식탁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한 끼를,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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