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정리]외향인(E)의 내향적(I) 고백

진짜 나를 찾아가는 관계의 미학

by 엘사 B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사실 참 오랜 시간 이 질문의 답을 찾아 헤매왔다. MBTI의 E(외향형)로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될 때가 있고, 집에서 혼자 쉬는 것이 더없이 편안할 때도 있다. 때로는 모임의 무대를 장악하기보다 한두 명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훨씬 편안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과연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


내 이야기, 넘치게 쏟아내던 시절

돌아보면 처음 사람들을 만날 땐 내 얘기만 했던 것 같다. 억울했던 일, 털어놓기 힘든 사적인 이야기, 깊은 고민들까지. 그걸 모두 꺼내야만 상대와 가깝고 진실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몰랐는데, 나중에 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았다. 내면에 채워지지 않았던 '말하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컸던 것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 분명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기는 했다. 며칠 만에 몇 년 만난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내 솔직함이 때로는 의도치 않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고, 너무 쉽게 맺어진 관계는 그만큼 쉽게 멀어지기도 했다. 아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점점 줄여가게 되었다. 아마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배우면서 나도 모르게 '사회화'되어 갔던 것이리라. 관계는 양적으로는 채워졌을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허기졌다. 결국 수많은 만남 속에서도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들어야하는줄 알지만 말하고 싶은 나

최근 들어 여러 모임에 일적인 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예전처럼 내 얘기를 마냥 쏟아내지는 않는다. 이제는 '이번 모임에 가면, 일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문득 사람들 속에 있는 나를 돌아보면,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혼란스럽다. 한때는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던 나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조용히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남의 이야기만 듣고 있자니 속에서 답답함이 차올랐다. 내 이야기도 하고 싶다는 솔직한 욕구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한 번은 모임에서 유명한 과학자 분을 만났다. 내가 조용히 경청할 때는 먼저 다가와 카톡도 보내고 말을 걸어주시던 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모임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점차 내 개인적인 고민까지 털어놓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연락이 뜸해졌다. 그제야 번뜩 깨달았다. '나에게 바란 모습은 이것이 아닌가?' 습관처럼 화살을 나에게 돌려 또 반문했다. 내가 그분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이런 자책과 함께 씁쓸함을 느낄 때였다. 마침 같은 모임자리에서 진로 고민을 가진 대학생을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주던 찰나,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건 내가 나를 쓰는 거지, 내가 얻는 게 아니잖아.' 아, 그때 그 과학자 분도 나를 보며 이런 감정을 느끼셨겠구나. 이 깨달음은 씁쓸했지만, 솔직했다.


카네기의 말, 그리고 내 욕구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상대방의 욕구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미소 짓고, 이름을 기억하며, 귀 기울여 경청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해주면 상대방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고개 끄덕이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질문하게 된다. "그럼 나 자신, 내 말하기 욕구는 어떻게 돌봐야 할까?" 남에게 미소 짓고, 이름을 기억하며, 그들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는 동안, 정작 내 안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줄까. 내 욕구는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문득 카네기의 또 다른 말에 시선이 닿았다.

'나의 인기나 행복, 자존심은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래, 내가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욕구로 얻고자 했던 것이 결국 나의 행복이고, 내 존재의 진실이고, 나의 자존심이라면, 이제는 그 방법을 달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내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쏟아내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집중하여 소통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리고 남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위한 에너지는 글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얻으면 되겠다는 해답도 찾았다. 내 글을 읽고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단 다섯 명만 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는 양적으로 많은 만남이 아니라 질적으로 의미 있는 만남을 원한다면, 나의 관심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만 오롯이 향해야 한다. 나는 이제 온전히 진심으로 깊이 있는 만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독이 필요한 이유

그래서 어쩌면 고독이 필요한 것 아닐까.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내 이야기를 차분히 정리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남의 이야기도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결국 남도 잘 아는 법이다.

우리 재인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늘 나의 진심 어린 관심을 갈구한다. 사실 다들 그렇다. 어린 시절 만족스러운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타인에게서 그 빈틈을 채우려 갈구하는 경우가 많다(나 또한 그랬었다). 반대로 내 안의 욕구가 잘 충족된 사람은 타인의 관심에 구걸하지 않는다. 자신으로 충분하기에 타인에게도 진정한 관심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남은 질문

이 모든 깨달음의 맥락은 단순하다.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깨달음의 사이에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곱씹으면서, 오늘도 내 이야기를 쓰고, 또 듣는다. 나는 이제 내 안에서 관계의 답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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