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고명환 씨의 강연에서 '나를 살게 해주는 것은 남을 돕는 일'이라는 힘 있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강한 공감을 느꼈다. 그 여운의 깊이를 더 느끼고 싶어 그가 언급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펼쳐 들었다. 역시나 톨스토이의 이 글을 다시 마주하고 나니 머릿속이 띵하게 맑아지는 깨달음이 왔다.
이야기 속 가난한 구두 수선공 시몬과 그의 아내 마트료나의 걱정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다. 내일 먹을 양식, 겨울을 날 가죽 한 장에 대한 고민, 외출하고 온 남편을 추궁하는 아내의 잔소리… 그들의 걱정은 지금 나의 소소한 고민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자신만의 걱정에 매몰되지 않았다. 우연히 길에서 쓰러져 있는 미하일을 발견하고, 품 안의 온기를 나누고, 마지막 남은 빵을 기꺼이 건네주었다. 소박한 살림이지만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시몬 가족의 모습, 그리고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 방식이 바로 인간이 사는 방법이라는 사실이 잔잔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을 나누는 삶.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와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힘이 사랑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퇴사 후,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나 자신을 감당하는 힘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혼자서만으로는 더 깊은 나를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나를 비춰보고, 그때마다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입체적인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독립을 돕고, 바쁜 남편의 일상을 든든하게 지지하는 일들 속에서 내가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원동력을 찾을 수 있겠구나. 이렇게 타인이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고객사의 일을 마치 내 일처럼 생각하며 몰두했고, 때로는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하냐'는 주변의 시선이나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반응에 화살을 나에게 돌려 이게 맞는 것인가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오던 나의 실천들이 톨스토이의 인문학적 통찰이라는 빛을 받아 더 깊은 의미와 논리를 찾게 되었다. 막연히 옳다고 느꼈던 삶의 방식이, 보편적인 진리로 명확하게 재확인된 느낌이랄까. 나의 삶에 깃든 사랑과 돌봄이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힘이라는 것을, 이제야 선명하게 깨달았다. 이로써 나의 가치관에 더욱 단단한 확신이 생겼다.
"지금까지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어 살아가도록 바라시는 걸로 알았으나, 이제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또 서로 모여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사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레프 톨스토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앞으로의 행보를 설계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넘어, 이제 간편식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일까지 나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졌다. 나의 손길이 닿은 음식으로 바쁜 누군가의 끼니를 돕고, 작은 위로와 편리함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톨스토이가 말하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싶다. 나아가 이런 나의 방향에 공감하고, 함께 사랑과 도움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 깨달음 덕분에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욱 명확해졌다. 내가 재인이와 남편을 돕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나의 삶을 채우는 것처럼, 나 또한 세상을 향해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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