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Jan 04. 2020

그래도 샘이 난다! 샘이 나!

넘볼 수 없는 작가의 역량

사람들은 누구나 봄을 두려워한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中-

지난 글에 크리스마스가 싫고, 봄이 싫고, 생일까지 겹친 봄은 정말 최악이라며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은 공기, 억지로라도 행복한 척해야 할 것 같은 유난스러움이 견디기 힘들다고 구구절절 늘어놓았었는데 저 문장을 보자 뭔가 힘이 쭉 빠졌다.

 아.. 내 마음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저렇게 간결하고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당연하지! 글 써서 밥벌이하는 작가인데! 게다가 엄청난 스타 작가잖아? 재빠르게 수긍을 하긴 했지만(뭐 안 하면 어쩔 거냐만은) 그래도 부럽다. 샘이 난다! 샘이 나!!


얼마 전 은희경 작가의 인문학 강의를 다녀왔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강의는 처음 가봤고(작가 강의 자체를 처음 가봄) 혹시나 하고 들고 갔던 신간에 싸인을 받는 영광도 얻었다.("동네에서 오셨어요?"  질문도 먼저 해주심. 꺄악!!) 

 강의 주제는 '내 인생의 책 이야기'로 책에 관한 이야기가 주였지만 편안한 자리이다 보니 은희경 작가의 개인적인 얘기도 자연스레 많이 나오게 되었다. 21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이지만 사생활은 잘  몰랐는데 덕분에 미국에서 몇 년 사셨고 현재는 손주까지 있다는 정보도 입수(!)하게 되었다.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었던 책 속에서 작가와 일방적으로 내통했던 나는 이 분의 성향이 나와 굉장히 유사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살았는데 실제로 답하신 내용에는 성격적으로 그런 면이 많아 보였다. 애주가라고 고백하신 것과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은 제외하고.

 강의 시작 전에 포스트 잍에 궁금한 것이 있는 사람은 미리 질문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는데 여행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여행 좋아해요. 왜 좋아하냐면 전 익숙한 것을 잘 못 바꾸거든요. 잘 버리지도 못하고.. 이사도 못 가서 얼마 전에 20년 만에 이사를 했어요. 변화를 잘 못주거든요. 그래서 나만 바꿀 수 있는 여행을 가요."

 세상에.

마카오 에필로그 글을 쓰면서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데 여행은 왜 좋아하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을 못하다가 몇 년 뒤 겨우 생각해낸 이유를 주절주절 써댔는데.. 

 이거였구나. 이거네?  사무실 자리 바꾸는 것도 스트레스받는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도 저렇게 멋있게 답할 수 있었는데! 젠장!!

 하긴 내가 저 정도 통찰력이 있었으면 저 말을 꾸역꾸역 받아 적는 자가 아닌 서서 강의하는 자였겠지 뭐. 당연한 거지. 그래도 샘이 난다 샘이 나!!


 그래도 내 질문에 답을 하실 땐 인간계 사람은 맞구나. 조금 안심을 했다. 김영하 작가도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을 때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글 쓸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이요? 늘 어려워요. 사람들이 이 정도 경력이 되면 쉽게 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항상 어렵습니다. 특히 시작이 힘들어요."


 (백날천날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 이야기에 기뻐했다고 한다... 대문호들도 시작이 어렵다는데... 나도 처음이 어려워서 못쓰는 거야.. 말 같잖은 핑계로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려고...?)

매거진의 이전글 여권 사진이 왜 치약 상자에서 나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