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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Dec 11. 2021

안 닮았지만 닮았습니다.

이상한 애 옆에 또 이상한 애

S#1. 카페

나, 자리에 앉아 있고 한때 동거녀(?)였던 그녀는 케익 진열장 열심히 들여다보며 무엇을 고를까 고심 중이다. 술 만(!) 좋아했고 단 것은 입에도 안 대던 과거가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획기적(?)으로 변한 그녀가 여전히 낯설어 나는 그런  구동거녀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대단한 애주가였던 그녀는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단주하였다.)

구 동거녀 주문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 마주 앉으면,


       (진지한 척) 술을 좋아하던 과거의 너와 단것을 좋아하는 지금의 너 중에 뭐가 더 나을까 생각 중이었어.

그녀    (덩달아 진지한 척) 음...

       (어디까지 진지할 거냐) 그래도 술 보단 단 게 몸에 더 낫지?

    그래도 기분은 술이 더 좋지.

       (커피 마시며) 그래? 난 술 마시면 슬퍼지는데...

    (웃지도 않고 무심히 툭) 오.. 작가 해야겠네?

       풉! (이 타이밍에 이런 대사를? 커피 뿜는다.)

   (무심히 티슈 뽑아 건네며 술에 대한 예의라는 듯 또 진지한 태도로) 일곱 잔쯤 먹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덤블링 하고 싶거든.

       (놀랍다) 난 일곱 잔 먹으면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 져. 그래서 아.. 빨리 집에 가서 울고 싶다... 생각하거든. 사람들 앞에선 우는 건 싫으니까.

   (라임과 대구를 아는 그녀) 나는, 아.. 빨리 집에 가서 토하고 싶다... 생각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토하기 싫으니까.


잠시 정적.


       (공통점을 찾아보려 애쓴다.) 그렇게 마시면 다음 날 아프지 않아? 난 그래서라도 먹기 싫거든. 20대엔 그래도 속이 좀 아프고 말았는데 30대 되니까 그렇게 두통이 심해. 속 아픈 것보다 두통이 더 힘들어. 아플까 봐 겁나서 못 마시겠던데.

   (내 말을 이해해보려 애쓴다.) 속이 아프다는 게 어떤 거야? 속이 막 쓰려? (잘 모르겠다. 고개 갸웃갸웃) 울렁거리는 거야? 그러면 저녁에 다시 마시면 되는데...

       (대화가 계속 평행선임을 깨닫고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공감과 이해를 포기)...... 우리... 그래도 참 잘 지낸 것 같아. 이렇게 안 맞는데.

녀   (어른스러운 교훈 투척) 야아~그러니까 잘 지낸 거야. 똑같았어봐. 계속 부딪혔지.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中-

이럴 때 생각나라고 현빈이 조근조근하게 나레이션을 뱉으며 사랑고백을 한 게 아닐 텐데 자꾸 이럴 때마다 저 말이 생각난다.

그래...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야... 우리가 같으니까 사랑하는 건 아니야...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S#2. 서점

대형 서점에 들어선다. 독서왕이라 서점에 와서 기분이 좋아진 구동거녀는 술을 일곱 잔쯤 마셨을 때처럼 덤블링이 하고 싶다고 했다. 진짜로 할 수 도 있는 그녀라 나는 잠시 그녀의 두 팔을 붙들고 얼마간 진정을 시켜 주었다.

자기 계발서 코너를 지나면서 우리는 베스트셀러라고 뉘어져 있는 책의 제목들을 훑었다. ~해라, 10년 안에 ~되는 방법, 몇 개만 지키면~하면~할 수 있다. 따위의 책 제목들.


    (불만 가득) 어휴~난 저런 책 너무 싫어!

       나도 나도!!! (급발진) 지가 뭔데 나를 가르쳐?!

나, 그녀 (동시에 소리지르기) 사람마다 다른데!!!!

시를 읽지 않는데 대화가 통화는 사람은, 시를 쓰는데 대화가 통하는 사람보다 강렬했다.

-문보영, '준최선의 롱런'-

9개가 맞는데 나머지 1개까지 맞으면 '역시 그렇구나..'싶어서 특별할 게 없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반면, 9개가 다른데 나머지 1개가 기가 막히게 맞으면 묘한 전율과 함께 공감력 지수가 폭발한다.(찌찌뽕 문화가 괜히 생겼을까...)


S#3. 2차 카페

구 동거녀, 아침드라마 10개+고구마 100개 먹고 명치에 걸린 듯한 막장 of 막장 친척 이야기를 신명 나게 떠들어대고 있다.


나       (듣다가 너무 신기하여) 야야, 나 이 얘기 나중에 써먹어도 돼?

그녀    써! 써! 나중에 보여줘.


****시간 경과****


그녀    .... 그래 가지고.... 또 새로운 여자를 만난 거야. 근데 그때 구치소에 있을 때였거든? 그래서 가중 처벌이 되가지고...(블라블라...)

나       (도저히 안 되겠다. 약간 피로해진 표정으로) 야... 근데 이 얘기 안 되겠어. 지어냈다고 해도 너무 작위적이야. 진짜라고 듣는 나도  안 믿어지는데...(새삼 궁금해진다.) 근데... 니 주변에 평범한 사람은 없는 거야?

그녀    (정색하고 날 똑바로 보고) 너 자꾸 까먹는데... 너도 내 주변 사람이거든? 너도 안 평범하거든?

나       !!!!!(당했다.)


가끔은 날 웃기려고 일부러 지어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괴한(?) 주변 사람들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묻곤 했다. 네가 특이해서 주변에 특이한 사람만 있는 거냐고.

그럴 때마다 구 동거녀는 늘 내게 반문한다. 너는 보통 사람인 것 같으냐고.

나는 달라! 나는 니 주변 사람 중에 유일하게 평범한 사람이야!라고 항변하곤 했는데 요즘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 너와 10년을 넘게 함께 한 나도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다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핑달 : '핑계의 달인'의 줄임말. so *참핑달 : 핑계를 대는데 진심인 사람을 뜻하며 현재 내 폰에 저장된 그녀의 이름.

S#4. 이번엔 브런치 카페

자리에 앉자마자 구 동거녀, 책 두 권을 내게 내민다. 대부분의 도서를 대여해서 읽는 나와 달리 부자인 그녀는 책을 자주, 많이 사서 본다. 이 책은 무엇???이라는 내 눈빛에 구 동거녀는 짧게 추천사를 읊는다.


그녀    여행작가가 쓴 책인데.. 그럭저럭 볼만해. 근데 전문작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읽다 보면 한계가 느껴져.

       ???

그녀    같은 어휘, 같은 단어를 계속 돌려막기 하면서 써. 봤던 표현이 계속 나오거든.


이것은 선플인가, 악플인가? 칭찬인가, 욕인가? 추천한다는 건가, 별로라는 건가? 

 그런데 받은 책 첫 권을 1/3 읽었을 지점,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대번 이해가 돼서 혼자 깔깔댔다. 

'아... 이거 아까 전 페이지에도 봤던 문장 같은데' 느낌의 글들이 데자뷰처럼 반복되고 있는데도 한 번씩 마음에 턱턱 하고 걸리는 문구들이 있어 책장이 생각보다 빨리 넘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몸과 마음이  꽁꽁 묶인 불쌍한 (구) 여행자, (현) 여행소망자인 나는 여행작가의 사진 한 장에도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나를 간파했고 읽으면서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추천하지 않지만 추천합니다.'의 그녀의 한 줄 평은 나를 알기에 내릴 수 있는 정확한 평가였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우리는 언제든 가장 큰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심장 근육에 손상을 받은, 의학적으로 명백한 백신 부작용에도 이 정도에 그쳤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껄껄 웃던 그녀의 무한 긍정 앞에서 나는 내 안의 어두운 부정과 비관을 반성했다.(나아지진 않는 것 같지만..)

 반대로 예민함을 일상 저변에 깔아 두고 늘 스트레스에 절절매는 나를 보며 그녀는 근심과 걱정이란 무엇인가.. 나를 볼 때마다 인간 본연의 철학적인 질문에 봉착한다고 했다.(정확히는 본인은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함'에 대한 호기심인 것 같지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굳이 '인정' '포용' 같은 고급(?) 진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체념'이나 '포기'로 이루어진 관계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어도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과 애정이 동반되어야 하는 거니까.

 끝과 끝은 통하고 극과 극은 닿아 있는 것처럼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우리의 평행선은, 그렇기에 끊기지 않고 나란히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소곤소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부자니까.

 부자라서 계속 맛있는 것을 사주니까.

 사주는 것도 모자라서 나를 집에 들여보낼 때 배스킨라빈스 백가지 맛이 있는 점에서 큰 아이스크림 통을 안겨다 주었으니까. 

 감격에 겨워 내가 슬쩍 울먹이며 "우리 앞으로 계속 친하게 지내자."라고 했을 때 호탕하게 승낙해준 그녀를 사랑한다.

먼녀 :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아 한순간에  저~멀리까지 내다보는 나를 가리키는 우리끼리의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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