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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Feb 01. 2020

예약했어요. 십 년 전쯤에

만원의 깨달음

지난번  뮤지컬 예매를 할 때의 일.

온라인 티켓 판매처에서 조금이라도 할인을 받아 보겠다고 이리저리 쿠폰 받기를 하다가 결제 금액에 맞는 천 원, 이천 원 쿠폰을 다운 받았다. 2장이 필요했기에 나는 한 장씩 예매해서 각각 할인 적용받기를 시도했다.

 수수료 천원이 붙으면서 31000원이 된 티켓을 2천 원 쿠폰 써서 29000원으로 예매 완료.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을 예매하려고 하는데 어라? 날짜 선택이 안 된다. 동일 날짜에 여러 번 예매가 안되나? 그렇다면 취소하고 다시 두장을 예매해야겠다 생각하고 취소하기로 갔는데 취소도 안된다. 응?

 아... 예매 마감 시간을 넘겨서 취소도 예매도 불가능한 거였다. 첫 장이 마감 시간 아슬아슬하게 예매가 된 것이다. 혹시나 전화해서 문의를 해봤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현장에서 구매하셔야 합니다."

음... 뭐 아주 유명한 공연은 아니니까 현장에 가서도 구매 할 수 있겠지. 현장 구매하면 수수료가 없으니까 할인받은 금액이랑 어차피 금액은 같겠네...라고 친구에게 말은 했지만 혹시나 몰라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했다.

 "현장 구매하면 돼. 니 이름으로 예약 올려놓을게."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뭐.. 설마 매진되면 어떻게든 선생님이 한 자리 구해주시지 않겠어?라는 막무가내 생각을 하면서도 역시나 마음이 불편하다.

 멍청이! 아무리 맘이 급해도 그렇지 마감 시간을 못 봤어? 아.. 치과에서 갑자기 전화해서 오라고 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네. 내 탓 남 탓을 병행해봐도 결과는 결국 찝찝함이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마무리 못한 나를 참아내기가 또 힘들다.


"우리 30분에 보는 거 아니었어?" 친구가 약속 시간을 되물을 정도로 나는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날씨도 춥지 않고 공연장 가는 길도 알아둘 겸 대학로 일대를 어슬렁 거리다가 아직 40분이나 남았는데 티켓 부스가 열린 걸 발견했다. 예매한 티켓을 수령하고 현장 예매로 한 장 더 결제하겠다고 했더니 되돌아온 직원의 말.

 "현장 예매하시면 2만 원입니다."

 "네? 아..... 네.."

어라? 천 원 할인받으려고 애쓰다가 실패했는데 만원 할인을 받았네?

 '현장 예매하면 2만 원이래. 이럴 줄 알았으면 내 거도 현장 예매할 걸. 그래도 한 장이라도 저렴히 사서 다행이다.'

 횡재(?) 소식을 전하고 다시 지하철역 출구로 가서 친구를 기다리며, 발품으로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생각에 잠긴다.


 나를 좌절하고 실망시켰던 일이 결국엔 생각지 못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어젯밤 그토록 나를 책망하게 만들었던 나의 실수가, 나의 부족함이 더 큰 행운으로 내게 돌아왔다.

 그래. 그런 것 아닐까.

 고통과 어둠의 순간에는 절대 예측할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은 더 나은 미래를 갖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과정일지도 모른다.

티켓 예매에 실패하고 만원의 행복이 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지만 인생에서 다른 무언가도 실패하고 있는 중(?)이라면 아직 결과가 나왔다고 단정할 순 없다.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 현장 예매를 하러 가는 길일지도 모르니.

 다시 무너질 희망이라도 어리석게 그렇게 또 품어본다. 아마도 나는 십 년 전쯤 너무 미리 행복을 예약해두었나 보다. 너무 오래전에 무언가를 예약해두었다면 결과를 알기까지는 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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