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
고릿적 추억 미니홈피, 그러니까 싸이월드에 엄청난 양의 글이 남아 있다. 도대체 그 바쁜 시절에 어떻게 매일같이 그렇게 많은 글을 썼었는지 놀랄 때가 많다. (제발 지금 좀 그래 보자. '바빠서'라는 말은 역시 핑계일 뿐이다.) 자료 백업을 하라고 공지를 했었다는데 나는 무심히 지나쳤고 그래도 '투데이 히스토리'에서 같은 날 업로드했던 사진과 글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매일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이불 킥 각의 낯 뜨거운 글과 촌스럼+못생김 콤보의 사진이 주는 부끄러움을 감내하면서)
나는 기억력 아주 좋은 편이다.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잦아서 일종의 재능(!)이라고 할 만큼. 하지만 나는 그 능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실상 내 인생에서 비상한 기억력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정도의 괴로움을 동반한 경우가 훨씬 많았기에. 기억하려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누가 그냥 흘린 말, 의미 없는 장면과 상황을 사진처럼 재생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필요한 기억이 너무 많았다. 망각하지 못하는, 과잉기억 증후군 같은 질병처럼 여겨졌다.
예전에 TV에서 의사쌤이,
'보통 감정을 수반하는 기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아.. 역시 나는 생활의 모든 것에 감정을 부여하고 살고 있구나. 그래서 너무 괴롭구나'라고 일기를 썼더랬다.(이 기록도 싸이월드에서 찾아냄)
그래서 난 내 기억력을 과신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절대 기억이 기록을 이길 수는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당연한 말을 나는 싸이월드의 투데이 히스토리에서 깨달을 때가 많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라는 사건 추적하기부터
'내가 이런 글을 썼어?' 라며 아주 가끔은 스스로의 표현력에 감탄할 때도 있고(매일 쓰기의 중요성)
훌쩍 커버린 조카들의 아기 시절 동영상을 보면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제 정말 지나버렸다는 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명백한 기록들이 때론 너무 냉정하고 서운하게 느껴져서.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록을 발견하게 되면 '기록의 위대함'에 대해 경외심까지 느끼게 된다. 이번에 찾은 투데이 히스토리가 그랬다.
2007년, 저 글을 썼을 당시 나의 핵심 키워드는 패닉의 '미안해'라는 노래였다. 이적 덕후 11년 차이던 때.
[미안해는 앨범 수록곡으로 알려지지 않은 노래인데 매일 아침 보는 드라마에 저 노래가 나오니 몹시 반가 웁다!]가 일기의 주제(?)였다.
12년이 지난 뒤 내가 저 일기를 히스토리에서 보고 눈이 멈춘 키워드는 '내 곁에 있어'라는 아침 드라마.
저 글을 쓰고 3년 뒤 나는 교육원 연수반에서 저 드라마를 쓴 박지현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 후, 2018년 선생님을 단독(?)으로 두 번이나 만났다.(정확히는 선생님께서 나를 '만나주셨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가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그동안 살아온 진솔한(=고통스러웠던, 지난했던, 불행했던)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선생님은 그러셨다.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용서할 수 있더라."
나는 여전히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이해할 순 없지만 나의 좁은 아량보다는 아직은 어리기 때문이라고 애써 모른 척한다. 패닉의'미안해'를 골백번은 더 들으며 그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보자 마음먹는다. 정말 이해 못할, 용서 못할 사람은 없는 건지.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썼던 글을 보는 순간,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소름이 돋았고, 그래서 선생님을 떠올렸다. 저 일기를 핑계로 연락을 한번 해볼까 했지만 용기 없는 마음이 이내 포기하고 만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 못난 자격지심 때문에.
대신 오늘의 이 기록을 남기기로 한다. 다음엔 이 글을 핑계로 연락드려 볼 수 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