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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Nov 22. 2023

저는 빠순이입니다.

여전히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빠순이 DNA는 존재한다.'

예전부터 나는 이 같이 주장했다. 학창 시절에 연예인을 좋아했던 이들은 다 자란 후에도 대상이나 양상이 바뀔 뿐 여전히 빠순이적 삶을 살고, 학교 다닐 때에 연예인에 흥미가 없었던 이들은 커서도 '연예인은 그냥 연예인이지' 하며 관망하는 일관된 자세로 사는 것을 쭉 봐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책에서도 읽은 듯?)

 당연히 나는 전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빠순이 삶은 그때부터 좋아했던 연예인이 쭉~이어지면서 마음의 세입자(!)들이 조금(?) 늘었을 뿐 참으로 끈덕지고 질기게 계속 좋아하고 있다. (나의 세입자들 중 어느 누구도 사고 없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또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나의 사람 보는 안목에 감탄하며..)

 나의 언니도, 조카 2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봐서 이는 모계유전임이 분명하다. (엄마는 그다지 유난스럽지 않은 듯 하지만 가끔 내가 'OOO 콘서트 티켓팅 해줄까?' 하면, 아빠보다 엄마가 더 긍정적인걸 봐서 엄마도 과거를 감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여자 셋은 늘 티켓팅을 앞두고 상부상조 용병을 뛴다.

언니와 조카와의 채팅방. 주로 '예매'라는 이벤트가 있을 때 활용된다.

이 나이에도 활발한 덕질 생활을 하는 이모가 신기한 건지, 고마운 건지 조카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다행히 이모가 공부만 하고 살지 않은, 빠순이어서 잘 통해"

그렇다. 그녀는 팩폭러다. 유사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다.

 "이모는... 뒷모습이 어려 보여."(욕일까? 칭찬일까?)

 "이모는...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것 같아. 결혼을 안 해서인가..?"(아군인가? 적군인가!)


지지 않고 나는 몇 년 전 조카에게 진지하게 '덕질을 내 인생에 활용하는 법' 따위의 강연(=잔소리)을 한 적이 있다.

 "그냥 덕질하지 말고, '오빠들 자주 보기 위해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다' 그렇게 목표를 세우란 말이야. 이모는 그랬어. (우리 오빠가 서울대 다녔다고 서울대 가겠다는 목표는 세우지 않은 현실주의자의 목표. 어쨌든 지금 서울 살아서 덕질 맘껏 하니까 목표 달성)"

 알겠다고 했는데 먹혔는진 모르겠다... 조카는 최애를 너무 자주 갈아타서... 난 14세에 좋아한 서울대 유부남 오빠 아직 쫓아다니거늘....


 유독 올해는 나의 오빠들이(오빠가 아닌 이들도 있지만 잘생겼으면 오빠이므로 다 오빠로 통칭한다.) 많은 공연을 했고, 많은 이벤트를 펼쳤다. 나는 팬클럽 세 곳에 몸담게(하나는 기존, 하나는 올해 생김, 하나는 곧 생길 예정) 되었고, 덩달아 많은 활동(?)을 했고, 많은 돈을 썼다.(올해 연말정산 문화비용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역대급 금액을 찍을 것 같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주말엔 묶인 몸이 된 탓에 눈물을 퍼금고 포기한 공연과 팬미팅도 있었지만 오히려 많은 공연이 있었던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집에만 틀어박혀서 시간을 쓴다고 글이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지난주에 OOO팬미팅을 갔다 왔는데, 첫곡을 딱 부르는데, 순간 마음이 확 채워지더라고요."

=> 기획팀과 미팅하면서 지껄인 말이다.

 내 대본 속 여주는 연예인 얼빠인데  빼도 될 것 같은 설정이라는 팀장의 말에 나는,

'스스로 연애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고, 그 대상을 대체하기 위해 연예인 빠가 되었으니 그건 초반에 남겨 둘게요'라며 꿋꿋하게 그 설정을 남겨둔다. 그리고 실제로 유일하게 검색, 취재 없이 그냥 술술 써 내려갔던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이건 그냥 내  일상이자 생활이자, 인생이니까.  대본에는 높으신 분들(?)이 읽다가 뜻을 모를까 봐 각주도 달았다.

와...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이거 찾으려고 대본 파일 열었다.

 최종 마감을 하루 앞둔 날 나는 또 공연장을 찾는다.(이건 마감이 일주일 연장돼서 홀가분하게 공연을 보려던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뿐이다.) 지옥 같던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괴롭고, 내일까지 다 써야 하는데 여기 온 나는 제정신인가, 수정이나 한번 해보고 낼 수 있을까 초조한 마음을 안고 갔던 공연장에서 나는 뜻밖에 어마어마한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그리고 집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그가 보내준 걱정과 고마움을 담은 버블(*스타의 메시지를 1:1 채팅방으로 수신하고 수신한 메시지에 답장을 보낼 수 있는 월구독형 자동갱신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나무위키-) 메시지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도 열심히 해볼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볼게'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게'

그는 내 삶에 어떤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날 저녁 난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었고 내 능력 안에서 최대치의 힘을 냈고, 그래서인지 어쨌든 표면적으로 좋은 마무리를 맺었다.


찬 바람을 맞아가며 같은 공연을 두 번 봤다. (팬클럽 선예매 좌석은 예매해 놓으면 취소하기 너무 아까워..) 두 번을 봐도 전혀 같은 공연 같지 않고 여전히 아쉽고 또 보고 싶다.

 첫날 공연은 너무 추운 나머지 일찍 도착했음에도 굿즈고 사진이고 다 내팽개치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나와 같은 팬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나처럼 20년 이상의 경력직일 팬들. 아직도 이토록 열심히일 수 있는 건 저들에게도 빠순이 DNA가 있기 때문이겠지. 20대일 때만 해도 나도 함께 소극장 공연을 같이 뛰던 친구, 셋이 동시에 티켓팅을 시도했던 지인들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현생에 치여 또 육아에 지쳐 멀어져 버리고 말았는데 같은 나이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저 팬들은 아직 마음속에 열정이 불꽃처럼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공연을 함께 해주는 몇 안 되는 나의 친구들이 새삼 고맙다. 함께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는 비슷한 마음의 온도는 너무 소중하다.

 혼자 본 첫 공연 옆자리 분은 중간에 과거 영상 보여줄 때부터 울기 시작하셨는데 다음 곡을 하는 동안에도 거의 오열하셔서 계속 우시면 휴지라도 드려야 하나 약간 고민스러울 정도였다.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안다. 20년이 넘는 시간이라는 건 단순하게 '추억'이란 한마디로 뭉뚱그려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엔 나의 젊음, 우리의 찬란했던 시간, 잃어버린 순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춘, 어른이라는 현실의 모질고 무서운 짐과 그때의 오빠들보다 훨씬 늙어버린 나의 한탄과 서글픔이 있다.

 마지막날 공연에선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고민 지점을 공연 중 우리의 오빠가 정확히 똑같은 얘길 했다. 그 순간, 나는 친구에게 기댔고 친구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동시에 울컥이며 눈물을 흘렸다.

 시간의 힘이란, 함께한 시간이란, 그 교감이란 이토록 엄청난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공연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팬카페와 유튜브를 헤매다가 좀처럼 하지 않는 짓인데 생판 모르는 사람 콘텐츠에 댓글도 달고 아직 현실 복귀가 불가한 상태다.

댓글이란 거 여간해서 달지 않는데... 콘서트 셋 리스트 모음이라니.. 이건 참을 수 없지.

 나는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조카에게 일장 연설했듯 예전엔 그들을 좋아하는 마음을 자양분 삼아 내 삶을 지탱시키곤 했다.

우리 오빠처럼 똑똑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우리 오빠한테 가까이 갈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저거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까... 나도 본받아야지... 같은 삶의 원동력들.

하지만 꼭 그런 효용성(?) 이전에 그냥 이렇게 열심히 좋아하는 내 마음 자체가 좋다. 누군가는 나잇값도 못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이 나이에 무언가를 이토록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내 열정이 맘에 든다. 무언가를 한번 좋아하면 아주 깊이, 열렬하게,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좋아하는 나의 뜨거움도 이제 장점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그 점이 현실에서 연애라는 장르를 만나게 되면 나 자신을 때론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했고, 그래서 괴롭고 슬픈 삶의 순간도 너무너무 많았지만 그것 또한 아무나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감각이란 것도 이젠 알게 되었다. 웬만한 일에는 동요되지 않는,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안다. 애초에 나는 감정의 고저가 큰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빠순이 DNA 보유 자니까.

 열정만큼 화도 많은 나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길 한다.

 "나는 눈물버튼과 화 버튼 두 개로 이루어진 것 같아." (내가 말하고도 나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런 나라서, 그런 나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주파수의 감정을 느끼고, 또 그 힘으로 글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하기엔 글을 잘 안 쓰지....)

 어쨌든, 아직 좋아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

 여전히 설레고 두근거리는 나를 발견하는 게 꽤 신나고 즐겁다.

 진실로 진심을 다하는 내 마음이 썩 괜찮다.


1) 그래서.... 트로트 가수에 열광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해되고,  멋있고, 같이 응원하고 싶다.(응. 내 미래.)


2) 그러기 위해선 나의 오빠들도 그때까지 사고 안 치고, 체력 관리 잘해서 계속 활동 잘해줘야 할 텐데...

아무도 아프지 말지어다.

3) "그래서 지금 니 최애가 누구야?"라고 얼마 전에 언니가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누구는 가장 오래되었고...

누구는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고..

누구는 남자로 이상형이고..

누구는 삶의 이상향이고... 했을 텐데...

요즘은 그냥,

"지금 내 눈에 젤 많이 띄는 사람"

-공연 빈도수, TV 활동, 버블 자주 보내주는 사람에 따라 최애 순위는 그때그때 변동됩니다.

저는 이제 몰빵, 올인은 하지 않아요. 이건 연애할 때 많이 해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

최애는 매일 순위변동이 있어요. 그나저나.. 결제만 하면 팬이 아티스트에게 채팅 메시지를 날릴 수 있는 세상이라니. 덕질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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