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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Feb 10. 2021

엄마는 여전히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영석 PD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윤스테이 방송 시작 전 예고편을 보자마자 이 소식을 알려주었다.


      코로나로 해외서 하려고 했던 걸 못해서...(블라블라).. 그래서 이렇게 한대...

엄마   멤버는 그대로고?

     어. 원래 멤버에서 최우식이 추가로 들어간대.

엄마   최우식이 누구...?

나      기생충에 아들. [대표작, 유명작의 힘은 대단하구나. 이렇게 짧게 설명이 가능하다니]

엄마   (멋쩍은 건지 부끄러운 건지 애매한 표정 지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아... 이름은 몰랐... 어


음? 최우식을 모르는 게 죄도 아니고 뭘 저리 큰 잘못 저지른 것 같은 표정이지? 사실 이름을 뱉으면서도 아차차. 엄마가 이름까지는 모를 텐데 했었다. (최우식 님 미안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누군지 아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엄마는 곧이어,

"그... 얼마 전에 정유미랑 뭐 프로 하지 않았어? (잠시 생각하다) 여름방학!"이라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더니 갑자기 의기양양해진다.


채널 개수를 세며 치매방지를 하고 있나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만드는 아빠의 TV 리모컨 돌아가는 속도에 신기해하던 찰나, 엄마가 제어를 건다.(어휴. 또 싸움 시작되는 줄 알았다. "좀 하나를 제대로 보자" "뭐 하는지 돌려 보는 거지"로 시작되는 영양가 없는 말싸움.. 우리 집만 이런 거 아니지?)


엄마  어, 잠깐만. 앞의 채널 좀 돌려봐.


아빠는 몇 개의 채널을 다시 뒤로 돌렸고 엄마가 멈추라는 곳에 멈춘 방송에는 싱어게인 63호 이무진 가수가 노래 중이었다.


엄마  쟤 말이야, 어디서 많이 본 애 같지 않아? 누구 닮지 않았어?

아빠  어어! 맞아 맞아!

엄마  전부터 누구 닮았는데... 싶었거든.


뭐? 왜? 날 왜 보는 거지?  자, 어서 젊은 니가 답을 내놓아보거라, 이 답답증을 풀어달라는 눈빛이었다.

나.. 난? 모르겠는데?? 그리고 둘은 언제 저 프로를 봤던 거야? 가요무대랑 트로트만 보는 거 아니었어??

마지못해 내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댓글로 정보를 하나 제공해본다.


   인터넷에 보니까 방글라데시 갔다 온 유노윤호라고 하던데. [이무진 님 미안합니다.. 제 의견 아니고요, 제 생각도 아닙니다. 그냥 주워들은 거예요..]


엄마의 표정이 개운찮다.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건지 유노윤호를 모르는 건진 모르겠다.

때마침 몇 시간 후 유노윤호가 광고에서 밥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놓칠세라 큰 소리를 낸다.


   쟤! 쟤가 유노윤호야

엄마 (짜증 섞인) 아니이~~!!


으음? 안 닮았으면 안 닮은 거지 짜증은 왜 내는 것이야?

그게 아니었다. 엄마의 짜증은 '너는 내가 유노윤호도 모르는 줄 알아?'였다.

듣고 보니 약간 닮은 것도 같은데 왜..<사진:JTBC싱어게인, 오뚜기 컵밥>

그렇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엄마는 나이에 비해 젊은 연예인을 꽤 많이 안다. (이름 부를 때 성 떼고 이름만 부르는 건 필수) 가끔은 엄마야말로 젊은 연예인들 이름을 외우며 치매 방지 연습을 하고 있나 생각 들 때가 있다.

 몇 년 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와중에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대화도 나눴다.


엄마  쟤... 아이돌 출신이야?

     어? 몰라..? 모르겠는데..? [드라마 안 봄. 아이돌 잘 모름]

엄마  아... 쟤 어디서 봤는데.. [자, 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거라]

   (인터넷 검색 후) 아.. 그렇네. 인피니트래.

엄마  (득의양양) 그렇지? 아이돌이지? 인피니트? 인피니트면 성규가 인피니트야?

     어? 어어...

엄마  걔 지금 군대 갔지?

나     ... 그... 그래? [내가... 알.. 아야... 하는 거야?..?]


더더 옛날로 거슬러가 보면 오래전부터 그런 낌새(?)가 있긴 했다.


"2AM이 총 네 명이지? 권이랑, 창민이랑. 슬옹이(역시나 동네 아들내미 부르듯 성은 다 날리고 없다. 엄마 걔네랑 친하냐고 싸인 받아달라고 할 뻔.) 그리고... 그.. 그.. 왜 막내 안 같은데 막내인 애."(진운님... 미안합니다..)


 여행을 못 가게 되어 연휴 때마다 공항으로 가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게 되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혼자 있으나 셋이 있으나 내 휴일 일정은 늘 동일하다. 먹고 자고 TV 보기.(추가로 컴맹 주제에 아빠 비대면 강의 프로그램 깔아주고 가르쳐주고 용돈 받는 소일거리)

 즐겨보는 예능프로에 누군가 나왔다. 얼굴은 눈에 익는데 이름이 바로 안 튀어나온다. 주변 연예인들이 언급을 해주고서야 누군지 기억났고 그 방송이 전역 후 첫 방송이라는 것도 알았다. 아.. 그렇구나... 하고 있는데 엄마가 지나가다가 보더니 한 소리 한다.


"어머! 서은광이 벌써 제대했어?"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다가 되물었다.


     아니,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 난 쟤 군대 간지도 몰랐어. [서은광 님 미안합니다..]

엄마  (배시시) 전에... 어디서 봤어...


약간 우쭐해 보인다. 너 모르는 거 나 안다? 나 아직 기억력도 좋고 암기도 잘하고 나이에 비해 트렌드 잘 따라간다 느낌?


지인들이 엄마가 젊은 연예인 많이 아는 것을  대단해하더라는 얘기를 흘리듯 한번 전해주었더니 그 이후로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조금 어려운? 어린? 인지도 낮은? 연예인 이름을 내뱉고 나서는 반드시,


"선생님들한테(나의 직장 동료) 가서 말해. 우리 엄마는 OOO도 안다고"


라고 강요인지 협박인지 어필(?)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홈쇼핑 앱 주문도, 인터넷 주문도 내가 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할 수 없고, 모든 걸 다 알던 전지전능했던 엄마는 자식에게 물어봐야만 하는 일들이 늘어간다. 엄마란 이름의 절대권력은 이제 휘두를 일이 거의 없어졌고 매몰찬 자식들에겐 예전만큼 약발도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게 뭐가 됐건 간에 아직 자식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건 여전히 엄마로서의 권위를(?) 느끼게 하는가 보다. 또한 그것이 소통의 매개로 활용되면 아직 완전히 할머니가 되지 않았다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분이 드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기꺼이 엄마의 연예인 빠(?) 생활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기로 한다. 자신을 홍보(?) 해달라는 의견을 받들어 이젠 하다 하다 이제 이렇게 대놓고 모든 사람들 보라고 써제끼고 있으니깐. 조카가 덕질하는 연예인 세대까지 내려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BTS 애들은 왜......"라고 시작하는 발언을 들은 적 있다.


BTS 멤버 매칭 드릉드릉 시동 거나 보다. 물어보면 잘 알려줘야겠다. 생각해보니까 진짜 치매 방지 효과도 있을 것 같다.


+) 아빠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빠는 TV를 같이 보다가 꼭,


아빠   쟤 이름 뭐지?

      OOO 이잖아.

아빠   아!! 맞다 맞다!


라고 하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는 패턴이다.

진짜 '가물가물 이름만'기억이 안 난 건지 처음부터 몰랐는데 아는 척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래서 아빠는 하수다. 아빠가 절대 엄마한테 이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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