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찾는 나만의 리듬
요즘 낮 기온이 37도를 훌쩍 넘어서는 날들의 연속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시원한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곤 했지만, 문득 그리워지는 숲의 향기와 호숫가의 바람이 마음을 계속 흔들었다. 어떻게든 바깥에서 뛰어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한밤중에도 식지 않는 열기에 ‘새벽’이라는 시간이 떠올랐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뛰면 훨씬 선선할 거라는 이야기에 나는 새벽 6시 달리기를 결심했다.
'새벽 6시…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하고, 알람 소리에 잠시 눈을 떴다가도 이내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굳게 먹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집을 나섰고, 새벽 공기는 기대 이상으로 선선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이미 주변은 밝아 있었고, 하늘은 어딘가 흐린 듯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조용할 거라 생각했지만, 호수 주변에는 벌써부터 나와 같은 부지런한 이들이 꽤 많았다. 나만 특권을 누리는 줄 알았는데, 다들 이미 자신만의 새벽을 누리고 있었다. 내내 코끝을 스치는 적당한 숲과 흙냄새는 싱그러웠고, 상쾌함 그 자체였다. 뛰고 나서 시계를 보니 겨우 7시. 이른 시간에 이미 하루의 할 일을 마친 듯 기특했고, 앞으로의 하루를 더 잘 살아낼 것 같은 뿌듯함으로 아침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새벽 달리기는 또 다른 피곤함을 가져왔다.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뛰고 나면 몸이 뻐근했고, 결국 낮잠을 자야 할 만큼 하루가 피곤해졌다. 내 몸이 말해주기 시작한 거다. '지금은 이 시간이 아니라고.' 그 시간이 아무리 좋다 한들, 나에게 독이 된다면 지속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였다. 조금 더 나에게 맞는 시간을 찾기로 했고, 빗방울이 촉촉이 밴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햇살이 아직 중천에 온전히 다 드러나지 않은 10시 반쯤, 발걸음을 떼어봤다. 비가 와서 기온이 낮을 거라 예상하고 집을 나섰는데 해가 막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하며 세상을 달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26도, 체감 온도는 그보다 훨씬 뜨거웠지만,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촉촉했고, 그 사이로 뜨거운 태양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태양과 선선한 바람이 나를 두고 옷 벗기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상반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렸다. 하지만 그 뜨거움 사이사이로 스쳐가는 나무 그늘의 시원한 바람은 지친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쨍하게 맑은 하늘마저도 그 순간의 황홀경을 더했다. 비가 온 직후의 습한 흙냄새와 햇볕을 받아 따스하게 피어나는 초록 나뭇잎 냄새가 뒤섞여 독특하고 생명력 가득한 향을 만들어냈다. 찢어질 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귓가를 쏘아댔다. 새벽과 똑같은 28도인데도, 햇빛의 유무가 이렇게나 다른 온기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5km를 달리는 동안, 나는 때로는 힘껏 뛰고, 때로는 숨을 고르며 걷고, 또다시 힘을 내어 내달렸다. 처음엔 경쾌한 음악에 온몸을 맡긴 채 발걸음을 맞추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귀 기울이게 된 건 새들의 지저귐, 풀벌레 소리, 그리고 내 안에서 힘차게 울리는 심장 소리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깊이 충만한 에너지와 고요함이 차올랐다.
달콤한 땀방울이 맺힌 달리기를 끝내고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 라떼 한 잔. 그리고 샤워 후 에어컨 바람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그 평화로운 시간. 온몸으로 오늘 의 운동을 끝낸, 나 자신에게 주는 가장 따뜻하고 값진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삶에는 '절대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에게 좋다는 시간도, 무조건 옳다고 여겨지는 방식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잘 맞는 시간, 나만의 속도로 흘러가는 리듬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가는 가장 소중한 작은 연습이라는 것을.
이런 깨달음을 안겨준 비마저 더없이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빗소리가, 아니, 몸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