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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un 20. 2020

너의 이모는 건강할까?

불운 채무 청산

급여 삭감의 대가로 매달 무급 휴가 일주일을 선물(?) 받고 있는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째 지방에 있는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친구의 집은 확진자가 한 명도 없는 청정지역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동하는 데에 혹시나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주말을 낀 평일 며칠의 휴가는 먼 지역의 고향까지 가기에 딱 좋은 기회이건만 마음먹었다가도 친구는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심지어 얼마 전 혼자 힘들게 이사도 했는데  가족 중 아무도 도와주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엔 가야 하는 거 아냐? 너무 오래 안 가지 않았어?"

 "그러게. 내가 가든가. 아니면 엄마가 오던가 해야 할 텐데.."

 "엄마가 서울 오시는 것보다 니가 내려가는 게 낫지 않아? 서울 돌아다니시는 거 위험하지."

 "응... 근데.... 혹시 내가 무증상자일까봐..(하다가 이내).. 근데.. 난 무증상일수가 없어. 난 걸리면 즉시 아플 거야."

"하하하하하!"


친구의 말 뜻을 파악한 나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내 주변엔 아주, 자주, 모든 곳이, 온통, 늘, 언제나 아픈 종합병원 3인이 있는데 친구가 그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이 허약한 내게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을 거라는 자조 섞인 그녀의 웃픈 고백이었다.


 놀랄까 봐 뒤늦게 자가격리 체험(?)을 알렸을 때 조카가 놀라 물었다.


"이모는? 이모는 괜찮았어?"

"어. 이모는 괜찮았어."

"와...! 이모 건강하구나?"


말간 얼굴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반박자 늦게 대꾸했다.


"어?... 어.. 이모 건강해."


어디서? 그럼 이모 검사도 했어? 안 아파?

쫑알대는 조카의 말에 대답을 해주면서 생각해본다.

가만있어보자. 근데 너의 이모 진짜 건강한 건가?


 감사하게도 타고난 건강체다. 특별히 안 좋은 곳이나 특정 알레르기 같은 것도 없고 유전적인 큰 질병도 양가 집안 거의 없다. 기관지가 조금 약하다는 일상 질환 정도?

 거기다 지나친 건강염려증에 따른 자기 관리도 철저한 편이라 몸이 조금만 불편하면 뽀로로 병원을 잘도 달려가고 남들은 꺼려하는 치과와 산부인과,  거기다 아직 이 나이엔 다들 잘하지 않는 안과 검진도 매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다. (새해 달력을 받으면 경조사와 함께 병원별 정기검진 달부터 체크하니깐)

 어디 그뿐인가. 평생을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살아온 모범생으로서 의사 선생님 말도 잘 듣는다.

 "약 드시는 동안 일주일 동안은 OO, @@ 드시지 말고 ##, $$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분명히 말 안 듣는 환자들을 생각해서 넉넉히 말한 일주일일 텐데 일주일+닷새 정도는 안 한다. OO, @@, ##, $$ 말고 괜히 안 좋을 것 같으니까 &&,**도 안 먹고 안 한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건강 검진할 때마다 심혈관 나이가 다섯 살 어리게 나온다. (물론 늘 운동 부족은 지적받는다. ㅠㅠ)

 근데 그렇다고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말할 순 없다. 정신 건강이 남들보다 월등히 안 좋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그래서 건강하다. 건강한 편이다. 문제는 멘탈이 너무 약하고 예민하다 보니 신체화(심리적 조건에 따라서 신체증상이 생기는 과정) 증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기 직전에 먹고 자도 아무 탈이 안 나던 몸이 스트레스 인자가 생기면 즉시 기능을 멈춘다. 곧바로 수면 장애로 연결되고 면역력이 바닥 끝으로 떨어지면서 고질적인 지병  예컨대 다래끼, 구내염,  기관지염, 피부 트러블이 연쇄작용을 하며 악순환을 일으킨다.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있던 와중에 나를 본 사람들은 그래서 "또 아파?"라고 묻기도 하고 오랫동안 봐온 지인들은 "괜찮아. 넌 건강하잖아." 아프다고 하면 생각도 해보지 않고 "너 그거 그냥 스트레스야"라고 단정 짓는다.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건강한 건지 안 건강한 건지 헷갈린다.


"마스크도 안 하고 확진자 사이에서 밥까지 같이 먹었는데 괜찮다고? 와! 너 진짜 건강하다! 내 주변 사람 중에 니가 제일 건강해! 나 같았으면 이미 벌써 쓰러졌어!"


아픈 종합병원 3인 중 다른 한 명의 친구가 소식을 듣고 놀라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말.


"대단한 거 아냐? 너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이 정도면 완전 럭키걸인데?"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때 친구와 나는 같이 웃었던 것 같다. 그 웃음에도 친구의 말에 동조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일상엔 균열이 생기고 깨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아프기까지 하면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릴 상황이었다. 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일상까지 침투할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 직전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내몰려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지 한 달이 넘었고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쏟아져 결국 상담을 신청해둔 상황이었으니 신체화 증상들은 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나쁜 결과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니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신체가 너무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서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한 걸까 생각도 해보고 혹자는 평소에 각종 영양제와 건강관리로 다져온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된 것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접촉-검사 시간 동안 항체가 생겼나 의문도 가져보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그저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확실한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력에 대한 공정한 성과나 결과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니, 반대의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그래서 억울하고 화가 난다.(나만 이래?)

 그래도 인생은 모른다. 끝나지 않았으면 언제든 반전이 찾아올 수 있는 법. 불행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내가 한순간에 럭키걸로 개명(!)된 것만 봐도?

 마음관리는 참 못하고 살았지만 그동안 알뜰살뜰히 보살펴 왔던 몸에 대한 정성이 하늘을 감복시켰다면(또또 거창해진다..) 어떤 노력이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보답받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잠깐 생각해봤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신기해하면서도 혹시 몰라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지 않고 몸뚱이 감각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동시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속도 그제야 여유를 가지고 들여다보았다. 강제로, 저절로 세상과 단절되면서 가장 진솔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 오롯이 나 자신 하나였으니.

  인생을 강제로 멈출만한 어떤 사건이 생긴다면 잠시 멈춰서 내 인생을 제대로, 고요히 바라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때 내린 많은 결정과 바뀐 생각들이 지금의 내 환경과 나를 만들었다.

 마음에 조금 더 마음을 쓰자.

 건강한 신체와 밸런스를 맞춰보자.

그리하여 완벽하고 충만하게 건강해져 보자.(공익적인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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