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곳에 답은 없었어.
-아마도 2017년 부모님과 함께 떠난 대만 여행을 앞두고-
내겐 여행 갈 때 쓰는 여행전용 지갑이 별도로 있다.(낡은 지갑을 버리지는 않고 여행용으로 사용) 그 지갑 안에는 늘 여행용 아답터 설명서와 밴드 몇 개, 면세점 카드 및 항공사 카드가 각자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여권사본과 여권 분실을 대비한 여권사진 2장도.
2017년 여권을 갱신하고 바뀐 여권 사진 2장을 그 지갑에 끼워 넣었는데 대만 여행을 앞두고 그놈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진을 한 장 더 넣어 두려고 새로 찍은 여권 사진을 찾았는데 아무리 아무리 뒤져도 사진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너무 잘 두려다 보니 꽁꽁 숨겼나 싶어 지난해 다이어리도 훑어보고 서랍장 뒤로 넘어갔나 싶어 닿지 않는 손을 넣어 휘휘 저어봤지만 도무지 찾아지지 않았다. 결국 포기했다. 뭐 비상용으로 찾으려 한 거니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 그 지갑을 열 때마다 나를 맞이하는 내 여권 사진을 보면서 '도대체 여권 사진은 어디로 간 거지?'란 생각을 떨치진 못했다. 이사를 갈 때 어디선가 나오겠지 싶으면서도 여권을 만들자마자 사진을 통째로(장수가 꽤 많았는데) 분실했다는 죄책감과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사진 두장을 쓰고 나면 그다음엔 어쩌지? 사진을 새로 또 찍어야 하나? 란 생각에 한 번씩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일어난 일처럼 생각하는데 일인자)
끝이 보이던 치약을 다 썼다. 새 치약을 꺼내기 위해 욕실에서 상자에 들어있던 치약을 꺼내고 상자는 접어서 재활용에 넣으려던 순간, 상자 속에서 여권사진과 증명사진 꾸러미가 튀어나왔다.
"흐후히야허"
혼자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응? 여권 사진이 왜 치약 상자에서 나오냐고!! 내게 설명을 해봐'
기억을 더듬어 본다.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니가 왜 여기서 나왔는지 나는 알아야겠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초여름.
이직을 하면서 신분증 카드를 또 새로 만들어야 했다. 같은 교내 기관인데 왜 소속이 달라질 때마다 신용카드 겸용인 카드를 다시 만들라고 하는지 귀찮았지만 그래야 카드가 발급된다고 했고 카드에는 늘 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가방에 넣고 출근을 했다. 증명사진이 필요했는데 여권 사진까지 들고 간 이유는 그냥 사진이 한 묶음으로 봉투에 들어 있어서 통째로 가져간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점심을 먹고 사무실 실장님이 은행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모두 함께 은행으로 갔다. 담당 직원은 직급도 꽤 높아 보이는 말 많은 분이었는데 앱을 깔고 뭘 신청하면 스타벅스 기프티콘도 주고 기념품도 준다고 우리 모두에게 그 작업을 강권했다.
"아.. 저는 저장 공간이 없어서요." (이미 사용기간 만 3년을 앞둔 휴대폰이라 정말 저장 공간이 늘 모자랄 때였다.)
"이거 하나만 잠깐 까시면 돼요."
직원은 내가 하기 싫어서 핑계를 댄다고 생각해서였는지(싫기도 했다.) 무표정한 내게 몇 번을 더 강력하게 얘기했다. 싫다는데 강요하면 절대로 죽어도 안 하는 청개구리 성질머리가 있는지라(성시경 콘서트 후기 '사진 안 찍기' 참고) 나는 꿋꿋하게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은행 직원의 실적 스트레스가 크다는 건 알고 있지만 깔려면 진짜 다른 앱을 지우고 깔아야 해서 귀찮았다.)
그래도 나만 빼고 안 줄 수 없었던지 직원 아저씨는 우리 모두에게 치약 두 개가 든 치약세트를 선물로 주었다.(칫솔도 줬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출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라 나는 치약을 바로 하나 꺼내서 사무실 용으로 두었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왔다. 그래. 거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 딴에는 사진을 그냥 덩그러니 가방에 넣으면 혹시 다른 짐에 휩쓸려 분실될까 싶은 생각에 사진 봉투를 치약 상자에 넣은 것이다. 그다음에는? 집으로 함께 온 치약이는 자연스럽게 욕실 수납장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2년 넘게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내 사진들도 당연히
꼬이려고 보니 이렇게도 꼬이나 싶다. 왜 2년 넘도록 나는 이 남은 치약을 찾지 않았는가. 이를 너무 안 닦아서? 그 정도로 더럽지는 않으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나에겐 일상생활을 침해하지 않을 정도의 순서 및 규칙 강박이 있는데 치약도 당연히 그 범주에 속해 있다. 2017년, 늦어도 2018년엔 썼어야 하는 우리 집에 먼저 들어온 이 치약의 사용 순서가 계속 밀린 까닭은 특혜 입은 치약들이 계속 새치기를 했기 때문이다.
엄마 : 이 치약 한번 써봐라. 비싼 거야.
언니 : 엄마랑 너 주려고 하나씩 더 샀어. 이거 써봐. 좋은 거야
친구 : 이거 이 나라에서 유명한 거야. 향이 되게 좋아.
사은품으로 받은 치약은 당연히 아주 기본형인 치약이었다. 순서상 가장 먼저 썼어야 했지만 맛있는 냄새가 나고 겉모양이 번지르르한 치약이 먼저 쓰고 싶어서 나는 그 치약 순서는 계속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제 남은 두 개 치약 중에서 '에헴. 이건 이제 써야지 잘못하면 유통기한 넘겠네'하고 레알 언박싱(!)을 했더니 그곳에서 튀어나왔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사진들이
서랍장이란 서랍장은 다 뒤지고 온갖 수납공간을 다 헤집었지만 사진은 그곳에 없었다. 당연히 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공간엔 없었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욕실이란 곳에서 사진들은 2년 넘게 보관되어 있었다.
욕실 수납장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다시 생각하라고 해도 떠올리지 못할 장소다.
기막힘 뒤엔 안도감. 그리고 그다음엔 혹시나 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갖고 싶어 하고 찾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히 내 눈 앞에 보이는 바운더리 내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곳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니 늘 불안함에 전전긍긍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전혀 생각지 못한 아주 다른 곳에서 내가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진짜 내 마음과 욕망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별일 아닌 일에 괜히 또 확대해석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고 무심코 흘리지 않으면 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니.
그런 깨달음을 주려고 2019년 연말에 치약 상자가 열린 건 아니었을까...(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나레이션 버전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