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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May 12. 2020

일상이 깨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돌아오는 길

4월 초, 쓰다 만 글이 작가의 서랍에 웅크리고(내팽개쳐진) 있다.

전화 한 통으로 와장창 깨져버린 일상이 어떻게 일그러졌는지,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허우적거렸는지, 무슨 일로 싸우고 어떤 일로 화를 냈는지 그러면서 또 얼마나 울었는지 힘을 내어 쓰다가 힘이 빠져 그만두었다. 다시 쓰기 시작한 이 글도 도저히 글이 이어지지 않아 한 달 넘도록 쓰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언제고 일상을 찾으면 그간의 일들을 펼쳐놓으리라.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위로받고 그 힘으로 살아내야지 했던 마음도 흐릿해졌다.

 이미 석 달이 다 되어가는 그동안의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고 너무도 사적인 불행사를 낱낱이 기록하는 게 읽는 이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근원적인 물음에 봉착했다. [일기는 일기장에 악플은 두려워]


많은 것이 변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생명유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랬더니 신기한 결과값이 도출되었다. 강박에 가깝게 애면글면 하며 하루를 보내던 나의 체크리스트엔 꼭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안 한다고 큰일 나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웃음이 났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스스로를 괴롭혀 왔던 걸까.

 큰 맘먹고 인생 처음으로 계획했던 상담 일정도 취소되었다. 이직을 위한 면접들도 줄줄이 갈 수 없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늘 그랬지만 인생은 내 계획과 노력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견딜 수 없어 그만두겠다고 선포했던 직장은 계속 다니게 되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하루하루들, 될 대로 되라였다.

 분기에 한번 하면 많이 할까 싶었던 묵주기도가 일상 안으로 들어왔다. 기도를 하고 또 했고 엄마가 그토록 잔소리를 해도 흘려버리던, 성당에 전화를 걸어 교적을 옮기는 일을 실행했고 교무금이란 걸 내기 시작했다. 냉담자로 산지 20년도 훨씬 더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은 그것뿐이었다. 그만큼 나는 휘청였고 절박했다.


그런 채로 흘러가는 새로운 일상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관성의 법칙을 잘도 따른다.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은 그런 채로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출퇴근만 했고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다. 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은 거친 풍랑을 만난 뒤에는 모두 의미 없는 것들로 전락했다. 남는 시간에는 TV만 보았다. 무기력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아프면 다 소용없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졌다.

 마음이 회복되면 전에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찾아와야지, 찾아지겠지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에 체감했던 것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이 놀란 듯했고 충격은 깊었고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짙었다.

 출석 체크하듯 들락거렸던 브런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남의 일이 된 지 오래였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상 중에 하나였는데 그런 내가 존재했던 기억도 까마득해졌다. 그냥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구독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무의미한 걸까. 시간이 필요한 걸까. 

 한 달이 지나가며 주말에 30분 정도 책을 읽을 정도로는 회복되었지만 쓰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글도 습관이라고 어떻게 쓰는 건지 쓰는 법도 까먹었다. 이왕 이렇게(!)된 김에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닌데 다 때려치워! 글은 무슨! 까지도 생각했다. (완전한 과거형은 아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숙제 미루고 있는 아이처럼 어느 순간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구독하는 작가님이 한동안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기셨나 걱정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그쳤다. 그런데 내가 보이지 않자 너무나 감사하게도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주시는 분들이 여럿 계셨다. 나는 돌아오겠다고 했고 기다려주시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라질 때 사라지더라도(?) 그동안 감사했어요! 인사 정도는 하고 떠나야(연예인 병..?) 예의가 아닌가. 약속 어기고 잠수 타고 쌩까는 3단콤보의 먹튀(?)를 보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예전 글에 라이킷이 달리면 그 글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는데 '응? 내가 이런 말을 했어?' '오.. 이 표현은 좀 괜찮네!' 같은 자뻑에 잠깐 빠지면서 기록의 힘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내겐 그저 시간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때론 흐름에 몸을 맡기면 새로운 시간으로 자연스레 흘러가기도 하는 거니까. [라고 내가 예전 글에 썼더라.]


조금씩 천천히. 안되면 말고.

고난과 고통을 통해 성장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한 고비 넘었기에 현재 진행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과거완료라고 볼 수도 없어서.

 그래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겸손해졌다. 망각의 동물 인간이라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버릇 개 못주고 또 금세 원래의 나로 돌아올지 모르지만 지금 이 마음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

 짜증과 화로 점철된 나날들도 평온함이 보장된 일상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불만이었다는 것을 그조차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깨달음은 반드시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라던 책 속의 진리를 아프게 부딪치며 깨쳤다.

 아직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글 읽는 것이 예전만큼 재밌지도 즐겁지도 않고 쓰고 싶다는 생각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앞도 뒤도 없는 글을 끄적이며 발행하는 이유는 평생의 모범생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걱정해주신 분들, 이제 조금 괜찮습니다'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이다.(아무도 안 기다렸나..? 또 연예인 병인가...)

 시작이 반이라고(사실 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에 한표 던지는 비관론자이지만) 이렇게 뭐라도 하나 쓰고 나면 조금씩 읽고 쓰고 가 될지 모르니깐. 서서히 읽기부터 시도해보고 쓰기가 정 안되면 서랍에 있는 글이라도 발행하면 언젠가 [일기는 일기장에] 글들을 다시 이어나가게 될지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작년에 써놓은 서랍 속의 글은 하필 여행기...라는 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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