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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Apr 22. 2021

가뭄 끝에 비가 내리면,

반성문을 써 본다.

 드디어 돈 주고 하는 영어공부를 시작했다.(TMI.1) 오늘로 딱 50일째인데 어쨌든 아직까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다.(TMI. 2) 언어 공부라는 게 계속 접하고 사용해야 의미가 있을진대 방구석에 앉아서 필기하고 혼자 소리 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려나 싶지만(시무룩) 그래도 매일 접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희망 회로 가동)

I'm verry happy for you.
"정말 잘 됐다"라는 뜻.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축하해 주며 함께 기뻐할 때 쓰는 표현.

+good for you. 도 같은 의미이지만 억양과 톤에 따라 '너 잘났다' '좋겠네'라는 뉘앙스로 빈정대거나 비꼬는 투로 들릴 수 있으니 정말 축하해주고 싶으면 'I'm verry happy for you' 표현을 사용할 것.

필기를 해놓고 문득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또 자주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가져보았을까.

 원래 불행과 슬픈 일에 공감해주긴 쉬워도 기쁜 일에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 주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화도 많고 배알이 자주 꼬여 있는 옹졸한 나는 타인의 행복에 순도 100% 로 함께 기뻐했던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 찐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면 아예 없었을지도...

 또다시 찌질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기분이 나빠지려 하자, '아니야! 사람이 다 그렇지 뭐!' 합리화로 재빠르게 이 순간을 회피하고 만다.(영어 공부 시간에 이렇게 수시로 딴생각에 빠져서야 원...)


"너무 잘 됐다아~~!"

내 손을 붙들고 흔드는 상대의 목소리가 커진다. 왜 좋은 얘기를 마지막에 해서 사람 마음 졸이게 하느냐고 핀잔도 준다.

"음..? 미괄식 구성인데요. 원래 좋은 얘기는 마지막에..."

"사실 말은 안 했어도 내심 마음이 쓰였거든요. 진짜 너무 잘됐어요! 다음엔 좋은 일 있으면 꼭 앞에 해요. 알았죠? 두괄식으로!!"

 고조되는 목소리, 한껏 흥분된 몸짓, 만면에 드러난 웃음. 할 수 있는 모든 비언어적 표현을 동원해 기뻐하는 상대를 보며 갑자기 나도 울컥하며 순간 눈물이 핑 돈다.(공공장소라 잘 참아내었다) 아, 저 사람 나에게 진심이구나... 지금 나에게 아임 베리 해피 포유라고 말하고 있구나..(복습 타임)


 아직은 소수의 지인들만 알고 있다. 사실을 아는 친구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생일날 비슷한 축하 인사말을 보내왔다.

둘은 친구 아님. 의논해서 보낸 메시지 아님.

 사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딱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다. 팩트만 놓고 보자면 '응? 그게 좋은 일?'이라고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 친한 이들이기 때문에 진심(...이겠지..?)으로 축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꽤 오랜 시간 불운의 아이콘이자 비운의 표상으로 불린 내겐 기적과도 같은 일임을 늘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아는 것이다.

 억울하고 분해서 잠 설치던 숱한 불면의 날들을 꾸역꾸역 참아낼 수 있었던 것도 묵묵히 뒤에서 지켜보고 함께 마음 졸이며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것을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불안한 사람들은 불안한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경향이 있대.
물론 불안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러니까 원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다르다는 거야.
불안한 사람은 결코 불안한 상태를 즐기지는 않지만 원한다는 거지."

-2011년 4월 6일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中-

10년 전 라디오에서 저 말을 듣던 날, 뒤통수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날짜까지 기록해가며 메모를 휘갈겼지만 그럼에도 그 후로도 1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불안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걱정할 게 없으면 초조했다. (그럴만한 근거와 실체는 있었다.) 잠드는 순간까지도 다음 날 일을 미리 걱정했고(안 고쳐짐 1) 자그마한 걱정의 단서를 가지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내는 능력은 따라올 자 없었다.(안 고쳐짐 2)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과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이 무성한 가시나무 숲을 이뤘고 그예 많은 이들을 가시에 찔려 나가게 했음을 숙연하게 고백해본다.

 라디오에서 저 말을 들었던 비슷한 시점, 무릎팍 도사 프로그램에 윤여정 배우가 나와서 이런 일화를 꺼내놓았다.

  이혼 후, 불러주는 곳 없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던 중 어찌어찌 도움으로 전원일기의 조연을 맡게 되었고 밥 먹는 씬을 찍는데 김수미 배우가 도움을 주려고 연기 조언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 끝에, 사람이 자기가 잘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얘기가 모두 고깝게 들리노라고..

 그랬다. 그 이야기가 그때,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게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 당시의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바싹 말라버린 가뭄 같은 마음은 나를 보듬을 한 터럭의 여유도 없었고 그런 와중에 누군가의 행복에 기꺼이 기뻐하라고 까지 하는 건 부당하고 불공정한 셈법이라고 다시금 분노했다.


  사람의 성정은 쉽게 변하지 않고 이런 내가 크게 달라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다시 또 비관 모드) 다만 그때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지금의 나는 때론 포기할 줄도, 체념하는 척도, 달관 비슷한 흉내도 낼 수 있게 되었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어느 정도 구분해 낼 수 있게 되었고 할 수 있는 영역만 노력하는, 에너지 효율 등급을 높일 줄 아는 어른이가 되었다.

 기어코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애쓰진 않을 테지만 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져 적어도 나에게 진심을 전하는 사람에겐 '암 붸리 해삐 포 유'라는 메시지를 되돌려 줄 수 있는 정도의 인간은 되어야겠다고 한 문장의 복습 시간을 이렇게 긴 반성문으로 채워본다.


1) 이 문장은 완벽히 외웠다. 쓸 일은 언제쯤...

2) shame on you. 같은 말은 듣자마자 한 번에 익혔는데(인종차별에 대비하여 학습) 난 역시 성악설에 기반된 인간인가...

3) 아무래도 1) 번보다는 2)번 쓸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반성문 도로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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