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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n 05. 2020

우리... 시간을 좀 갖자.

글. 나 혼자 권태기

남들은 가장 의욕적으로 덤빈다는 교육원 전문반 시절 나는 흥미를 잃었다.

생각도 안 했다가 연수반에서 전문반으로 진학에 성공(!) 한 것 자체가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거 뭐 몇 명 붙여주지도 않는 거 내가 되겠어? 했었는데 의외로 발표 이후 선생님 칭찬 세례(?)를 받고 어? 이러면 붙겠는데? 생각을 하긴 했었다.(기고만장..) 까이는 게 정석인 발표시간에 유독 좋은 평을 많이 해주셔서 그땐 내가 내 생각보다 잘 썼나 보다 착각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잘 써서가 아니라 그냥 개취였다. 선생님 스타일과 내 글이 취향 일치.

  "OOO PD가 '눈사람' 만들 때 나한테 하자고 했었어. 처제랑 형부 그 소재에 너무 꽂혀 있더라고. 근데 나는 못한다 그랬지. 난 완전 본부인 마인드거든."라고 말한 적 있으신바 추정이 가능하다. 그때 내가 쓴 것이 너무나 본부인 마인드에 충실한, 그렇지 않은 잡것(!)들에게 '요건 몰랐지? 네 이놈!!' 반전으로 천벌을 내리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오늘 발표작 중 시청률로 치면 가장 잘 나올 이야기라고도 하셨는데... 아아.. 나는 심리전이라고 쓴 이야기인데 아아.. 나는 막장이 체질인 사람이었던가..)

 아무튼 그렇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고 전문반에 진학했는데 진학하자마자 나는 열심히도 안 했고 재미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여유가 없어서 재미도 없고 열심히 안 했던 건가?

 암튼! 그래서 출석과 수료에 의의를 두고 그냥 다녔다. 너무 바쁠 때여서 기한 내 과제 내기도 급급했고 연수반과 달리 동기들과의 사이도 끈끈하지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회식 날마다 일이 생겨서 빠지게 되면서 약간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았다.

 종강 날 회식 자리에서(이마저도 1차만 하고 집에 왔다.) 어떤 동기 아줌마와 이야기 끝에 내가 그런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저는요... 사실 그렇게 뜻이 없어요. 전문반도 올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온 거고.. 재능도 딱히 없고.. 열심히도 안 하고.. 그냥 이 정도 해봤다는 데에 만족해요. 이제 별로 쓰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열정도 없고... 그냥 그래요."

 40대 후반쯤 되었던 것 같은 그분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직 어려서 그래. 괜찮아. 그럴 때가 오는 거야. 절박해지는 순간이 또 올 때가 있어. 놓지만 말고, 그렇게 한발 담그고만 있어. "

 그냥 흘려들었다. 어리다고? 내가? 아닌데?

  세상에! 그때 나는 아직 20대였다. 25살이 되던 해부터 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29살인 나는 이미 내가 노쇠하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였다.

 그나마 이 대화를 기록해두었던 덕분으로 몇 년 전 나는 이 기록물에 무릎을 탁! 칠 수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게 인생 다 산 것처럼 아는 척했구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생 선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구나. 하는 뒤늦은 부끄러움. 살다 보면 그런 때가 다시 올 수도 있는 거였는데 나는 두발 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고 살았더니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거구나 하는 후회.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이제야 본론) 도통 읽는 것에 흥미가 올라오질 않는다. 인풋이 없으니 당연히 아웃풋도 없다. 읽는 것도 귀찮은데 쓰기를 할리가.

 인생의 낙인 1. 여행 2. 공연.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없게 되자 삶의 의욕이 없고(핑계 1), 서랍에 있는 여행기(제 첫 방콕은 어땠냐면요~)를 발행하자니 지금 마음 상태와 온도차가 너무 크다.(핑계 2)

 공연은 예매만 했다 하면 취소당하거나 취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줄줄이 이어지고 시간 날 때 이곳저곳 여행 계획이나 미리 세워볼까 싶어도 기약 없는 일정에 흥이 날리 만무하다. 여행+공연에 몰빵 하는 경제생활이니까 논리적으로 돈이 쌓여 있어야 하는데 통장 잔고는 별반 다르지 않고 이렇게 모처럼 시간이 날 때 고상하게 책도 읽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어째 면역력은 점점 떨어지고 알차게 보내지도 않는데 하는 것 없이 시간은 잘만 흐른다.

 큰 일 겪고 아직 마음이 회복이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핑계 3)는 게으름의 이유가 되어 주기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지 오래다.

 "이제 성인의 경지에 이른 거야?" 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일상의 사소한 흔들림에 조금은 덜 휘청이게 되었지만 그건 단단해져서가 아니라 잠시 모든 감각에 마취주사를 놓고 현실을 외면하고 있어서 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걸까. 모든 말초신경이 뭉툭해져서 그 어떤 감흥도 열의도 느낄 수 없다. 

 글 읽는 게 재미있지 않아요. 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져요.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지만(험난한 미괄식 구성) 그럼에도 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굳이 굳이 이렇게 시간을 들여 쓰고 있는 이유는, 나는 믿지 않지만 기록의 힘은 믿으니까. 그때 동기 어머니가 내게 던진 말을 이제는 한번 귀담아 마음에 새겨두려고.

"괜찮아. 

절박해지는 순간이 또 올 때가 있어. 

아직 어려서 그래.(이건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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