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sepina Jun 21. 2021

출근길, 처음 보는 연하남(?)이 내게 손을 흔들었지.

나이의 쓸모

출근길 25인승 셔틀버스, 제일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버스는 신호에 걸렸고 옆 차선에는 비슷한 사이즈의 어린이집 등원 차량이 우리 버스보다 조금 앞에 서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운전기사 바로 뒤, 가장 앞줄에 앉은 아이가 우리 차량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뒷자리라 위치가 높았던 탓에 나는 자동으로 내 앞줄에 앉은 머리통들을 주시했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안녕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 너무 하네. 누구 하나 인사해줄 법도 하구만.'

 우리 버스가 앞차와의 거리를 좀 더 좁히자 맨 뒷줄에 앉은 나와 맨 앞줄에 앉은 아이가 나란히 서로를 보게 되었다. 아이는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다 반갑니?' 생각하며 나는 드디어(!)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었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모두 일제히 나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몹시 귀여웠다. 나도 더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지고 싶지 않아!) 버스가 출발하고 차량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하며 머쓱해진 나는 괜히 버스 내부를 둘러보았다.(본 사람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때 서 있던 외국인(같은 버스 자주 타서 얼굴은 아는)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향해 흐뭇한 눈빛을 쏘고 있었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이 전부 읽히진 않았지만 나를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나보다 최소 열 살은 어릴 그녀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아.. 이 버스에 타고 있던 젊은이들이 아이의 인사를 무시한 게 아니라 부끄럽거나 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즉각적인 대응(?)을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전공의 기억과 학습이 몸에 남아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일 수 있지만 20대 초중반, 아직 대부분 조카도 없을 그 나이 때 청년들의 누적된 경험에는 유사한 상황의 저장 데이터가 아무래도 빈곤할 터였다.


 대학시절, 특수한 신분(?)으로 말미암아, 군부대가 옆에 있는 외진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다.

 20대 초반 많은 여성이  그러하듯 한껏 멋을 부린 복장으로(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촌스러웠던) 등교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아침 구보? 훈련? 을 하고 있는 군인들 무리와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건만 본능적으로(?) 절대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애꿎은 바닥만 뚫어져라 주시했는데도 뒤통수나 옆통수로 뜨겁게 쏟아지던 시선들이 아직도 생생하다.(음... 약간 그리운 것 같기도..??)

 어떤 날은 기숙사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앞서 가던 뒤가 뚫린(?) 군용 트럭에 군인 친구(!)들이 대거 앉아 있다가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내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자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옆에 있던 다른 군인들도 모두 일어나 나를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더라.(잠깐만.. 앞 단락 패턴과 동일한 이 데자뷰는 뭐지? 나.. 안녕을 유도하는 사람인가? 소오름)

 이런 일이 있었노라며 당시 나와 신분(?) 이 유사한 지인 언니에게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더니,

 "나도 예전엔 그러면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인사해. 그럼 좋아서 난리 나."라고 해서 나를 깔깔 웃게 만든 적 있다. 그래 봤자 당시 그 언니도 20대 중반. 군인들도, 언니도 나도 그냥 다 또래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지나가는 차에 손 한번 흔드는 게 뭐 어려운 일이었나 싶지만 자주 마주하는 남자 사람 군인들이 그땐 너무 어려웠고 그래서 당당히 먼저 손을 흔든다는 언니가 대단해 보였다.(언니는 재미있는 캐릭터 소유자였음)

  이젠 언니의 행동이 제법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지금 군인 동생? 조카? 들을 본다고 먼저 인사를 할 수 있는 뻔뻔함과 행동력까지는 없지만 군복 입은 군인들을 보면 괜히 짠하고 안쓰럽고 막 고맙고 갸륵한(!) 마음이 든다.


  나잇값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첫 만남에 나이를 묻고 그것으로 서열을 정하며 나아가 나이에 맞는 과업을 어디까지 수행했는지 점검한 후에 사람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문화에 아주, 자주, 굉장히, 진저리를 치곤 한다.

 나이는 저절로 먹고 성인은 자동으로 되지만 '어른'이 되기는 쉽지 않고, 때문에 인격 수양을 하지 않는데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엔 동의할 수 없다. 또한  어리다고 '몰라서 그랬지'라는 변명이 모든 잘못에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기질이 모두까기형)

 그런데 요즘은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나이를 먹으며 저절로 되는 일이나, 바뀌는 행동들이 생기기도 한다는 걸 느낀다.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혼잣말치고는 너무 큰 목소리로 긴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어렸을 때처럼 새침하게 굴지 않고 두어 마디 정도는 얹는 일.

 어리고 예쁜 여자를 보면 샘내거나 우울해하지 않고(부럽기는 하지만) 같이 예뻐해(?) 줄 수 있는 엄마st. 마음 가짐이 생기는 일.

 엄마의 "괜! 찮다."와 "... 괜찮다..."의 억양과 강세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게 되는 일.

 야금야금 나이를 먹는 일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마다 이런 사고와 행동의 변화는 그 무게를 받치는 나이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고 약간은 덜 서럽다.

 물론 10년 뒤쯤 이 글을 읽으면 '어린 주제에 어쭙잖게 아는 척 쩔었네?' 반성하며 나이에 대한 새로운 고찰문을 쓸 것 같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이런 일은 좀 반칙 같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