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 숨어드는 브런치
나는 일 년 중에 크리스마스를 가장 싫어하고 그다음으로 생일을 싫어한다. 겨울이 싫은 이유와는 다른 이유로 봄도 좋아하지 않는데 이 날들이 싫은 이유는 유사하다.
'행복해야 할 날에 나만 슬픈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행복한 척해야 할 것 같아서'
한 달 전부터 유난스러워 보이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사람들의 설렘은 나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다. 저작권 때문에 거리에 캐럴이 들리지 않는 풍경이 오히려 나는 반갑고 어딜 가나 사람이 미어터지는 서울의 연말이 싫어 극성수기(?) 기간을 피해 약속을 잡는다.
그저 똑같은 날의 하루일 뿐인데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뭐 할 거냐고 물어보는 질문 포함) 생일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역시 마찬가지. 다들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생기가 돌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나들이를 가고 꽃구경을 간다. 다들 바빠 보이고 화사해지는 옷에 따라 표정도 달라 보인다. 하필 그런 봄에 생일이 있다. 최악이다.
나이가 들면서 사실 많이 무뎌졌다. 특별히 우울해하거나 '나만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안 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냥 뭐 그런 거지. 남들도 별 거 없어. 많은 날 중의 하나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곤 한다.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거추장스러워 친구들과도 생략한 지 오래된 생일 파티. 업무 때문에 힘들었던 올해 생일날. 사무실 동료들이 몰래 준비해둔 생일 케이크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안 쏟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했다.
늘 그렇듯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도록 미리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아닌 척하려 안간힘을 쓰는데도 12월이 되며 까무룩 까무룩 가라앉는 것이 나의 문제인지 주변 상황의 변화인지 헷갈린다.
송년회가 키워드로 부상하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는 건강한 삶의 태도들은 감히 내가 꿈꿀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금요일은 교육원 연수반 동기 언니를, 토요일은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나를 포함 우리 셋은 모두 올해 비슷하면서 다른,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누군가는 악덕 상사로부터 내용증명과 협박 전화를 받기도 했고 누군가는 가족이 다쳐 병원에서 또 집에서 병수발을 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은 모두 해결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겪은 뒤 좋은 인맥을 통해 더 높은 연봉으로 이직을 하기도 했고 준비하던 일이 잘 마무리되기도 했다. 이제 조금 안정적인 삶을 꿈꾸게 되었다는 지인의 얼굴에선 전에 보지 못했던 평온이 엿보였다. 무더기로 그만둔 본인 포함 4명 모두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도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다 잘 됐네요. 해피엔딩이네요. 저만 빼고요."
금요일, 토요일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웃으면서 말했고 그들은 섣부르게 나에게 다 잘될 거야. 같은 공허한 위로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행복해진다고 내가 더 불행해지는 것도 아닌데 타인의 행복을 저울 삼아 우울함이 커지는 건 결국 내 찌질함 인 것 같아 그 마음이 나는 견디기 힘들다.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간장종지 같은 나라는 인간이 실망스럽다.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인데도 고작 이런 마음밖에 못 먹는 나와 그럴 수밖에 내 상황에 또 화가 치민다.
마음을 감추고 괜찮은 척 썼던 글도 다 거짓말 같이 느껴지고 결국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지. 점으로 변해가는 내 존재감마저 이제 아예 사라질 것 같다.
신기하게 이 와중에 구독자는 금요일도 토요일도 오늘도 미약하게 늘어간다.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숫자가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내 존재를 인정해 주는 곳은 유일하게 여기밖에 없다.
다른 어떤 걸로도 날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내가 쓴 마음, 글로 날 받아들여 준다. 때로는 허튼소리를 해도 훈계하거나 훈수 두지 않고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방식으로 응원해줄 것 같다.
괜찮은 척하려 안간힘을 쓰는 방법 중 하나인 착각이나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것이 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면 붙들어야겠다.
나만 새드엔딩인 상황. 나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은 연말.
늘 그래 왔듯 눈 감고 귀 닫아 현실을 외면하는 방식을 택한다 하더라도 피해서 숨어 들 곳이 생겼으니 다행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하고 개떡 같은 마음까지 공감해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