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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an 12. 2020

지금, 살아 있는 게 잘하는 일이겠지?

할 수도 있지. 살기 싫다는 생각.

[당분간 글 쓰기가 어려워질 것 같기도 하고, 글 쓸 에너지가 없기도 하고, 그래도 브런치 발행은 해야 할 것 같고, 서랍에 있는 여행기를 발행할까 하다가 현재 심리상태와 너무 불일치하여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어두운 배설 글을 발행하고자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10년 전 드라마.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피붙이 하나 없이 남은 삶을 마지못해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던 연주(남상미)는 끊임없이 구애하던 호섭(이상윤)에게 결국 마음을 열고 이렇게 말한다.

 "그때 안 죽고 버티길 잘했어요."

특이점도 없는 대사인데 내 마음에 왜 그리 콕 닿았을까. 울컥이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나도, 나도 언젠가 저 말을 꼭 하리라. 저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내게도 오길 바라고 또 믿었다.

 저 이야기를 다시 거론한다는 뜻은, 그렇다. 내겐 아직 그런 날이 오지 않았다. 10년 동안 나아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는 끊임없이 추락했다. 그때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바닥이 아니었고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겠지 하면 세상은 여봐란 듯 날 배신했다. 지금은 이것보다 더한 최악이 있을 지도 있다는 생각이 날 더욱 두렵게 만든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된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 어때요? 해결이 좀 됐어요?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했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았잖아. 자꾸 더 나빠지잖아. 그때 죽었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그런 생각이 드네."

이야기 끝에 나는 내가 죽을까 봐 무섭다고 했다. 동생은 놀라지도 않고 자신도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내 내면의 어둠과 불안을 오랫동안 지켜봤고 또 그동안 인생이란 놈이 내게 뒤통수를 얼마나 수없이 휘갈기고 불친절했는지 아는 동생은 다행히도 보통 사람들처럼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누나, 힘든 사람한테 더 힘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살아있어서 '이럴 때 좋았지' 하는 순간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 때라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원론적인 얘기뿐이라 미안하네요."라고 조심스럽게 위로를 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살기 싫다는 생각은 많이 해본 것 같다. 아, 오늘 밤 잠들어서 그대로 눈이 안 떠지면 좋겠다. 그냥 내가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될 순 없을까? 내가 없어져서 아무도 불편하거나 슬프지 않을 수 있게. 그저 이 정도의 소극적 반항?

 살고 싶지 않은데 남한테 피해 주는 건 너무 싫으니까 사고사 같은 것으로 위장해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표현한 어느 작가의 글을 보고 무릎을 탁 치며 나도 나도! 공감한 적도 있었다.(그 와중에 또 왜 나는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지 못하나 좌절하며)


 그러니까 이 정도는 그냥 엄살이다.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닐 거다. 아니, 사실 너무 잘 살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슬프다는 말이 더 정확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무기력하다고 브런치 글을 안 쓰다가 거기서마저 내가 잊힌 존재가 되면 어쩌지? 오늘 일찍 잠들면 금방 일요일이 돼버리니 뭐라도 딴짓하다 늦게 잘 거야. 아, 근데 내일 방구석 1열 하는 날이라 10시 반엔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늦게 자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의 셈을 하고 있는 거 보면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반증이라 언행불일치의 내가 우습기도 하다.

얼마 전 대형병원의 강박증 연구에 참여했는데 살면서 2주 동안 우울감이 지속된 적이 있냐는 첫 질문에 있다고 답했더니 당황하던 연구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상 군으로 모집했는데 있다고?'라고 묻는 듯한 표정. 그 후의 공황장애나 강박장애(사실 약간 있는데 심각한 건 아니어서 정상처럼 답한 게 몇 개 있었음)는 없다는 답에 안심하고 넘어가던 그녀의 얼굴을 보며 사실 나는 되레 묻고 싶었다.

 2주 정도 우울한 경우는 살면서 몇 번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는 일 아닌가요? 아닌가요? 내가 이상한가요? 물었다가 치료 권유를 할까 봐, 그랬다간 사례비도 못 받을까 봐 입 다물었다.

  나흘째다. 2주는 안 갔으면 좋겠다. 사례비라도 그 안에 들어오면 좋겠다. 내일 방구석 1열 봐야 하니까 우울 배설도 이쯤 하고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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