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탕의 약발
지척에 있는 대전 이건만 어디 땅끝마을이라도 되는 냥 대전 집에 가는 일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바쁘고 약속이 있고 등등의 이유들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다른 자식들도 알 것이다. 시간은 내기 나름이고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 핑계일 뿐이다. 그리고 내겐 그런 핑계가 하나 더 있다. 변명이고 궤변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겐 이유이다.
'마음이 더 약해질까 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설거지 정도야 선심 쓰는 듯할지 모르나 밥하고 청소하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몫으로 떠 넘긴다. 나는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삼시세끼 바뀌는 식단을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까지 해가며. 그런 채로 며칠을 지나고 올라올 때쯤 되면 이대로 주저앉고 싶어 진다.
서른이 넘은 지가 언젠데 캥거루족처럼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안 하고 살고 싶은 거다. 그래서 돌아올 때의 마음은 늘 편하지가 않다.
내 집 문을 연 순간 며칠 동안 환기되지 않은 공기를 맞닥뜨리며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나 아니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단 생각이 들면 번뜩 정신이 차려진다. 태생적으로 의존적이고 약한 멘탈을 가진 내가 스무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산 것은 오히려 다행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부모 등골 빼먹고 사는 가문의 문제아가 되었을지도.
정확히 7년 전, 병원에 가기 위해 우리 집에 왔던 엄마와 동네 시장을 갔었다. 요리를 일절 하지 않기 때문에 과일 말고는 다른 품목에 눈길을 주지 않던 내가 그날은 우연히 꽃게를 발견했고 아무 생각 없이 흘리듯 엄마에게 말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꽃게탕 되게 자주 해줬었는데."
그리고 2주 후, 대전 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왔던 엄마는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향해 큰 검은 봉지를 흔들며 말했다.
"꽃게 샀어."
"어? 웬 꽃게?"
"니가 꽃게 얘기했잖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는 그 말을 흘리지 않고 기억했고 그래서 내가 올 때를 기다렸고 계획을 실행했다.
커다란 봉지에 꽃게를 얼마나 많이 샀던지 꽃게탕은 삼시 세 끼를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애초에 구매한 양이 많기도 했지만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또 있었다. 나 많이 먹으라고 엄마 아빠는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그런 엄마 아빠를 눈치채고 내가 덜 먹으면 왜 먹지 않느냐며 손수 집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렸다.
그날 밤 친구에게 말했다.
"난 그냥 한 말이었는데... 글쎄 그래서 꽃게를 사놓은 거야. 내가 뭐라고."
"와~ 너 사랑받고 있구나?"
그 후로 집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는 당연한 과업처럼 꽃게탕을 준비해 놓았다. 왜 나만 먹냐고 묻지 않고 이젠 그냥 힘닿는 만큼 열심히 먹는다. 그게 엄마의 기쁨인걸 모르지 않기에.
그러면서 또 마음이 흔들리고 약해진다.
버티기 힘든 하루하루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사실은 엄마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다 그만두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내려와서 엄마 옆에서 계속 있고 싶어.'란 말이 목구멍에서 몇 번을 자맥질한다. 그리고 그 말이 입술 끝까지 차오를 때쯤 나는 서울로 돌아온다. 꽃게탕을 먹었으니 또 그 힘으로 얼마간은 살 수 있을 테니까.
나잇값을 못하는 낙오된 패배자의 불안함이 수위를 넘어 공포감으로 변할 때 나는 주문처럼 되뇐다.
"그래도 사랑받고 있으니까. 아직은 꽃게탕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견딜 수 없을 때가 오면 그때 얘기하자. 매일 꽃게탕을 먹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