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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Nov 08. 2019

거,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니오?

편리한 것. 좋기만 할까?

  이미 여행 카페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나에게도 친절히 안내 메일이 오고 말았다.

 LCC 항공에서 국내선의 경우 모바일 체크인이나 키오크스 탑승권 없이 기존대로 카운터에서 체크인 수속을 하면 수수료를 받겠다는 것이 주 골자이다.

 빠른 서비스 구현을 위한 것이 목적이라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있나. 서비스는 엉망이 되어 가는데 돈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되었다며 카페 회원들은 모두 비난 일색이었다.

 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탈 일이 거의 없는 데다가 타야 하면 뭐 모바일 체크인을 하면 되니까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저가 항공에  대형 항공사의 서비스 수준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경영 악화 측면도 있나 보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

 내가 멈칫하며 잠시 울컥거린 것은 저 3천 원이라는 수수료를 내면서 카운터를 이용할 것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어르신들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엄마는 나를 만나면 휴대폰을 건넨다. 각종 알람과  오류,  겁나서 못 건드린 업데이트를 빠르게 정리해 나가야 한다. 엄마 꺼가 끝나면 다음 차례 아빠가 내민다. 늘 하는 말은 "이거 이상해" 아니면 "이거 왜 안 없어지냐?"이다. 가끔 나도 모르겠거나 안 해본 작업을 넘기면 진땀이 나기도 한다.(엄마는 밴드를, 아빠는 페이스북 프로필 약력? 수정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나도 옛날 사람인 데다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거기다 기계치이기까지 하니까.(총체적 난국)

 영화 할인을 받아보겠다고 새 어플을 깔고 낑낑거리며 

 "아.. 이거 뭐 이렇게 두 번씩이나 하게 해 놨어." 구시렁대었더니 엄마는,

 "거봐라! 너도 그러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 하며 또 1절을 시작한다.

 엄마의 불만은 그거다. 요즘은 물건 살 때 할인을 받으려면 죄다 앱을 깔아서 결제해야만 혜택을 볼 수 있단 거다. 은행 창구는 왜 자꾸 줄이냐며 '우리 같은 사람'은 인터넷으로 어떻게 상품 가입을 하냔 거다.

 해보면 어렵지 않다고 설득할 수 없다. 그건 내 기준이니까.(사실 나도 어려운 게 있..) 그리고 엄마 아빠가 동 세대에 비해 신문물에 느린 것도 아니다. 내가 볼 땐 딱 평균 및 보통이다.(아무렴. 나도 안 하는 페이스북도 하고 밴드도 하는데) 

 그러니까 더 속도를 내서 시대 흐름에 맞추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우리의 변화가 너무 빠를 뿐이다.


 스페인에 갔을 때, 가이드가 미리 당부를 했다.

 "한국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 직원들 엄청 느려요. 우린 출입국 할 때 자동으로 되어 있죠? 여긴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근데 빠른 게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여기 사람들은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일자리 이니까요." 

 크로아티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48시간 전, 좌석지정을 위해 모바일 체크인을 하는데 마침 국경을 지나는 산악지대라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다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런 일행들을 지켜보던 아빠뻘 되는 아저씨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내가 비행기를 30번 이상 탔는데 한 번도 이걸 한 적이 없었는데..."

 부부가 함께 온 여행에서 모바일 체크인을 할 수 있는 이는 없었고 자칫하면 아저씨와 아줌마는 12시간 동안 떨어진 좌석에 앉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체념한 듯 아저씨는 허허허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어째 마음에 턱 하고 걸렸다.(오지랖 같아서 대신해드리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는데 비행기가 만석이 아니라 다행히 같이 앉아 오셨다.)


 그렇게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려 마중 나온 아빠까지 셋이 공항 푸드코트로 갔는데 주문받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키오스크가 줄줄이 서 있다.

 "아니,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외국인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공연히 내 목소리가 커진다.

 "요즘은 다 저렇다." 엄마는 한숨을 쉰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주문 기계는 이제 일반 식당에까지 대중화되었다. 친구와 함께 간 동네의 작은 베트남 음식점도 주문은 다 기계가 받고 있었다.

 "저거 첨에 하면 나도 헷갈려. 근데 어른들은 어떻게 주문하라고. 눈에 빨리 들어오지도 않는데."

 키오스크를 볼 때마다 같은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니 친구가 조금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본다. 뭘 이렇게까지 화를 내?라고 묻는 것 같다.

 물론 그런 걸 볼 때마다 엄마 아빠가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들여다보는 장면이 연상되어 괜히 짜증이 나는 것도 있지만(효녀 났네..) 그 어려움이, 소외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이 아닐 뿐.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다. 경제가 어렵고 임대료도 오르는데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손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당연한 일이라고 넘겨버리면 끝나는 일일까?

 지나온 나이, 지나간 시절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안다. '라떼는 말이야'가 왜 유행하는가. 내가 한 수 알려줄게. 꼰대 마인드를 저격하고 있지만 그 허세도 겪어온 인생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반대로 겪어보지 않았다고,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의 시간에는 모두가 너무 무심하고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 일이 아니니까, 내 미래가 아니니까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애써 무시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당장 새해가 바뀌고 한 살을 더 먹는 것부터 싫어서 만 나이로 우기곤 하니까.

 싫어도 나이는 먹고 결국 그 미래도 내게 온다. 빠르고 편리함의 순기능 이면에서 누군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근데 미래에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니란 보장은 없다.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미래에도 당연하다고 어느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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