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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Nov 23. 2019

아놔. 왜 아무도 안 믿어주냐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어제 친구와 '인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친구는 나이가 들면서 인사를 자주 하게 된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경비원 아저씨를 만날 때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와 같은 상황에. 어렸을 때라면 '굳이'하지 않고 지날 상황에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의 인사를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 인사를 잘해서 손해 볼 건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엄마도 자주 하는 얘기다. 엄마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나 톨게이트 정산 직원에게도 꼬박꼬박 먼저 인사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인사에 너무 인색하다는 말도 덧붙이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사실 난 그러지 못한다. 상대 쪽에서 먼저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그 인사에는 꼭 답을 하지만 내가 먼저 인사를 하지는 못한다.

 "나는 잘 못 그러겠어. 난 그럴 때 내성적인 원초적 성격이 튀어나오는데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말을 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


 20대 중반 이후에 나를 알게 된 사람이 들으면 파안대소하며,

 "니가??"라고 하겠지만 내 이유는 저거다. 진짜다.

 초등학교 성적표 내내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성실하며 맡은 바 임무를 다하나 다소 내성적입니다.'

 '책임감이 강하나 내성적으로 발표력이 부족합니다'

 '규칙을 잘 지키나 발표력이 부족하며 목소리가 작습니다'

 어휘와 단어만 다를 뿐 계속 같은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치료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지독히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아이 었다. 혼자 잘 놀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문제로 안보였을 뿐.

 발표를 하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고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어쩔 줄 몰라 얼굴이 금방 달아오르곤 했다.(어렸을 때 체육을 싫어하고 지금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 행위 자체보다 남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걸 못 견디기 때문이다.)

 왜 내성적인 것이 외향적인 것에 비해 나쁜 것으로 규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들었을 '그러면 안돼' '그 성격은 나쁜 거야'라는 꾸지람을 엄청 들으면서 내 딴엔 십수 년간 피나는 노력을 했다.


 지금은 정 반대의 얘기를 꽤나 듣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성격이 되게 털털하시네요'  '보기랑 다르게(?) 시원시원 하시네요' '말로 하는 직업군에 계신가요?(또는 서비스직)' 셋 중에 하나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면 나는,

 "그럴 리가요. 저 되게 내성적이고 소심한데요. "라고 대답하는데 진지한 내 답변에 상대는 크게 소리 내 웃어서 날 당황시킨다.  내가 웃기려고 하는 말인 줄 아는 거다.(너 터지라고 한 말 아닌데? 진심을 다해서 한 말인데??)

 몇 년 전 썸남이 술 먹다 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같이 술 먹고 있는 자기 친구를 바꿔줬다.(취해서겠지)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친구는 매우 사교적(능글맞음)인 성격이었는데 질세라 나도 열심히 받아쳤다.(잠이 덜 깨서였겠지.)

 "제가 얘처럼 돈이 있거나 차가 있진 않아서요. 근데 전 잘생겼거든요."

 "돈이나 차가 무슨 소용이에요. 남자는 얼굴이죠."

 "그런가요? 아! 배우신 분이네."

 "당연하죠. 근데 잘생긴걸 어떻게 알죠?"

 "제가 사진을 보내드릴게요."

 "한 장으로는 검증이 어려우니까 세장은 보내세요."

 "아! 열 장 보내 드릴게요."

 "말만 하지 말고 보내세요. 지금 당장! 롸잇나우!"

 "(끅끅끅끅 웃더니) 어디 사세요? 혹시 예쁜 친구분 있으면 다음에 같이 보면 어때요?"

 "꼭 예뻐야 하나요? 안 예쁘면 탈락인가요?"(남자는 얼굴이라더니 이율배반적인 태도)

 "오우.. 아니죠. 여자는 마음이죠."

 "그럼요. 배우신 분이네요."

 그는 내게 갑작스러운 전화연결에도 당황하지 않고 잘 받아주어서 고맙다며 성격 참 둥글둥글하신 것 같다며 마지막으로 칭찬을 남겼다.

 내가?? 소심쟁이에 낯가림 심한 나한테 하는 말? 그냥 자다 깨서 전화로 한 거라 그래요.라고 하기엔 내 행동과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글로 쓰고 보니 더 그렇네. 여러분. 글쓰기는 이토록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좋은 생활습관 입니다요.)


 예전에 연구단 개소식 워크숍 때 처음 보는 각지 대학의 교수와 공기업 책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교수가 우리(직원 2명)에게 인사말을 시켰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음 보는 저 높으신(?) 분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라니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머릿속에서 원고 쓸 시간은 줘야 할거 아냐. 경력 순으로 내가 먼저 해야 했다. 떨리는 손과 목소리를 겨우겨우 감추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대충 지껄였다. 1~2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고 그들이 내 말에 그다지 귀를 기울였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떨리는 심장과 달아오른 얼굴은 도무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앞에서 그렇게 할 말을 다 하고 가면 어떻게 해."

 "응?"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언니 한 거랑 비슷하게 말했어. 언니 말 되게 잘하더라."

 "내가? 나 무슨 말했는지도 몰라. 목소리도 너무 떨리고.. 아직도 진정이 안돼."

 "전혀 모르겠던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이 떠올라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데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내 요동치는 심장과 부끄러움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공개석상에서 자기소개(?)를 한다고 모두가 저 정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내 속의 나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바꾸려고 지독히도 노력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엔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던 내성적인 내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자기소개를 시키면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면 목소리가 떨린다. 다행이라면 오랫동안 단련돼서 그런 것인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들키지는 않는 것이다.

 문제는 내 속에 있는 나와 보이는 나의 간극과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요행으로 만들어 놓은 내 외피가 두꺼워져서 그게 나의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낯가림 심한 내가 드러나면 당황하고 때로 멀어지기도 한다.(그래서 내가 미리 말했잖아. 난 그런 사람이라고. 안 믿고 농담으로 넘긴 당신 잘못이네. 흥)

 한때는 이걸로 꽤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나는 누구지? 진짜 나는 무엇인가? 같은 심오한 물음.

 "둘 다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누구나 다 그런 면은 있잖아." 친구는 지극히 정석인(?) 격려의 말을 건넸다.

 "그치. 그렇긴 하지. 근데 난 좀 그 차이가 심하지 않니?"

 친구는 침묵으로써 대답이 없음도 대답이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었다.ㅋㅋㅋ

 이렇게 생겨먹은 걸 이제와 어쩌겠나 싶어서 이제는 비슷한 얘기가 나오면

 '팔색조라서 그렇습니다만?' '왜요? 정신병자 같나요?' '다중인격이라서 그래요' 셋 중에 하나로 골라잡아 답한다. 물론 상황과 상대에 맞춰서.

 조금 아쉬운 것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말할 때 믿기지 않더라도 그래?라고 믿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하는 거다. 늬가?? 이런 반응 말고. 나 진짜로 부끄럽고 낯가려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잘 못하는 거라고. 새침 떠는 게 아니고.

 물론 나부터 반성해야겠다. 나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성급히 판단하고 평가한 적이 많으니까. 글의 마지막에서 저 글 속의 썸남에게도 내가 그런 언어폭력을 많이 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물론 정당방위였지만?)

 역시, 자기반성에는 글쓰기가 최고입니다요.

 (도대체 이 글의 주제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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