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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Jan 26. 2021

"저는 유서까지 써놨다구요!"

서울대생도 인생은 힘들다.

괜찮아질 만하면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다시금  똬리를 틀고 자리 잡는다. 잘난 사람, 잘 사는 사람, 잘하는 사람, 잘 쓰는 사람들이 주변에 차고 넘친다.

 건너, 또 건너의 주변인들의  좋은 소식에 함께 기뻐하지도, 진심으로 축하하지도 못하는 간장종지 같은 내 그릇을 확인할 때면 그 옹졸함과 졸렬함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럽다.

 싱어게인 프로그램을 1회부터 본방 사수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오디션 프로도 질려서 안 보게 되었지만 심사위원 중에 애정인(!)이 두 명이나 있어서 아니 볼 수가 없었다.)

 그중 요즘 화제인 싱어게인 30호 가수의 첫 무대, 첫 인터뷰 중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자신의 키워드를 '배 아픈 가수'라고 라고 명명하며 전형적으로 실력 없으면서 잘 되는 사람 배 아파하는 쪼잔뱅이라고 방송에서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신선하면서 보통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1.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공감 못하더라. : 나만 소인배냐? 2. 실력 없다고 얘기해놓고 잘하더라.: 배신감 느꼈다.)


때는 열흘 전쯤으로 돌아간다.


"꺄아아악~"

높은 데시벨의 여자의 고주파 소리가 잠깐 들렸다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들리긴 했지만 비명이 아니라 신나서 목청껏 지른 소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30여 초도 지나지 않아 우리 층 어떤 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똑똑' '쿵쿵' '쾅쾅' '쿵쾅쿵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과격해졌고 소리에 흥분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직감적으로 옆간(?) 소음 분쟁이 시작됨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 당시 상황을 대화체로 작성해 고증(?)을 높이겠다. (참고로  4가구씩 마주 보는 구조로 한층에  8가구가 있으며 분쟁지역은 내가 사는 곳 라인이 아닌 맞은편 라인이다.)


격한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윽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피해자(남)   (몹시 격앙된, 경상도 억양) 왜 문을 안 여는데요? 지금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번쨉니까? 제가 잠을 못 잔다고요! 잠을! 지금 겨우 잠들라 했는데(목소리 더 커진다) 시험 얼마 안 남았다고 조용히 해달라고 제가 몇 번을 말했냐고요!

가해자(남)   (얄밉도록 차분한 서울 말씨) 죄송한데요. 지금 10시가 넘었는데 이렇게 큰 소리 내시는 것도 다른 집에 방해되거든요.

피해자(남) (더욱 고조된 목소리) 제가 이렇게 먼저 말해줘서 좋다고 할걸요? 제가 옆집에 다 물어봤어요! 안 시끄럽냐고. 다들 시끄러워 죽겠대요! 주말마다 친구들 데려와서 시끄럽게 떠들고, 소리 지르고. 시험공부 중이라고요! 변리사 시험 며칠 안 남았는데 내 떨어지면 책임질 거예요?

가해자(남)  죄송한데요. 근데 여자 혼자 사는 집이잖아요. 이렇게 선생님이 문을 두드리는 게 여자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겠어요?

가해자(여)  (갑툭튀) 너무 무섭게 막 그러시니까... [범인은 너 아니냐. 너는 입이 없냐. 말 못 하냐.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와 추임새냐. 방청객이냐.]

피해자(남)  남자 소리 들리니까 남자랑 얘기하려고 왔죠. 여자 혼자 있을 때 제가 온 적 있어요?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몇 번을 말했는데... 잠을 못 자니까 좀 조용히 해달라고.

가해자(남)  그건 선생님 생각이시고. 저희는 여자 입장을 모르잖아요. 남자가 이렇게 문을 크게 두드리고 하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 얼씨구? 여자는 겁나 의존적인데 남자는 페미니스트?]

피해자(남)  (억울해 죽겠다) 그러니까 문을 왜 안 여는데요? 매너잖아요. 시끄럽게 했으면 문을 열고 죄송하다고 하면 될 거를 왜 문을 안 열고 피하는데요? 시끄럽게 안 했으면 내가 이래 올 일도 없잖아요?

가해자(남)  그래서 죄송하다고 했잖아요. 더 뭐 어쩌라고요? 변리사 시험 준비하신다니까 아시겠네. 뭐, 신고하실 거예요? [아오 씨, 한대 줘 패주고 싶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시험공부 중인 피해자는 지속적인 옆간소음에 시달렸고 몇 번 당사자에게 조용히 해줄 것을(아마도 메모 등의 형식으로)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사건 당일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옆집 방문(?)을 하였는데 늘 그렇듯 가해자는 적반하장이다. 가해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피해자에게(둘이 나이까지 까고 싸움 붙길래 들었음) 깍듯이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 이는 비아냥거림이었고 싹퉁머리 없는 말투로 보아 말만 미안하다고 했을 뿐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피해자의 주장대로 사과할 마음이 있었으면 정식으로 죄송하다고 하면 거기서 끝날 일이었으나 '미안하다니까 어쩌라고' '너는 내 여자 친구 집 문 막 두드렸잖아. 난 이게 너무 불쾌하거든?'을 문제 삼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 싸가지들 보게. 지들이 원인 제공한 건 어디로 날려버리고 자꾸 여자 혼자 사는 집 타령이야.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기어 들어와서 시끄럽게 한 게 누군데.'

 들으면서 계속 우리 편(?)을 응원했던 나는 마음 같아선 문을 박차고 나가,

 "저기요. 저도 계속 들었는데 너무 시끄러웠던 거 맞거든요?" 하고 피해자 편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나서기에 나는 불리한 성별을 가졌고 태생적으로 쫄보인 데다가 사실 결정적으로 그 전에는 맞은편 집의 소음을 들은 적 없으니 이는 위증에 해당되므로 그럴 순 없었다. 잠자코  들으며 우리의 청년 피해자(!)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그를 일갈해주기를 응원할 수밖에.


피해자(남)  제가... 진짜 잠을 못 자거든요.. 이게 한 번 신경을 쓰면 온통 정신이 그쪽에 가 있어서.. (울먹울먹) 오늘은 조용할까, 오늘은 안 시끄러울까 하는데.. 좀 전에도 겨우 잠들라고 했는데 또 이래 버리면 진짜... 아예 못 자거든요. 제가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는데.. 전에 사시는 분도 대학원생이어서 얘기를 서로 했단 말이에요.

가해자(남)  저도 대학원 다녔어요. [그냥 지기 싫어서 따라 하는 말은 아니고..?]

피해자(남)  그럼 잘 아시겠네요.. 여기 다 절반이 동문이고.. 공부하는 사람들 많은데..(읍소) 공황장애가 있다고 말씀도 드렸잖아요. 약도 먹고 있어요.

가해자(남)  저도 공황장애 있어요. [앵무새냐?]

피해자(남)  저는... 진짜... 진~~짜.. 심해요.. 공황장애.. 불면증도 심하고.... 잠을 진짜 못 자요.

가해자(남)  훗...  저도 있어봐서 안다고요. [앵무새인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피해자의 울먹임 섞인 마지막 절규는 지금 내게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피해자(남)    (곧 울 것 같은 목소리) 저는... 유서까지 써놨다구요!!

가해자(남)     .............


다행히 가해자도 저 말에는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대학원까지 다녔다는 지성인들(?) 답게 서로 죄송하고 조심하겠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내가 마무리되지 않았나 보다. 한겨울로 접어들며 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 어김없이 약간의 수면장애가 찾아왔는데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피해자 청년의 저 말이 망령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평생을 1등만 하며 가족의, 가문의 자랑으로 자라왔을 인생. 타고난 명석함으로 칭찬만 들어온 삶이었을 텐데 무엇이 그를 유서까지 써놓게 만들었을까. 1등만 하던 인생에서 시험의 부담이 너무 큰 것일까? 혹시 처음 보는 시험이 아니라서  또 떨어질까 봐 불안이 커진 걸까? 단순히 시험이 원인이 아니라면 시험에 붙는다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닐 텐데? 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잠자리를 더욱 괴롭혔다. 당장 내 밥벌이도 급급하고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기에도 벅차면서 승승장구 1등만 하며 살아온 누군가의 인생을 걱정하는 건 코미디다. 지나가던 개가 나를 보고 웃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그 말이 나를 떠나지 않는 건 그날 그 청년의 말이 괜히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등의 삶을 나는 모른다. 1등을 해본 적 없다. 정말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아무리 잘해도 최고 성적은 2등이었고 1등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사실 승부욕이 없는 편이라 '1등을 꼭 하고 싶어'라는 마음을 먹어 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그만한 깜냥이 안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애초에 야망이나 욕심 따위를 키우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것이 나의 장점이자 재능(!)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평생 전교에서 1등만 하고 살았을 아이들(?)을 10년 넘게 보며 질투하거나 시샘한 적도 없다. 김태희나 한가인이 예쁘다고 질투하지 않듯 넘사벽, 아예 다른 차원의 인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너무, 계속, 오래, 많이, 봐서 무덤덤해진 이유도 있다.) 궁금했던 적은 있다. 그렇게 똑똑한 머리로 살아가는 인생은 어떤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정말 다른지. 미래를 그리는 비전은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범위 일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졸업 후 그들이 밟아가는 인생 코스는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없는 탄탄대로였고 요즘엔 개천 태생 용 없다더니 집안도 배우자도(또는 이성친구) 으리으리했으며 그 모든 것이 조합된 상태는 빈틈없는 완벽함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가진 것만 바라볼 줄 알았지 그 이면의 내가 알 수 없는(알리가 없는) 짓눌린 압박감이나 부담감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말일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뭐, 나보다 훨씬 잘 살잖아? 누가 누굴 걱정해? (일 머리가 없어서 같은 말 여러 번 하게 하면) 그 머리 그렇게 쓸 거면 나 주라고 해. 같은 말로 이죽거리면서 그저 나를 가련히 여기고 연민하는데 집중했다.

 그날 그 청년의 절규를 곱씹으면서 인간이 각자 품고 있는 희로애락의 편차는 그리 크지 않음을 새삼스레 느꼈다. 결국은 내가 앓고 있는 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주변의 평가가 어떠한들 내 인생의 주체가 내가 되지 못하면 만족은 계속 0에 수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0호 가수는 TOP 10에 진입했다. (어제 방송에서 '이승윤'이라는 이름이 공개되었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는 자신은 늘 애매한 사람인데 4라운드까지 오다니 요행이 길다라고 조용히 자평했지만 무대를 뒤집고 극찬을 받으며 TOP 10에 올랐다. 김이나 심사위원은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스로가 왜 날 이렇게 평가하지? 날 왜 좋아하지? 난 애매해.라는 게  마인드 컨트롤의 일환일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사랑이나 인정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훨씬 더 멋있어질 것 같아요. 아마 그 사연이 너무나 길게 있겠죠.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마음을 넓게만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심사위원을 쥐락펴락 쿨한 밀당남처럼 굴던 그는 그 자리에서 오열한다. 개인의 서사는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은 뭔지 알 것만 같았다.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을 계속 들여다보고 잘난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난당하며 다쳐 왔을 것이다. 무너지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선 두터운 자기 보호막이 필요했을 테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고 욕심을 거세하는 일이었다.


 칭찬만 듣고 자라온 인생도 유서를 써놓을 만큼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하고, 본인의 재능을 평가 절하하며 주눅 들어 살아온 누군가의 인생도 애처롭긴 매한가지다.

 부와 명예가 인생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며 질곡 없는 삶을 확장시키는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외부의 모진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 견고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니까, 인간이니까 당연히 비교도 하고 열등감도 느끼고, 우울할 수밖에 없지만 오랫동안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내 인생의 키를 남에게 쉽게 내주지 않는 것. 그리하여  타인으로 인해 내가 함부로 휘둘리게 방치하지 않는 것. 그것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인생 아닐까.

 어차피 주어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니 곁눈질만 하면서 남의 행복과 불행으로 내 인생을 재단하지 말고  나의 현재와 시간에 좀 더 충실하다 보면 행복까지는 모르겠지만 덜 불행하지 않을까 싶다.

 

1. 물론 말이 쉽지 잘 안된다. (잘 안되니까 자꾸 글이라도 써본다.)

2. 자꾸 공익적인 주제로 결론을 내는데 왜 나는 나아지는 게 없는가.

3. 아니다. 습관적 평가절하는 지양하자. 나도 칭찬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이거슨 답정너 칭찬 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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