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어지러운 글

글쓰기와 건축과 공연 사이 어딘가를 헤매며

by 가가


내 브런치 공간에 먼지가 쌓이고 있음을 알면서도 글을 올리지 못했다. 사실 저장해 둔 글은 많은데, 차마 올리지를 못했다. 색깔로 따지면 시커먼 색의 우울한 글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3학년 2학기를 지내며 입학 이후 제일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온라인 공간에 정제된 모습만 올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탓에, 건축이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전시하기 두려웠다. 글을 올리기 전에 수십 번은 읽어보고 외울 지경쯤 되었을 때, 모난 부분 없이 둥글둥글 다듬어졌다는 판단이 되면 비로소 글을 올리는 나로서 글을 올리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조차 조금씩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아마 이렇게 어지러운 글은 학생일 때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용기 내어 그때 썼던 글들을 올려본다. 사실 기록보다는 변명에 가깝긴 하지만.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꼭 의미를 찾는 편이다. 이건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 일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 감정이나 목적, 보상이 구체적으로 보이면 꿈쩍 않고 굳건하게 일을 해내 간다. 하지만 이것들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면 놀랍도록 빠르게 길을 잃어버린다. 네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에겐 추진력을 주는 연료인 셈인데, 그게 없어지니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거다.


1학년 때 썼던 글이다. 놀랍게도 지금도 이 생각은 그대로고, 이유를 찾았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일은 ‘재미’가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재미’라는 것이, 나에게 결코 가벼운 종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와 깨달은 건데, 내가 직업에서 제일 추구하는 가치는 ‘재미’다. 재밌으면 그걸 얼마나 오래 하든 상관이 없어진다.


본인의 일에 온 세포가 몰입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습 중 가장 매력적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나다니! 싶게 몰입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일은 내 직업이 될 수 있다. 나는 현재로서는 글쓰기가 그렇고, 두 번째로는 공연을 보는 것이 그러하다.


건축은 어디 갔지?


주변에서는 종종 쓸데없는 생각이라 하지만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한다. 아니, 사실 무의식 중에 내내 하고 있고 결국은 '그냥 즐거우려고~ 맛있는 거 먹으려고~' 등의 이유로 쉽게 결론짓곤 했다. 그렇지만 이 고민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기도 했고, 때때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삶을 허망하고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오래 붙잡고 있다 보면, 내 영혼이라는 것이 내 몸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딘가에 늘 둥둥 떠다니는, 그저 공기의 흐름대로 떠다녀야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내가 진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는 한 걸까?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느닷없는 고백 같아 보이지만, 건축을 배우고 '인식'하게 된 후부터 내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구나를 느꼈다. 이런저런 고민에 휩싸여 내 존재감을 의심할 때 나를 둘러싼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제야 내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는 인간의 덧없는 인생에, 언제나 배경이 되어주는 건축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공중을 떠다니던 내가 건축이라는 중력에 붙잡혀 길을 걷고, 공간 사이를 걷고, 건물 안에 있게 되니 기댈 곳이 생긴 것이다. 알고 보니 내 배경은 온통 건축뿐이네,라는 웃긴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설계 수업이 너무 안 풀리길래 짜증 나서 수업을 한번 안 갔다. 매번 반복되는 너무 재미가 없다는 크리틱,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공연장인데 뭐가 이렇게 힘들까 싶은 배신감 등등을 붙잡고 북마크에 저장해 둔 오동숲속도서관으로 딴 길을 새봤다. 인생에 대한 아무 책이나 붙들고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보노보노가 위로를 참 잘해주더라.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에른스트 하스의 이름이 표지에 있길래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도 봤다. 참 좋았다. 그리고 내가 어딜 가든 꼭 들고 다니는 '장소 노트'에 고민들을 토해냈다. 어떤 공간에서 느낀 점을 바로바로 적을 수 있도록, 건축학도니까 한번 만들어 본 수첩인데 쓰다 보니 사실상 고민 노트가 되긴 했다. 대충 마음이 정리되고 집에 가려고 걸어 나오니, 무심히 지나쳤던 입구에 웬 상패가 가득한 것이다. 건축가협회상, 목조대전 올해의 건축상… 건축을 피해서 도망 왔더니 여기도 건축뿐이었다. 세상에.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면 종종 멋진 맞춤형 광고가 등장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토리를 넘기다가 한 광고가 떴다. 유현준 작가님의 특강이라길래, 정말 아무런 고민 없이 신청했다. 건축이 힘들어, 못하겠어를 입에 달고 살던 나였지만 정말로 싫어할 용기는 없었나 보다. 그렇게 평창동에 있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라는 곳에 처음 가게 되었다. 특강이 끝나고 미술 전시 해설을 듣기 전,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문을 열고 시선을 드니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누구세요?


거울 속의 나였다.


발그레한 뺨에 주체를 못 하고 올라가 있는 입꼬리. 기분 좋게 취했을 때나 나오는 내 몇 안 되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주어진 독서 시간과 책장은 향긋하고 산뜻했다. 멋진 가구와 좋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는 곳에서,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곧 미술 전시까지 볼 거라는 사실이 말도 못 하게 너무 행복했다. 남은 평생 이런 일로만 인생을 채워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 좋은 공간에 머무르는 일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모든 세포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죽은 세포들도 제정신을 차리는 느낌. 그런 걸 생각하면 나 건축 꽤 좋아할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올린 마지막 글을 요약하면 '나는 건축보다 공연 보러 다니는 게 더 좋아. 공연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 것 같아.'였다. 이 마음이 나를 뒤흔들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공연장 가는 걸 좋아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쩌면 무대 위에서 본인의 일에 몰입해 있는 그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에 몰입한 가수, 연기에 몰입한 배우, 발레에 몰입한 무용수. 그들을 보면 눈물이 났다. 그 모습 자체로도 순수한 감동이었지만, 내가 안쓰럽다는 생각 때문에도 눈물이 났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일에 그렇게 몰입하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인터뷰들을 보면,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었다. 일이 그렇게 힘들면서 왜 놓지 못하냐를 물으면 늘 ‘너무 좋아서요. 그 일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해서요.‘라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게 눈물 나게 부러웠다. 나는 건축 과제가 하나하나 너무도 버거웠고, 행복하다는 생각은 저 멀리로 늘 도망쳤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들어가며 관객들이 공연으로 몰입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설계에 몰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몰입하는 공간을 어찌 만들겠는가. 머리를 쥐어뜯든, 좋은 공간에서 상상을 해보든, 어떤 공간에서 뭘 하고 있는지 소설을 써보는 발악을 해도 제자리걸음이다. 같은 주제로 시작한 설계로 친구들은 훨훨 날아가는데, 나는 낙엽만 줍고 있다.


집에 오는 하굣길 지나치는 높은 빌딩들을 보며 느끼는 막연한 동경과 신기함만 가득한 채로 3학년이 끝나간다. 나는 이 일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계에는 자신이 없다.




이 정도면 대충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미로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건축을 사랑하지만 극도로 미워하고 있다. 나는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지만 동시에 재능이 없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건축에 관한 글을 올리고 <건축학과 생존기>로 글을 엮고 있지만 글감이 사라지는 게 두려워 지난 몇 달처럼 잠수를 타기도 한다. 징징거림과도 비슷한 이 글이 읽는 사람의 시간 낭비가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독한 고민과 혼란스러움의 글이, 진로 앞에 마구 휘둘리고 있는 사람, 건축에 대한 애증을 가진 사람, 미래의 나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겠다는 작은 믿음도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렇게라도 글을 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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