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Dec 03. 2019

참는 겁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추운 데 안 추운 척

얼마 전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전 사무실로 향하던 중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아이스크림은 교내 중국음식점 한켠에서 판매하는 학교 농장 우유로 만든 유기농 아이스크림이었다. 짜장면 짬뽕이 3500원인데 아무리 유기농이라도 아이스크림이 밥값이랑 똑같은 3500원이면 비싸지 않나? 2900원 정도 해야 심리적으로 더 많이 사 먹지 않나? 나는 볼 때마다 같은 소리를 했는데 그렇다. 내게 3500원짜리 디저트는 너무 비싼 거다. 흥. 결국 한 번도 사 먹지 못했는데 그 비싼 아이스크림을 이 추운 날 아이들이 손을 떨면서도 먹으며 지나가길래 눈길이 갔다.  어려서 다르구먼.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그 뒤로 다가오는 어른 아저씨 무리. 다들 어깨를 한껏 옹송그린 채 두 손으로 커피를 감싸 쥐며 걷고 있었다. 그렇지! 겨울엔 저게 더 어울리는 그림이지! 당연히 나는 그쪽 그림에 더 공감이 되었다.

 뛰는 듯 걸어가며 아이스크림을 물고 가는 아이들 모습 뒤로 추워서 빨리 걷는 듯 하나 결국 아이들 뒤를 따르고 있는 어른들의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걸으면서도 몇 번을 더 뒤돌아 보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내 복장을 보고 선생님들이 동시에 말한다.

 "안 추워요???"


 오라고 호출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겨울엔 늘 "야~너 안 춥냐?"를 인사로 하던 교수님이 계셨다. 회의 끝에는 당부 인사처럼 "감기 걸리지 않게 다들 잘 입고 다녀. 멋 부린다고 춥게 입지 말고." 하며 그 말 끝에 꼭 나를 힐끔 쳐다보시던 분.

 사실 특별하게 듣는 얘기는 아니다.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자주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겨울을 그렇게 싫어한다면서! 추위가 너무너무 싫다면서 왜 그러고 다니냐는 거다. 그렇게 입고 다니니 당연히 춥지 라고도 하고 그렇게 입고도 견디는 걸 보니 어쩌면 너는 추위에 강한 거라고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나의 언행불일치에서 나오는 말이라 논리적으로는 맞다.

 복장 지적(?)을 당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일 년 360일 입는 치마와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 때문이다.

 어릴 때는 패션센스가 없어서 더 그래 보였던 것 같다.(지금 감각이 있다는 말은 아님) 지금은 그래도 스타킹도 데니아 별로 구비해 날씨에 대비해 신을 줄 알고 한파가 있거나 약속이 없는 날은 패딩도 종종 입는다.(이런 날은 화장도 각설이라 아는 사람 만나면 피해 가야 한다.)

 약속이 있는 날은 어김없이 80 데니아에 코트다.(약속 상대의 성별 여부, 친밀도에 따라 세부 복장 규정이 또 있지만..)

 "안 춥냐?" 

누가 물었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

 "안 춥겠냐? 참는 거야."


  겨울이 싫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복장도 포함된다. 이것저것 껴입어 부하고 뚱뚱해 보이는 모습, (패딩 싫어하는 이유) 실내에 들어갈 때마다 벗어놓고 다시 입기를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 비싼 옷값 등..

 그래도 아직 춥게 입고 싸돌아 다니는 거 보면 '추운 것 <멋 부리기' 인가 보네 라고들 하지만 아니다. '추운 것=뚱뚱해 보이게 입는 것' 둘 다 똑같이 싫다. 정말 싫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도출한 합의점은 '겨울에 안 나가기'이다. 반드시 나가야 하는 외출을 제외하고 칩거를 한다. 전기장판을 켜고 귤을 까먹고 배구를 본다. 따뜻하게 입고 나오면 되잖아?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겨울은 겨울인걸.

 "아직 젊어서 그래요."

 내가? 내가요? 저 말인가요? 

 "한 번 패딩 입으면 코트 못 입어요."

 "내복 한 번 입잖아요? 안 입고 못 버텨요."

 "추운 거 그렇게 싫어하시면서 선생님 옷 입는 거 보면 아직 어려서 그런가 보다 해요."

 하하하. 칭찬 같은데 약간 민망하다. 어리다는 얘기를 듣기엔 이미 나이 한도 초과. 


갑자기 맨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아이스크림을 좋아해도 난 겨울에 길바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진 못하는데. 추위의 고통과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맞바꿀 나이는 지났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이런 이상한(?) 고집을 피우고 살고 있는 게 무의식적으로 나이에 역행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행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잇값 못하고 사는 모습으로 보이려나 슬쩍 소심한 걱정도 들었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누군가,

 '지가 20대 청춘인 줄 알아. 저러고 다니면 어리다고 해줄까 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지 지레 뜨끔해진다.

 초등학생들이야 추운 줄도 모르고 찬 바람에 아이스크림을 먹겠지만 난 추워 죽겠는데 참아내는 거니깐.

  겨울이 너무 싫지만 그래도 아직은 참아내고 싶다. 아무리 애써도 나이 듦을 거스를 수 없겠지만 어금니 꽉 깨물고 안 추운 척해보고 싶다. 

 올해도 얼죽코야! 난 할 수 있어! 객기 끝에 어린 척(?)해가며.

  아.. 어리다고 하면 20대들이 화내겠다. 젊은 척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 사니(?) 별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