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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Nov 29. 2019

오래 사니(?) 별 일이다.

불합격 통보도 해주시네요

 방금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지역번호가 055인 데다 나는 모르는 번호는 웬만해서 잘 받지 않는 편인데 스팸 정보도 별 다르게 뜨지 않길래 망설이다 받았다.

 "OOO 님이시죠? 여기는...."

 아... 정신이 들었다. 몇 달 전 제출한 스토리 공모전 팀이었다. 왜 내게 전화를? 호... 혹시나 나 당선?이라는 생각을 1도 안 했으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당선자한테만 연락이 가니까.

 "당선작은 다 발표가 났고 아쉽게도 당선은 안되셨는데요.."(아. 그랬군. 난 별도로 확인도 안 했다. 근데 왜 전화를?) 저희 심사위원께서 작품이 너무 좋다고.. 진해 공간적 특성도 너무 잘 살렸고(아무렴 오래전 이긴 해도 내가 거기를 얼마나 살았는데요.) 아 그러니까..."

 직원이 우물쭈물한다. 나도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 음.. 그대로  전달해 드릴게요. 뭐라고 하셨냐면, 작품이 좋으니까 계속 이걸 디벨롭해서.. 앞으로도 계속 잘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는 끝났다.


  끊어진 전화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뭐지? 이런 전화는?

 취업할 때 불합격된 면접자들에게 별도로 연락해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해주지 않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후자였다. 연락이 안 오면 불합격이란 걸 알고 있는데 굳이 확인사살받고 싶지는 않은 마음.

 그러니까 지금 나 확인 사살을 받은 건가? 근데 좀 특이하긴 하다. 공모전 불합격자에게 따로 연락을 준다는 얘기는 듣도보도 못했다.

 공모전 심사라는 건 정말 너무나 너무나 주관적인 거라 아마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어떤 지점인지 모르겠으나 내 글에 꽂힌(?) 모양인데(진해 출신 이라던가..) 격려해주고픈 마음이 커서 굳이 직원을 시켜 말을 전달하라고 한 것 같다.(전화 끊고 20분쯤 지나 정신이 들어 내린 결론)

 이미 잊고 있던 일이 '불합격'이란 통보에 다시 들쑤셔진 건 조금 슬펐으나 슬퍼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교육원 다닐 때에도 나는 공모전에 도전한 적이 별로 없었다.(무슨 내 주제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내공이 쌓이면 다음에...라고 마음을 먹었다. 물론 내공이 쌓이는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교육원 수료가 끝난 지 어언 9년. 9년 동안 절필(아무도 모르고 나만 한 절필)하고 외면하며 살았다.

 그러다 올해, 인생 전환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김에 시간도 남고 해서 9년 만에 다시 시간 들여 쓰레기를 만들어 봤는데(교육원 다닐 때 우리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름 모를 심사위원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다니. 교육원 홈페이지에 이 공모전의 공지 조회수만 천이 넘었는데.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쓰면서도 '이게 개연성이 있어?' '이 씬은 너무 튀지 않나?' '에피 나열로만 가는 것 같은데' '와.. 교육원 다닐 때 이렇게 써서 제출했으면 개발렸다(!)' 끝없는 자기 학대와 자기혐오에 다시 시달렸다. 끝없이 나를 시험하는, 내가 이 짓거리를 또 왜 하고 있지? 란 생각도 떨쳐낼 수 없었고 쓰면서도 마음에 안 들어 죽겠는데 능력은 없고 나중엔 시간도 없어서 수정도 제대로 못했다.(분명히 시간이 많아서 시작했는데 마지막엔 시간이 없는..)

 그렇다고 남한테 보여주기는 부끄러워 죽겠으니까 객관적 평가를 할 수도 없었고. 취미생활이야. 연습하는 거야. 정신 승리해가며 겨우 완성했다. (그렇지. 이렇게 엉망으로 써놓고 다른 결과를 바라면 그건 도둑놈 심보)


'보기는 보는구나'

 확인 가능했던 소득(?)

 지자체 공모전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 많아 공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던 카더라 통신을 들은 지 얼마 안 됐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어쨌거나 접수된 작품을 다 읽기는 한다는 것. 내 쓰레기가 진짜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진 않았다는 위안.

  인생의 새 방향을 설정하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2019년 12월의 시작을 이틀 남겨놓고 나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할지 여전히 안갯속에서 헤매고 있다. 쉽게 결정되지 않을지도 모르고 결국은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의 전화를, 기억을 잊지 않기로 한다.

 오늘 있었던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내 행동이, 미래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

 이번에 내가 썼던 글의 주제는 기억의 왜곡, 기억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늘의 일이 훗날 왜곡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그리하여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본다.


 진짜 세상 고민하다(아무도 신경 안 쓸 텐데) 좋았다고 한 사람이 그래도 한 명이라도 있었음에 용기를 내어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발가 벗겨지는 기분으로 제출했던 대본의 마지막 일부를 공개해본다.(이것도 일종의 드러내기 연습) 근데 자다가 이불 킥 하면 어쩌지...

일로      기억이랑 추억은 다르다 이 소리다. 기억을 추억으로 만드는 거는 스스로 해야 한다꼬. 니가 쓴 편지 안 뜯어보고 그냥 놔뚠거 잘~했다. 그거는 그놈아 추억 아이가.
수임      (제법 진지한 일로 기특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일로      아~이 가스나 또 이해 안 된 모양이네.
수임      이해 했거던?
일로      맞다. 니 학교 다닐 때도 공부는 짜달시리 몬했다.
수임      아~이게 진짜 또 시작이네. (일로 때리려는 시늉 하면)
일로      어? 바람 부노?

일로 말과 동시에 바람 불어서 벚꽃 흩날린다. 수임 손바닥 펴서 벚꽃 받아본다. 그 순간 카메라로 수임 찍는 일로. (E) 카메라 셔터

일로      (사진 보여주며) 모델은 별로라도 찍사가 괜찮으니 군항제 마지막 날 사진으로는 개안네. 이거는 기록. 니 나쁜 머릿속에 있는 거는 기억. 지금 이 순간은 추억. 이제 정리됐나?
수임      (잠시 일로 보다가 일로 흉내 내며) 그기나 그기나. (하고 걷는다.)
일로      (수임 말이 웃긴, 따라가며) 어어? 뭔데?
수임      (계속 사투리, 약간 어색한) 니가 재수 없다매. 서울말 쓰는그.
일로      지금 니 억쑤 어색하거든. 그냥 하던 대로 해라.
수임      내가 뭐? 내가 여기 산지가 얼만데?
일로      그람 뭐하노? 말도 다 잊어뿐기.     

수임과 일로 멀어져 간다. 그들의 뒷모습에 벚꽃 휘날리며.     

-THE END-

PS.1: 여 주인공의 성은 '백'씨입니다. 백수임. 이름과 직업이 동일함 ㅋㅋㅋ

PS.2: 저는 경남 사투리와 경북 사투리를 구별할 수 있는 경상도 사투리 리스너이지만 스피킹은 안됩니다. ㅋㅋ 그래서 교육원 다닐 때에도 사투리 쓰는 대본은 일부러 안(못) 썼어요. 이번엔 피할 수가 없어서(?) 글로 표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친구한테 감수받기로 했는데 보여주는 게 너무 부끄러워 결국 제 마음대로(살았던 지역의 사투리 기억을 떠올려) 썼습니다. 실제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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