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디자이너들 (7) -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Maria Grazia Chiuri

by 최리

Maria Grazia Chiuri

201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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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수식어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를 설명할 때나 현시점의 디올을 설명할 때 굉장히 의미 있는 포인트이다. 내가 이 점을 주목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디올 브랜드 디깅을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작성했던 샤넬과 디올을 비교하는 글에 그 힌트가 있다.





샤넬은 코코 샤넬이라는 여성 디자이너가 사회적 문화적 다양한 제약들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욕구로 시작된 반면, 디올은 남성 디자이너인 크리스찬 디올이 자신이 보기에 아름다운 여성의 옷을 디자인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샤넬은 디올의 옷이 '불편함으로의 회귀'라며 비판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태생적으로 디올 브랜드는 어느 정도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디올 브랜드를 사랑하는 나도 디올의 아름다움에 대해 떠올릴 때, 이것이 '대상화된 아름다움'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디올의 역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아이템에 감탄하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간지러움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간지러운 지점을 디올의 첫 '여성'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긁어주기 시작한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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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첫 컬렉션 (2017)


치우리의 첫 디올 컬렉션은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역대 디올 디자이너의 데뷔 컬렉션 중 크리스찬 디올의 New Look 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컬렉션이 아닐까. 이 컬렉션이 유독 충격적이었던 것은, 디올이라는 브랜드가 7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였으며 그동안은 패션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외적인''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서는 다소 논쟁적인 주제로 여겨지기에 이에 대한 개인적인 언급은 차치하더라도, 남성 디자이너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정의하던 브랜드에서 여성 디자이너가 아름다움의 의미를 재정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브랜드 역사나 패션 역사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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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여성이든 남성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중요한 것은 '주체성'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패션에서의 주체성은 '활동성 혹은 편함'이라고도 생각하는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디올은 '편하다'.



라프 시몬스도 디올의 드레스와 패션 아이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드레스와 비지의 결합, 주머니 있는 이브닝드레스를 선보이며 편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는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디올은 그보다도 더 편하고 활동성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첫 컬렉션에서 성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펜싱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아이템을 선보이기도 했고, 크리스찬 디올의 New look 실루엣은 치우리의 손을 거쳐 가볍게 재탄생했다. 스니커즈와 티셔츠, 캘빈클라인 스타일의 허리밴드를 사용하면서도 툴과 레이스를 접목하여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치우리의 디올은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클래식함을 줄이고 젊고 쿨한 에너지를 더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Fashion that resembles the women of today



In her show notes, all she says is that
she’s striving to be “attentive and open to the world
and to create fashion that resembles the women of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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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rblue.png?type=w1 Christian Dior fall/winter 2017

디올 브랜드의 가치가 '아름다움과 우아함'이기 때문에 지금껏 디올의 디자이너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계속 질문했던 점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움의 전부인가? 외적으로 대상화되어야만 아름다운가? 패션에서 내적인 아름다움은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 내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치우리의 디올이 어느 정도 힌트를 준 것 같다. 아름다우면서도 편할 수 있고, 입는 사람이 편하고 기분 좋은 옷은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답을 준 듯하다.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디올‘ 브랜드가 친숙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데에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만큼 요즘 세대는 일상 속 럭셔리, 편하고도 아름다운 것의 가치를 주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전에도 디올을 일상 속에 녹이고 싶어 했던 '마크 보한'이라는 디렉터가 있었고 실제로 그때 디올도 편하면서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편한 디자인을 많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럭셔리는 어느 정도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가 필요한 법이라 마크 보한 대신 오뜨쿠튀르 드레스를 화려하게 선보일 디자이너들을 임명하면서 격동을 겪던 시기도 있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디올이 얼마나 갈지, LVMH 그룹은 현재 디올의 방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디자이너를 쉽게 바꾸진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젊은 세대를 고객으로 끌어와 브랜드 수명을 늘리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다. 오히려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치우리의 디올은 브랜드 현대화와 리포지셔닝에 성공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Other great designers who are part of the Dior legacy


전임자인 라프 시몬스의 디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점은 그가 무슈 '크리스찬 디올'의 작품들로부터 브랜드의 뿌리를 찾으려 노력했던 점이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거치며 디올의 아이덴티티는 희미해지고 있었고, 특히나 갈리아노는 무슈 디올(크리스찬 디올)의 디올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원래 디올의 모습을 찾아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사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달랐다. 그녀는 '우리가 무슈 디올의 디올만 바라본다면, 이 회사는 10년 내에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그가 운영한 기간만큼 말이죠'이라는 말을 남겼다. 크리스찬 디올 사후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더 긴 기간 이 브랜드를 이끌어왔으므로, 디올의 유산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 모든 디자이너들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If you only look at Monsieur Dior, this company would close in 10 years – as many as he ran it for. There are many other great designers who are part of the Dior legacy because they helped to build it.




그래서 그녀는 이브 생 로랑, 마크 보한, 지안 프랑코 페레, 존 갈리아노, 그리고 디올 옴므를 담당했던 에디 슬리먼의 작품에서도 영감을 받아 컬렉션에 녹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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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은 존 갈리아노가 1999년 처음 선보인 아이템인데, 치우리가 재해석하며 다양한 색상과 패턴으로 출시되었다. 이 새들백은 다양한 소재로 출시되어 현재 디올의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에 디올의 상징이었던 디올 레이디백에 비해 더 실용적이라는 점이 크게 어필된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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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리의 디올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구 중 하나가 'J'adior'인데, 이것 역시 갈리아노의 'J'adore Dior'이라는 모토에서 비롯되었다.





비판적인 평가


치우리의 디올은 여러 방면으로 혁신적이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기에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몇 가지 우려 포인트도 존재한다.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디자인은 일부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높은 가격대의 럭셔리 브랜드에서 판매되는 페미니즘 메시지 티셔츠가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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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Dior 2019 Haute Couture(L)/SS(R)


치우리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컬렉션에 녹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이것이 때로는 피상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그녀가 워낙 다양한 테마로 컬렉션을 선보이다 보니 각 컬렉션별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시즌에서는 서커스 테마를, 다른 시즌에서는 발레리나에서 영감을 받는 등 매 시즌마다 큰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라프 시몬스의 경우 1년에 6번 정도의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스트레스였다고 밝힌 바가 있는데, 치우리에게도 매번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선보이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브랜드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길 간절히 바란다.


치우리의 디올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이 부분 역시 예술성과 상업성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새들백의 재출시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것이 디올의 예술적 가치를 희생시키고 상업적 이익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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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약 9년간의 디올 디렉터 생활을 마무리하고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에게 바통을 넘겼다. 최근 글로벌 럭셔리 시장이 다소 침체되면서 부담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고, 브랜드에서도 새로운 신선함과 창의성을 불어넣기 위한 판단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 후 올해 9월 첫 패션위크 때 앤더슨이 첫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조금 더 지켜보려 한다.



디올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시대는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변한다. '아름다움'의 정의도 변한다.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변하더라도 크리스찬 디올이 세상에 선사하고자 했던 '아름다움을 통한 행복함'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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