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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Sep 26. 2022

알면 무섭고 모르면 괴롭다.

계속 모른 척하고 싶은 '죽음'에 대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잊히지 않는 죽음이 몇 있다.


1. 20년 전쯤 기사를 하나 보았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동생과 함께 서울의 친척집에 맡겨졌다는 갓 스무 살이 된 여학생은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주 성실했다던 그 아이는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던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 한강에서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기사 밑에 있던 댓글 중 하나.

-왜 하필 또래들이 많이 오는 그런 곳에서 알바를 했을까.. 일 하면서 비슷한 나이의 애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계속 봐야 해서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 댓글이 아직도 한 번씩 곱씹어진다. 그랬을까? 자신의 처지를 덜 비교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했다면 그 아이는 죽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2. 올봄. 학교 기숙사에서 대학원생이 투신자살을 했다.

학교 구성원 대부분이 모르고 지나간 이 일을 마침 친구가 해당 과에 일하고 있어 내막을 꽤 자세히 듣게 되었다.

 불우한 집안 환경에 좋지 않은 경제적 상황. 불안한 심리상태로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그조차도 지속적이지 못해 휴학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현실적 문제. 학업을 이어갈 수도, 더 이상의 휴학도 불가능했던 그 아이는 지도교수와의 마지막 면담 후 다음날 첫새벽 기숙사에서 투신을 한다. 마지막 날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어떻게든 삶을 이어보려 했던 필사적인 노력이 드러나 결국 학생 지도에 몹시 무심하고 귀찮아했다던(정제된 표현 사용) 교수와의 마지막 대화의 어떤 한 부분이 트리거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조심스레 추측도 해보았다.

 관도 없이 흰 천에 덮인 채로 고향으로 옮겨져 장례식도 없이 한 인간의 생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누군가의 인생은 그처럼 허망할 수도 있구나 마음이 헛헛했다.

 공부를 조금 덜 잘했다면, 그래서 서울대에 오지 않았다면, 혹시 조금은 더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았고 매일 출퇴근 길, 어쩔 수 없이 지나치는 기숙사를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나곤 한다.


3. 몇 년 전, 어린이날.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부부가 아이 둘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동반자살'이 아닌'살해 후 자살' 올바른 표현) 뉴스를 보았다. 왜 하필 어린이날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어린이날이었기에 그날이 '선택될 수밖에'없지 않았나 싶다.

 당시 나도 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라 그랬는지 그날 밤 잠자리에서 그 뉴스가 계속 맴돌아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4. 그리고 몇 달 후.

이번에는 생활고로 가장이 아내와 딸을 흉기로 살해하고 본인도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있어 화를 면했던 중학생 아들이 다음날 이를 발견하고 신고한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게 될 그 아들의 마음이 차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그 아이는 '차라리 그때 나도 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아갈지, 그래도 살아남은 자신의 삶을 잘 보듬어 가고 있을지 문득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예전 교육원 수업 어느 날.

누군가의 발표작에 '자살'이 등장했다. 선생님은 당사자에게 물었다.

 "넌 언제 자살하고 싶었니?"

 "없었는데요."

 "넌!! 니가 죽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 데 이런 걸 썼어? 그러니까 대본에 절망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야.

유니크하지도 않고 자살에 대한 심층적인 느낌도 없어. 이미 대본을 읽기 시작하면서 얘가 자살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버린단 말이야."

호되게 혼을 내시고는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차례대로 죽고 싶을 때가 언제였는지 혹은 누군가 죽이고 싶었을 때가 언제였는지 한 명씩 얘기해봐"라고 하셨다.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은 코멘트를 달아주셨다.(나는 지목되지 않았다.)

"그건 죽고 싶다기보다 숨고 싶다는 감정이지. 이 둘은 구분을 해야 해. 죽고 싶은 거랑 숨고 싶은 건 다른 거거든? 내가 자살에 대해서 쓴다. 그렇다면 자살에 대한 자신만의 명확한 입장이나 철학이 자리 잡고 있어야지. 자살이 무엇인가, 왜 자살하고 싶은가. 어떨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는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죽고 싶다는 감정은 길이 없을 때라고 생각해.

그런 거 있지.. 왜... 내 부모의 어떤 면이 너무 싫은데 어느새 똑같이 닮아있는 나를 볼 때처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내 유전자에 박혀있는 그 DNA... 도저히 내가 극복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낄 때, 이 라인에서 나오는 길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밖에 없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야.

 나는 글이 쓰고 싶은데, 다른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데 글이 안 써지면 죽고 싶은 거지.

 나는 저 남자가 아니면 안 되는데, 인생에 유일한 목표는 그거인데 저 남자가 나를 버렸다, 그러면 죽고 싶은 거야. 가질 수 없을 바에야 죽이겠다, 그건 죽이고 싶은 거고."

(이걸 세세하게 기록해둔 나 자신을 잠시 칭찬해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아니. 어쩌면 내 기억이 삭제했을지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너무 많이 해봤다. 지금 생각하면 20대 중반부터 7~8년 까지는 그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과의 맹렬하고도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 생각이 희석되기 시작한 건 스스로 역마살을 입히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고 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더더욱 미친 사람처럼 다음 여행지를 구상하곤 했다. (그러니까 3년째 여행을 못 가고 버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참고 있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가 폭발하는 요즘의 나를 보면 나도 좀 무섭다.)

 그러니까 '아주' '잘'까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안다고 생각했다.


  

 한 달 반 동안 흑역사를 만들고 다시 또 달 동안  죽음에 대한 숙제(?)를 하면서 괴로웠던 이유는 지친 육체가 아니라 떨쳐지지 않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보이고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받으며 살다 보면 인생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도 온다'라고 썼는데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불우하지도, 큰 불행을 겪은 적도 없는 내가 감히 아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배부른 자의 겉멋 든 위선은 아닐까?

 사람마다 회복탄력성이 다르듯이 나의 감기가 너의 암보다 아플 때도 있고, 상처와 아픔은 절대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고통의 정점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은 같을 것이라며 그래도 애써 힘을 내곤 했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그러자마자 현실에서 밀려온 크고 작은 타격에 무릎이 꺾이고 다리를 휘청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물으며 맥없이 힘을 놓는 나를 보자 자신이 없어졌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지쳐있었고 실패라고 내놓을 것도 없는데 회복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내가 너무 쉽게 남의 인생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도, 확신도 할 수 없어 계속 허둥대다가 때마침 힘들게  손에 넣은 책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다.

상처가 남김없이 치유되어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회복해가고 있다는 사실, 아직 아프고 힘들지라도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불어 치유된다.

-정여울,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中-


*이 글의 발행 전 마지막 수정을 하던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발행이 미뤄졌다.

*최애 가수의 첫공, 막공 콘서트를 예매해놓고 첫공을 보고 막공 공연을 앞둔 상태에서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것도 마치 나를 배려한 것처럼 발인 날짜가 공연 전날이 되었기에 발인을 마치고 나는 예정대로 마지막 콘서트장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같은 공연, 같은 곡의 setlist 인데도 마지막은 느낌이 달랐다.

"오늘 이상하게 자꾸, 죽음, 삶의 끝.. 이런 얘기를 하게 되네요? 왜.. 이러지?"

내 가수는 이상하다며 허허 웃었고, 같은 노래를 불렀고, 어쩔 수 없이 나는 같은 노래에서 첫공 때 보다 더 많이 울었다. 그냥.. 이것도 나의 애도의 마지막 정리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살면 살수록, 알면 알수록, 인생은 무겁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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