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대기에 걸려 있는 반대편 차선의 여성 운전자의 몸이 들썩이는 게 보인다. 뭐지? 자세히 봤더니 무슨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았는지 노래에 맞춰(아마도. 설마 무반주에 추진 않았겠지.) 춤을 추고 있었다.(아이돌 댄스로 추정)
출근길이 행복한 이는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출근하며 저 정도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일상의 평온함과 안락함이 보장되어 있을 때 나오는 행동이겠지.
부러웠다. 내게도 언젠가 저런 날이 다시 찾아올까.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깔딱거리는 나는 이러다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가 오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다가 사실은 어쩌면 공항 못가 생긴 공항 장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내놓을 수 있는 삶의 콘텐츠가 '여행'이라 그걸로 브런치 글을 쓴다고 브런치와 약속(!)했는데 웬걸.
작년에 해외를 딱 두 번 나갔다. 7년 만이었다. 일 년에 두 번 밖에(!) 출국을 못 한 것은.
수년 전, 여행 재능(?)이 아깝다며 블로그를 꾸며주겠다는 지인까지 있었는데 다 마다하다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정말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해보자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시작했건만 2019년은 내게 너무 비포장 도로였다. 그래서 여행도 여의치가 않았네? 너 어디 계획하기만 해 봐. 반대로 뒤엎어줄 테다. 인생은 늘 그렇게 벼르고 있는 것 같다.
출발 전 다음 여행지를 구상 또는 항공권 예약을 오버랩해두면서 또 그렇게 몇 달간 내 삶을 유예하곤 했다.
'아.. 다음 여행지 예약해뒀으니 일단 그때까진 살아야지. 그때까지 살아야 하니까 일단 이 고비는 넘기고 보자.'
안 믿을 거 같지만 안 믿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겨우겨우 유지해 나갔다. 지금이 더욱 괴로운 이유는 그 목표가 없고 목표를 세울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태사자의 멤버가 여행을 다니며 택배 배송 일을 하는 게 화제가 되었다. 여행을 다니기 위해 아무 때나 본인이 원할 때 일을 시작하고 그만둘 수 있는 일이 택배 배송 일이라 그 일을 선택했다고 했는데 처음 그 이야기를 밝혔을 때 주변 사람들의 당황하는 모습이 나는 조오금 불편했다.(희열이 오빠 사랑하지만 그때 약간 미웠옹)
"아아~그러시구나.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이잖아요?"라고 포장이 들어갔지만 그 나이에? 안정된 직장도 없이? 결혼도 안 하고?라는 '일반적'이라 불리는 인식의 틀을 깨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번듯한 직장을 '못'잡아서 라던지, 결혼을 '못'해서라고 단정 짓는 사람도 많았고 다 필요 없고 그 일이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아직은 '특이한 일'로 보이는 게 분명하다.
약간 화난 것처럼 썼는데 화가 났었나 보다. 왜 저래? 자격지심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한때 그런 삶을 꿈꾼 적 있기에. 어차피 이렇게 매일같이 발버둥 치며 살아도 돈도 못 모으고 답도 안 나오는 건 매한가지인데 알바해서 여행 가고 또 돈 벌어서 여행 가고 그게 질적으로 더 높은 삶의 만족을 주지 않을까? 했었다. 그렇다. 이렇게 글 쓰는 거 보면 짐작했겠지만 생각으로 끝났다. 인정하기 싫지만 난 사회적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고 용기도 없었고 사실 누구보다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결혼도 할 줄 알았지..)
역사엔 if가 없다고 하지만 사람이니까 생각 안 할 순 없다. 그때 내가 뭐라도 했다면 여행 블로거라도 돼서 하다못해 숙박 제공받고 글 한토막이라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고(생짜 거짓말만 아니면 뭐.. 약간의 거짓말 글은 쓸 수 있지.. 갑자기 세상 타협 모드) 또 하다못해 여행책이라도 한 권 출판했을지 누가 아나.(안 팔렸겠지만 어디 가서 작가예요.. 할 수 있잖아? 허세 모드)
가지 못하는 몸뚱이를 이곳에 두고 여기저기 여행 카페를 드나들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또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일단 예약할까. 이틀 휴가도 못 준다고 하면 '그 정도 인정머리도 베풀지 않는다면 나도 내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겠소' 큰소리치고 때려치울까. 못 그러겠지. 나는 더 쭈구리가 되겠지. 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제멋대로 상상하다가 벌써 큰소리친 것처럼 진이 빠진다.
건드리기만 해도 콸콸 눈물이 쏟아지는 요즘을 버티는 방법 중 하나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작가님들의 댓글 읽기다. 사무실에서 울지 않으려 이를 앙다물며 보고 있는데 늘 보던 이 말이 참 새삼스럽다.
그래. 그렇더라.
너무 예민해서 눈빛 하나에도, 조금 비껴나가는 말투에도 상처 받는 심약한 마음을 가졌지만 대신에 친절한 마음과 따뜻한 말도 아주 깊게 새기고 감사해하는 사람이더라. 나란 사람은.
갑자기 셀프칭찬으로 종결되려고 하는데 글이 정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요즘 머릿속이 엄~청 복잡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사고가 안 돼서 그렇다. (아니다. 핑계다. 그냥 글을 못 쓰는 거다.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