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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Nov 09. 2020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힘 안 주고 버텨내는 것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작년 이맘때엔 탄력을 받아 참 열심히 읽고 쓰고를 했던 것 같다.(물론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은 영향도 있었지만) 내게 인터넷 세상은 막연히 두렵고 어려운 곳이었는데 브런치에는 유독 따뜻한 분들이 많아 애정 어린 소통과 교감을 하면서 해저 이만리보다 더 바닥에 붙어 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순간도 많았다.

 별 내용 없는 일상의 기록엔 재미있다는 응원과 깨달음이 있는 글이라는 과찬의 영광도 누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로 도배한 글에도 많은 격려와 위로의 댓글에 울컥하기도 했다.

 읽는 게 재미있었고 시답잖은 얘기라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때 많은 교감을 나누었던 분들 중에 지금도 열심히 읽고 쓰시고 여전히 시간을 함께 하는 분들은 20%채 남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본업에 바빠 글 쓸 시간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안 쓰다 보니 쭉 손을 놓게 된 관성, 개인적인 사정, 브런치에 대한 회의감 등등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한 번씩 궁금하고 못내 그립고 때론 서운하기까지 하다.(뭘 이렇게까지?)

 그런데 요즘 내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연을 알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브런치에 대한 회의감은 굳이 쓰지 않겠다. 너무 앞담화잖아?)

 실속 없는 글을 숙제처럼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고민을 하다가도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늘 죽이 되지) 뭐라도 써야 한다는 강박과 죄책감에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그 생각만으로 벌써 일 년 브라운아이즈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여행을 못 가니까(그래서 시름시름이 더 심해진 거 같다..) 현재 여행기 매거진은 쉰다 쳐도 과거 여행기 매거진은 2011년에 멈춰 있는데 이후부터 작년까지 여행기만 써도 족히 20개는 나올 텐데 쓰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아무래도 여행기는 좀 신이 날 때 쓸 마음이 생기나 보다. 근데 계속 안 신나..)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다가 '있는 거나 잘 써라, 요놈아' 금방 호되게 나를 꾸짖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남들은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내는 브런치 북은 애초에 내게 언감생심이었다. 

 이런저런 핑계와 개인적인 변명을 다 갖다 붙여 봤자 결국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자이다. 재능도 없고 죽어라 노력도 안 하지만 그래도 꾸준함과 성실함은 내가 가진 키워드였는데 그것마저 고 나니 한심하고 꼴 보기 싫은 나만 남았더랬다. 그러지 않기로 하고선(나는 남 하고의 약속은 철석같이 지키면서 나하고 하는 약속은 잘 저버리는 것 같다.)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타인의 삶과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지면 의존적이면서 때론 소심하게 공격적인 미성숙한 자아가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다.(갑자기 옛날 '아이덴티티'영화가 다시 떠오르며 보고 싶어 진다. 생각만 하지 말고 영화라도 다시 봐. 제발.)


 그래도 '다 싫어. 아무것도 안 해. 다 때려치워!'(한 것도 없는데 뭘 때려치운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선언하고 완전히 귀 닫고 손 놓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나는 예전처럼 읽고 쓰는 것에 열심히가 아니지만 예전과 동일하게 읽고 쓰는 꾸준함을 자랑하는 분들이 곁에 남아 있음이고(존경해요. 정말루요.) 사라졌다(!) 최근 다시 돌아오신 분들의 글들이 격하게 반갑고 기뻐서 안 보면 손해 같은데 손해 보는 건  또 싫어하기 때문이다.(여행지에서도 흥정이라면 질색하지만 호구는 안 되는 타입)

 게다가 최근엔  구독하는 작가 의사 선생님이 이벤트에 당첨시켜(?) 주셔서(댓글도 열심히 쓰다 보면 뭐가 되나 보다.) 소중한 책도 선물 받았다. 진짜 눈물이 훌쩍 차올랐다.(감동을 잘 받는 것도 병인가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

작가님. 제가 마음의 병에 걸려(?) 자랑과 홍보가 너무 늦었습니다요.

'나만 빼고 다 잘났어' 시샘과 질투, 자괴감의  구덩이에 걸핏하면 빠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는 나는 참으로 참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런 솔직한 내 마음과 못남을 쿨하게 인정하고 그 언저리에서 두리번거리다 보면 뭐라도 조금은 나아질까 싶다.


 오늘은 약간 마음이 반짝여서 이렇게 반성문(!)을  쓰고는 있지만 다음의 내 행보는(거창하게 얘기하지 마. 안 궁금해하신다규) 나도 잘 모르겠다.

 이래 놓고 진짜 벌써 일 년 브라운아이즈가 돼버릴지(더 잘못되면 그 후로 오랫동안 신승훈), '안 신나지만 여행기라도 써볼게요. 2012 괌은 찬란했다' 매거진을 이어갈지, 하던 대로 꾸역꾸역 일기는 일기장에(차라리 애초에 이 매거진을 만들지 그랬어?) 소소한 일상을 써 내려갈지, 갑자기 '이것보쇼. 짜쟌. 요것은 새로운 매거진' 할는지. 내 마음, 내 상황 나도 모르니깐.

 뭐가 됐든 개점휴업이 되지 않도록 완전히 놓거나 잃지만 말기를.

 힘 빼고 일단 물에 떠있기만 하면 살 수는 있을 테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 아웃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 거리며 간 보기. 준최선으로 비벼 보기.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최선은 관성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관성이나 습관이 될 수 없지만, 준최선은 관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최선이 근육에 배면 어떤 일을 해도 디폴트 값으로 준최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최선과 한 집에 살면 삶이 고달파지므로, 옆집이나 이웃 정도로 거리 유지를 하고 달걀 꿀 때만 최선이네 집에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보영, '준최선의 롱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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