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 모르겠어. 늘 슬퍼가지구.
요즘은 휴대폰으로 광고 보는 어플이나 지속적인 설문조사에 응답하는 것만으로도 소액을 벌 수 있다고 해서(까까 사 먹을 정도 되는 것 같다.) 친구가 알려준 유명한 앱을 하나 깔았다. 두 달 조금 넘었는데 귀찮긴 해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한 달에 휴대폰 요금 감면 5천 원은 너끈히 되는 것 같으니 할만하다.(더 노력하는 사람들은 꽤 벌긴 하더라. 댓글 달기, 좋아요 누르기 기타 등등의 활동을 통해..) 그 어플의 메뉴(?)중 하나는 매일 출석해서 글을 하나씩 올리면 공감지수를 통해 추가 적립이 되는 형식이다. 세상 신경 쓸 일 많은 내가 거기까지 에너지를 쓸 여력은 되지 않아 그저 출석 도장 찍는 개념으로 매일 어디서 보고 들은 웃긴 사진 하나씩 올리고 한 줄 글을 쓰고 있다.(다 갖추어야 업로드가 돼서 억지로 한 줄 평(?) 씀)
매일 해야 하는 게 귀찮긴 한데 나는 모 쇼핑몰 두 곳도 몇 년째 매일 12시 땡 하면 출석도장 찍고 한 달 만근(?) 후 포인트를 받고 있으니 다 해도 5분이면 가능하다.
어제 이런 댓글이 달렸다.
나는 잠시 일시정지 모드에 들어갔다. 웃프다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생활 꿀팁을 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불특정 다수가 존재하는 무서운(?) 곳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짜 카페 등등에서 본 웃긴 자료들만 골라서 사진을 메인으로 올렸는데 웃긴 게 아니고 웃프다고??
브런치에 나 죽겠다고 좀 도와달라고, 응원이 절실하다고 시들어 죽어가는 나를 써 내려가고 있을 때에도 나는 거기에서 '풉' 1초 웃음이 터져 나오는 사진 한 장씩 올리고 있었다. 브런치의 나와 그곳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단 말이다.
마냥 재미있고 웃기다고 생각해서 내가 골랐던 그 사진 한 장 속에도 내가 묻어 있었단 말인가. 그 선택에도 내 삶이 나도 모르게 반영되었단 말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전 직장 동료를 만나 근황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분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잘하실 것 같아요. 선생님 은근 웃긴 거 알죠? 웃픈 얘기도 잘하고..."
아.. 그래.. 같이 일 할 때도 내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선생님, 무슨 그런 슬픈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웃기게 말해요?"
"이게 슬픈 얘기예요? 아닌데? 이건 그냥 제 일상 얘긴데요? 저 진짜 슬픈 얘기는 남한테 잘 안 해요."
최근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친구에게 넋두리를 할 때.
"쓰면서 힘든 걸 극복해야 한다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였을 때 가능한 것 같아. 일상이 너무 괴로움에 압도되면 나는 사고가 정지돼. 적당한 결핍과 스트레스가 글을 쓰게 하는 건 맞지만 그게 너무 크면 나의 경우는 안 되는 것 같더라. 가수들이 결혼하고 나서 노래를 잘 못 만든다고 하는 것처럼 너무 행복해도 잘 안된다고 하지만 나는 일단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제외시키고..."
마지막 말에서 친구가 픽 하고 웃었다. 어? 왜 웃지? 진심인데.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순간이 참 많았다. 종종 아니고 꽤 자주.
나를 구독했다고 해서 마이페이지로 들어가 봤다. 최근에 구독하는 기능이 생겼다고 공지로 뜬 건 본 것 같긴 했는데 나는 푼돈 모아 휴대폰 요금 감면을 받는 것이 그 어플을 이용하는 최대 목표였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라? 이미 여러 명이 구독을 하고 있네? 구독을 누르신 분은 내가 올린 지난 사진들을 하나씩 보며 댓글을 달고 계셨다. 나도 같이 봤다. 이게 웃긴 게 아니고 웃픈 건가? 어디가 웃픈 거지? 난 그냥 웃긴데? 잘 모르겠다...
지인들이 슬픈 얘기 좀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이해가 안 되던 상황과 같다.
저런 것 까지 하나하나 슬프다고 느끼면 내가 살아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만들어낸 방어기제인지 살던 대로 살아온 무뎌짐과 익숙함인지 잘 모르겠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다 쓰고 보니까 나 좀 특이한 사람 같다.
근데 이 특이함이 특별함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