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이'에서 또 발견한 유재석의 배려
유느님. 그리고 좋아한 지 20년이 넘은 열이 오빠가(물론 그래도 0순위는 언제나 적이 오빠님) 함께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일로 만난 사이' 3회는 나에겐 반드시 시청해야 할 프로였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휘감고 관통하고 있던 나날이 이어지던 중이었기에 잠시라도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었다.(두 번 세 번 봄)
유재석에 대한 미담이 아직도 끝도 없이 나오는 걸 보면 정말 괜찮은 사람일 거란 확신이 있다.(내가 뭐라고 건방지게?) 아무리 방송이라 하더라도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배려라는 건 오랜 시간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절대 갑자기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이라 앞뒤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한도전 추격전 시리즈 중 다급히 어디론가 이동 중인 상황에서 그는 시장의 노부부에게 대추인가를 구입했다. 거스름돈 3천 원이 없다고 부부가 당황하자 그는,
"그럼 잔돈은 안 받을게요."라고 말하는 대신
"3천 원어치 더 주세요."라고 했다.
인터넷만 쳐보면 이런 사례들은 수도 없이 나오겠지만 예전 X맨이나 해피투게더 방송에서도 찰나의 순간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장면들이 참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여성이나 연장자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떨어지는 쟁반을 무심히 손으로 받쳐 준다던지..)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 탓에 나도 배려심이 많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정확히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피해 주기 싫고 나도 피해받기 싫어서 나오는 행동) 그래서 배려심 많은 사람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편이다. 유재석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이미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이다.'라고 싸이월드에 썼다가 온갖 비웃음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쳇. 사람 보는 눈도 없는 것들이!)
이 날 방송은 셋의 토크만으로도 숨이 넘어가게 웃겼는데 그렇게 웃는 와중에 내가 멈춘 포인트는 유재석이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어머님~어머님~"
나이 많은 어르신께 흔히 쓰는 호칭인데 젊은 우리(?)는 당연하게 쓰는 말이지만 막상 그 말을 듣는 당사자는 기분이 과히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짜로 아들, 딸 뻘 되는 사람도 아니고 기껏해야 나보다 열댓 살 어린 사람이 그런 호칭을 쓰는 게 영 거북하다는 거다.
'아니 지도 50 초반은 되어 보이는데 60 중반밖에 안 되는 나한테 무슨 어머님이래?'
'그렇게 말하면서 지랑 나랑 선을 긋고 나면 자긴 좀 어려지는 기분이 드나?'
'굳이 쓸 호칭이 없으면 어르신이라고 하던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박혜란 선생님 책에서 이런 비슷한 글을 읽었다. 그 나이가 되어 보지 않았으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기 이전에도 그런 얘기를 몇 번 들었던 것 같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딱히 쓸 호칭이 마땅치 않고 자기 딴엔 대접한다고 하는 말인 건 충분히 알겠으나 듣는 입장에서는 또 마뜩잖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 갔을 때 내가 아저씨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엄마에게 자꾸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게 영 거슬렸다.
'아니, 내 또래도 아니고 저 아저씨 왜 자꾸 엄마한테 어머님이래?'
내가 예민해서 또 삐딱선 타나 생각했었는데 흥. 꼭 그런 건 아니었네 뭐.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부분은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 날 방송에서 유재석은 아주머니들에게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의도가 같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항상 조심하고 배려하려는 그의 성격이 반영이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역시는 역시구나. 참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셋이 호칭 정리를 했는지 방송 말미에는 모두 동일하게 '누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모습이 나왔다.
대부분은 별생각 없고 거부감이 없을 수 있다. 나처럼 예민하거나 깐깐한 일부의 사람만 반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나 그럴지도 모를 상황까지 생각해 단어 하나도 신중히 선택하는 마음. 그게 진짜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