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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May 24. 2021

갑자기 이런 일은 좀 반칙 같지만.

내 인생 뒤편에서 나도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일 들.

심상찮은 제목의 메일이 수신되어 있다. 뭐지? 손가락을 약간 달달 거리며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 거기까지 올라갔었니?

 몇 줄 되지도 않는 한글인데 측두엽에 고장 났나 의미 파악이 빨리 안 된다. 두세 번 읽고 나서야 요점과 중심 문장을 찾아(?) 냈다. 이건 그러니까... 불합격자한테 '귀하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로 시작하는 최종 불합격 문자 같은 거지?

 그건 뭐,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저기에 무언갈 냈다는 사실도 아예 잊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최종 60편에 올라갔었다고? 내가?? 왜??? 600편 아니고 60편에???? 혹시 전부 다 발송되는 전체 메일 같은 거 아니고??(의심병 말기 환자) 근데 도대체 뭐가 최종에 올랐었다는 거지??


 얼마 전 공모전을 휩쓴 상습 표절가 손 씨 문제가 터지기 이전부터 여러 공모전들은 말이 많았다. 매해 공고는 나지만 늘 당선작은 없고 소재만 뽑아 먹는다는 곳도 있었고 지자체 공모전 상금은 공무원들 친인척 및 지인이 내정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나마 공신력 있다고 불리는 곳들은 막상 공모 내용을 보면 '지망생'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실로 기성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작품 규격을 요하는 곳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저곳은 공중파 외에 내가 가장 자주 보는 방송 채널을 끼고 있으면서 드물게 단막을 공모하는 곳이었고 실제로 당선작을 단막으로 편성해 방송하기도 했다. 시청률이 얼마나 낮게 나올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단막을 송출하는 것은 쉬운 결단이 아니므로(게다가 예능에 특화된 채널이고) 그 자체로 나는 꽤 경건하게(?) 생각했다. 물론 방송은 평일 새벽이라는 엄한 시간대라 나도 시청은 불가했지만..

 물론 이곳도 말이 아예 없진 않았다. 최종 당선자들을 바로 합숙시키며 1년 동안 전문적으로 트레이닝을 시키는데(직업 있으면 즉시 때려 쳐야 가능하다. 될 일이 없으니 나는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 최종심에는 면접도 있었다. 글 공모전에 인터뷰가 왜 있느냐, 결국은 자기들(?) 말 잘 들을 것 같은, 편하게 굴릴 수 있는 사람 가려내려고 그런 거 아니냐, 원하는 이야기는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등등등.. 내가 왜 이런 '카더라'를 기억하고 있는지 신기하지만(부정적 이야기에 쉽게 반응하는 타입이라?) 나는 크게 동요하진 않았던 것 같다. 왜냐면 나랑은 상관이 없을 이야기라서?? 저건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얘기잖아??


  시간도 많고 인생에 대해 고민도 많았던 2년 전, 나는 뭐에 홀린 듯 다시 글 쓰는 삶을 바라본다. 브런치를 시작했고  이것저것 이런저런 글을 잡다하게 끄적였는데 종국에는 10년 전에 놓은 드라마를 쓰고 있는 나를 보고 어이가 없어 친구를 불러다 놓고 나를 욕했다.(??)

 "나는 드라마 말고는 정식으로 글을 배운 적이 없잖아. 소설 작법 이런 거 전혀 모르고. 아무나 쓰는 게 아니더라. 웃긴 게 뭐냐면 자꾸 내가 대본처럼 글을 쓰는 거야. 못하는 도둑질이라도 그래도 배운 게 무서운지.. 들어봐. 그 여자가 빨간 캐리어를 샀잖아. 그게 중요하거든. 공항 게이트 문이 열리면 빨간 캐리어가 딱 나오는 것부터 인서트로 시작돼. 그리고 화면이 캐리어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그 여자란 말이지. 이거 강조할 수 있게 소설로 묘사하라고 하면 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니가 뭐라도 썼으면 좋겠어."

 "근데 말이 돼? 나는 10년 동안 드라마도 안 봤어. 영화도 많이 안 봐. 소설이든 드라마든 진짜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고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야. 그건 타고나는 것 같더라. 나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 있는데... 와 장난 아냐.. 나 좌절했잖아.(블라블라) 그걸 하루 만에 썼대. 천잰가 봐.(블라블라) 그런 이야기가 갑자기 막 생각난다고 하더라. 와.. 난 석 달 열흘 시간 줘도 아무 생각도 안나."

 "그래도 니가 뭐라도 썼으면 좋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친구는 흔들리지 않고 부처님 같이, 또 때로는 AI처럼 대꾸했다.


 그랬던 것이었다. 이제와 갑자기 무엇인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기보다는 일단 뭐라도 끄적이자. 뭐라도 연습하자. 사는데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일기라도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결국 '아는 글'을 다시 써보기 시작했다. 취미 생활이라는 편한 암시와 세뇌를 반복하며. 

 그러나 딱 1년 까지.

  다시 쓰는 일은 여윽시 왜 내가 절필(?)했었는지 이유를 되찾아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재능과 능력,  자괴감은 차치하고 시간과 마음을 쏟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 보았지만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일부터 실패했고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해야 하거나 감정적 흔들림이 있는 것들은 죄다 외면했다. 여행도 못 가고 공연 관람도 대폭 줄었지만 남는 시간엔 예능 프로를 보면서 낄낄대는 게 편하고 좋았다. 치열하고 싶지 않았고 진지하기 싫었고 좀 흐릿하고 안락하고 싶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친구는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작년 하반기부터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실망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럼 그렇지 뭐'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비난과 조소를 몇 번 던졌을 뿐. 역시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들여 스트레스를 생산해내는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합리화하며 생업에 전념했다. 많은 공모전을 고민만 하다 거의 포기했다. 그래서 뜬금없이 받은 저 메일이 낯설었다. 내가 뭘 썼다는 거지? 쓴 적이 없는데?

 진심 생각이 나지 않아 어쩐지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외장하드를 연결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큰 공모전이라 그냥 넘기긴 왠지 아쉬워 몇 되지 않는 지난해 썼던 파일들을 파렴치하게도 그저 조금 수정해서 접수했을 것이다. 근데 그게 뭐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폴더를 열었다. 응모 편수엔 제한이 없었던 것 같고 내가 3개를 접수했단다. 제목을 수정한 파일은 제목만 봐선 내용이 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날짜는 1월이다.(기억이 안 날 만도...) 근데 저 중에 뭐였을까?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본다. 아아... 접수하고 뒤도 안 돌아봤던 이후로 공지사항이 계속 올라와 있었다. 괜스레 최종 당선작 제목들도 훑어본다.(브런치 제목도 늘 힘든 내게 기깔난 제목들은 부러웁기만 하다.ㅠ)


 최근 겪은 일 중 가장 놀랐던 일이라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가며 내게 주는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혼자 오버하고 앉았네 비웃었다가, 마지막엔 피식 웃음이 났다. 좀 웃기고 재밌는데?? 그 옛날, 그토록 시간을 갈아 넣을 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금 난데없이?

 세상이라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어쩌면 기묘함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걸 깨달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던가.

노력과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고 행복과 불행은 때론 많이 닿아 있고 안정과 갈등의 반어적인 것들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고 뒤엉킨 채 한 덩어리로 굴러가는 경우가 더 잦다.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 하나가 전부이자 유일한 건지 모른다. 그 후의 결과와 미래에 너무 애면글면 하지 않고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반전과 열린 결말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갈는지도.(거창하게 얘기 안 하기로 했는데 이 거룩한 문장은 뭐지?)


 그냥, 해야 할 일은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고 해내며, 원하는 일엔 진심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게 단순하게 살아가고프다. 누가 뭐라건. 내일이 어떻게 되던지 간에.

계획 하든 말든 어차피 인생은 대개 불친절하고 제멋대로니까.(허무주의자+염세주의자의 오늘 주제)


*그래서 결국 최종심에 뭐가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거법을 써서 유력하게 추정되는 하나를 의심(?)하고 있을 뿐. 

여전히 의아스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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