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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an 15. 2021

네. 행복해 드릴게요.

강식당을 다시 보다가 엉엉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오전과 오후 사이의 시간. 자연스레 TV를 트니 예전에 했던 강식당 2가(정확히는 강식당 3) 재방송 중이다. 홀린 듯 멍하게 다시 본다.(잠 덜 깸+본 거 또 보는 거 좋아함) 강호동의 '내가 뭐라고..'로  꽤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회차이다. 강호동이 느닷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이후 방송뿐만 아니라 신서유기에서도 내내 놀림을 당하고 아는 형님에서까지 동생들이 걸핏하면 '내가 뭐라고'를 희화화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내 글에도 댓글로 응원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면서 인용했던 적이 있다.)


 강호동의 오랜 팬이었던 중년 여성이 병석에 있는 동안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통해 큰 힘을 얻어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꼭 한번 그를 만나고 싶어 했는데 아들이 강식당 손님 추첨에 당첨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대충 이런 스토리라인

 누군가 나로 인해 인생의 위기를 견딜 정도의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면 당사자로서는 감동받아 눈물 흘릴만하고 그래서 '내가 뭐라고...'얘기가 당연히 나올법하다. 이해가 된다.

 근데... 나는 왜 울어??

 당시 방송을 보면서도 쬐끔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울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울었다. 훌쩍, 잠깐 이쁘게 울고 말려고 했는데 결국은 징징, 질질, 코까지 풀었다. 생각보다 오래 울어서 나도 어이가 없어서 울면서 이유를 찾았는데 아직도 30대 사춘기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는 말이고 이른 갱년기라고 하기엔 너무 시건방진 얘기다. 울고 싶었는데 핑계 삼았다고 하기에도 뭐.. 딱히 요즘 힘들다고 할 만한 이유도 없다. 그런 이유라면 방송을 했던 당시에 펑펑 울었어야 맞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에 대해 분노로 활활 타오르던 그때.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 있었다. 당시에는 미처 유심히 보지 못하고 지나갔던 그들의 마지막 인사말.(봤던 걸 또 보는 시간 낭비만은 아님을 증명한다.)


 행복하라는 그녀의 말에  행복할게요.라고 대답하는 그.

 아주 흔한 인사말로 사용되는 행복하라는 말은 톡이나 문자나 편지와 같은 텍스트로는 자연스럽게 쓰지만 정작 음성으로 주고받는 일은 드문 것 같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너무 간질거리니깐.)

 내 마지막 기억도 2014년,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들은 말로 멈춰 있다.

 터키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고 있을 때 일행 아주머니가 했던 말.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지나가며 헤어지는 인사말로 쓱 하신 말씀이라 그저 가벼운 목례로 대신했던 것 같다. 어쩌면 행복하려는 연습도 한 적 없고 행복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 그 말에 적당한 대답을 못 찾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번씩 그 일이 떠오르는 걸 보면 행복하라는 말은 그 자체로 마음을 달뜨게 하는 것 같다.

행복의 인사말을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그 해답을 이제 조금 안 것 같아서, 이제야 알 것 같아서 나는 그리도 구슬피(?) 울었나 보다.

 행복하라는 말에 대한 참된 응답은 고맙다는 말도 아니고 똑같이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전에 행복하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혹시 앞으로 또 누군가 내게  목소리로 행복하라는 말을 전한다면  나도 꼭 그렇게 대답해야지.

"네. 행복할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dzYYQJJD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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